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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 “눈앞의 실적경쟁 매몰돼 비민주정책 비판 못했다”
교수들 “눈앞의 실적경쟁 매몰돼 비민주정책 비판 못했다”
  • 글·사진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09.19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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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전국교수대회 국회 앞 1천여 명 모여
▲ 1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교수대회 풍경. 사진= 최성욱 기자

“故 고현철 부산대 교수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잘못된 교육정책을 폐기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박근혜 정부는 일방통행을 계속하고 있다. 또, 교육부는 지난달 31일 ‘엉터리’ 대학평가결과를 발표해 국민을 놀라게 하고 대학 구성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낮은 등급을 받은 대학들은 비상이 걸렸다. 대학에서 앞으로 어떤 꼼수와 눈가림이 판을 치게 될 건지 벌써부터 염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전국에서 모여든 1천여 명의 대학 교수와 직원들이 국회 앞에서 정부의 대학정책을 질타했다. ‘故 고현철 교수 추모와 대학자율성 회복을 위한 전국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국교수위원회)가 18일 국회 앞에서 주최한 이번 교수대회는 총장직선제 폐지에 반대해 투신한 故 고현철 교수를 추모하고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비롯해 교육부의 일방적인 대학정책을 규탄하는 자리였다. 

집회현장에서 만난 공주교대의 한 교수는 “대학평가를 발전을 위한 피드백으로 활용하기보다 대학을 ‘돈’으로 통제하려는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 게 문제”라며 “국립대를 관리하려는 교육부의 정책이 도를 넘어섰다고 느껴 교수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전국교수위원회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 7개 교수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전국교수위원회는 ‘9·18 전국교수선언’을 통해 최근 정부와 대학의 정책에 무관심해온 데 따른 교수사회의 자성의 목소리를 대신해 포문을 열었다. 

교수들은 선언문에서 “눈 앞의 실적경쟁에 매몰돼 연구와 교육의 본질적 원칙에 성실하게 임하지 못했던 지난 날의 우리 자신을 치열하게 반성한다”며 “재정지원을 매개로 한 정부의 비합리적·비민주적 대학정책과 압박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 저항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무능과 나태를 뼈아프게 참회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교수라는 안정된 신분과 대학이라는 자신만의 성에 안주하며 우리 안의 차별에 눈감은 채 비정규직 교수를 포함한 교육주체들과 연대하지 못하고, 잘못된 사회구조의 희생자들과 함께 하는 실천을 지성인으로서 하지 못했음을 참담한 심정으로 반성한다”고 덧붙였다.  

전국교수위원회는 행재정적 지원과 연계하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제도와 구조개혁법률안을 폐기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촉구했다. 국공립대는 국립대 총장선출제도를 직선제를 포함,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할 것과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폐기할 것을 주장했다. 사립대는 법인평가를 강화해 일부 교육부 관료들이 사립대 재단과 결탁해 이권을 나눠갖는 구조를 깨뜨리는 것 등을 당면과제로 꼽았다. 

대표발언 시간에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정책으로 인해 국공립대와 사립대 모든 대학이 교육부 정책에 따라 움직여온 탓에 대학 자율성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송주명 민교협 공동의장은 “교수들이 대학문제에 무뎌진 사이 국공·사립 막론하고 교육관료와 재벌, 족벌사학들이 대학을 망가뜨려왔다”며 “더 이상 대학에 비판적 지성을 추구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없어졌다”고 비판했다. 문계완 교수대회 조직위원장(경북대 교수회 의장)도 “교육부가 경쟁력 강화를 빌미로 대학의 학문 자유와 교육가치를 훼손하고 있는데, 이젠 대학 스스로의 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 1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교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학공공성 쟁취'라는 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최성욱 기자

교수들은 집회를 마치고 국회 인근을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대학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일부 교수들은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이들은 민원을 통해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을 현 체제와 권력에 순응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비판정신의 본산이자, 민주적인 학문 추구의 장이라는 대학 교육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문과 진리에 대한 열정은 탐욕스런 이윤 논리에 의해 잠식 됐고, 비판적 지성과 민주주의 교육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 캠퍼스는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의 망령들로 가득 차게 됐다”고 고발했다. 

교수대회에 앞서 교수·학생·시민단체가 함께 뜻을 모은 ‘대학공공성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대학공공성대위)’도 집회를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대학정책을 비판했다. 

대학공공성대위는 선언문을 통해 “노동조합조차 갖고 있지 못한 90%의 미조직 노동자들, 조직이 되어 있지만 힘이 미약한 비정규 노동자들, 아직 취업도 제대로 하지 못한 미래노동자인 학생과 아르바이트 수준의 노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 겪게 될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교육부문에서부터 이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단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정부의 각종 악법을 폐기하라며 삭발식을 단행했다. 특히 내년 1월에 시행될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14조2항과 14조의2)에 대해 임순광 위원장은 “국회에서 입법취지와 달리 잘못된 법이니 올바른 대책을 세우라고 두 번이나 시행을 유예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교육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잘못된 정책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한 일이니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교육부의 독단적인 생각이 어떤 무참한 결과를 가져올지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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