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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론’ 내놓은 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인터뷰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론’ 내놓은 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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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국가 운영 모델 제시 실패했다”

“한국 현실문제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응하는 글을 많이 썼기 때문이 아닐까해요. 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봤는데, 운동문제를 살펴볼 자세 없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운동의 과정이나 성격, 주체 등의 문제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보려고 했고 중심적인 문제를 다루려고 했죠.”

‘우리이론’으로 선정된 소감을 들려달라는 말에 대한 최 교수의 간결한 답변이다. 그는 자신의 민주주의론을 역사 구조적 방법에 행위자에 대한 관심을 결합시킨 것으로 특징화한다. 어떤 한 사태가 역사적으로 원인을 만들게 되는, 예를 들어 여러 가지 구질서와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만드는 과정을 보지 않고서는 민주화 과정에 대한 성격을 폭넓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는 게 첫째고, 거기에 여러 사회세력들이 서로 힘의 관계를 만들고 그 갈등의 결과가 민주화를 이뤘다는 관점이 보태져야겠죠.”

최 교수는 민주주의론을 다각적으로 분석했지만 한번 크게 이론적 선회가 있었다. 초기에는 실질적 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의 전망을 적극 검토하던 그가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다원적 시민민주주의’ 입장으로 자신의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런 변화의 계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동계급은 일단 정치적 경험이 일천하고, 리더십 형성에서도 취약합니다. 그래서 우리 현실에서 노동이 그런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상당히 한계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노동자 계급이 군부 권위주의 안에서 형성된 어떤 지배블록에 대항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세력임에는 틀림이 없는데도 말이죠.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한계가 나로 하여금 다원주의적 대안을 찾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하지만 최 교수는 “내 입장이 노동 없는 민주화는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나는 노동이 직접 노동에게 변혁의 중심적 담지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부정했을 뿐입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결합한 다원적 정치세력을 기대했는데, 요즘 시민운동이 너무 지식인, 도시 중심이라 노동의 역할이 많이 줄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 모두 힘을 잃어버리는 형국인 것 같습니다.”

최 교수는 민주화된 이후에 제대로 된 정치체제가 형성되고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기대를 걸었던 운동세력과 지지세력이 정치에 실망하게 되고, 민주주의를 이뤄낸 사람들이 투표에 불참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체시키고, 정당의 변화를 더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런 상황의 타개책으로 제대로 된 정당이 나와, 투표 안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책과 이념과 비전을 제시해야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론적 접근이고 정치의 위기를 불러온 구조적 문제 중의 하나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중앙집중화와 엘리트구조의 이중 겹침이다. 특히 대학과 사회의 관계에서 이 ‘초집중화’는 곪아서 터지고 있다고 최 교수는 걱정한다.

“잘 알다시피 우리 사회를 꼼짝못하게 하는 엘리트 구조라는 것이 사실 대학에서 거의 발원하다시피 하고 있어요. 하지만 공급자로서의 대학도 개혁돼야 하지만, 수요자로서의 사회구조가 상당히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를 위해 정치가 상당히 다원화되고, 정당체제도 사회의 소외된 세력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사회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바뀌는 게 중요하겠죠.”

또 하나의 문제. 최 교수는 1990년대부터 힘있는 국가의 필요성을 줄곧 제기해왔다. 국가만이 다룰 수 있는 사회현안들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이런 생각은 1999년 ‘조선일보 최장집 사상검증’ 사건을 거친 후 더욱 강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정부는 낙제점을 면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국가 운영원리나 제도들은 권위주의 시절에 만들어지고 강화됐는데 김대중 정부는 국가를 민주화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소홀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봐요. 김대중 정부는 어떻게 보면 정치권력의 외곽에 존재하던 정치엘리트들이 국가운영의 책임을 맡은 최초의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이 세력들이 효과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모델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거의 실패에 가까웠죠. 오히려 민주화 세력이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능력이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만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지는 결과를 빚어냈죠.”

최 교수의 최근 이론적 입지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정치행위자들의 역학관계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대로 된 ‘정당’의 정립을 정치회생의 탈출구로 보는 그는 최근 대통령 후보를 내놓은 3당의 정치공약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글쎄요. 나는 진정성이 없다고 봅니다. 과연 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세력을 대변하느냐, 누구를 위해서 정치하려고 하느냐에 대한 연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성을 가질 수가 없다는 거죠. 지금은 각자가 모든 걸 다 대표한다는 거 아니에요. 한나라당도 그렇고 민주당도 그렇고, 재벌에서부터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 대표한다 이런 거 아닙니까. 복지에서부터 경제성장에 이르기까지 전부다 좋은 소리만 하기 때문에, 그걸 따로따로 떼어서 보면 나무랄 데 없지만 붙여서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겁니다. 하나의 사회는 굉장히 다양한 요소로 구성돼 있는데, ‘나는 모두를 다 대표한다’고 하면 정당이라는 게 왜 필요합니까.”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좌파적 정치운동이나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해 물어봤다.

“현실에 뿌리를 둔 얘기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이념이나 도식이나 도그마로 현실을 볼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가 좌파적이라면 그게 이론적으로 나름대로 체계를 갖게 되겠죠. 그리고 지식인 사회는 언론과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에 노력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힘을 모으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게 필요하죠. 정치인들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잖아요. 거기다 대고 뭘 더 바라고 비판하고 그럴 수 있겠어요. 그래도 안된다는 것을 지난 두 번에 걸친 민주정부를 통해서 봤잖아요. 아무런 구체적, 현실적 대안을 갖추지 않고, 또 그 대안을 추진할 수 있는 지지를 형성하지 못한 정부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너무나 분명히 봤기 때문에, 이제는 더욱더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준비하고, 대안을 조직하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겁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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