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7:01 (수)
중국과 동유럽·남미 독일어문학이 눈부시게 성장했을 때
중국과 동유럽·남미 독일어문학이 눈부시게 성장했을 때
  • 최민숙 이화여대 명예교수·독문학(전 IVG 이사)
  • 승인 2015.09.16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3회 세계독어독문학회(IVG)에 다녀와서
▲ 8월 29일 열린 ‘브레히트 이후의 연극과 영화’ 분과의 토론 장면

지난 8월 23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상하이 同志大學에서 제13회 세계독어독문학회(IVG)가 열렸다. 1951년 창립돼 매 5년마다 개최되는 IVG가 아시아에서 열린 것은 1990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전통과 개혁 사이의 독어독문학’이었다.

이 대회에는 전 세계 69개국에서 1천200명이 참석, 1천명이 넘는 학자들이 발표를 했다. 한국은 독일(300명), 중국(140명), 미국(52명), 폴란드(51명)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학자(48명)가 참석한 나라였다. 일본(46명), 이탈리아(42명), 터키, 러시아가 뒤를 이었다. 참가한 48명 가운데 42명이 발표를 했으니 독어독문학 분야에서 한국은 적어도 양적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고 생각한다(2005년 파리 제11회 IVG 때도 회장이 개회사에서 한국에서 많은 발표자가 참석했음을 따로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8월 24일(월) 회장인 주진화(Zhu Jianhua, 2010-2015) 동지대 교수의 개회사로 시작된 개회식에 이어 두 편의 기조강연이 있었다. 문학영역에서는 베를린자유대 총장이기도 한 알트(Peter-Andr´eAlt) 교수의 「바로크의 해골에 기초한 교훈들: 근세초기의 두뇌, 상상, 그리고 문학」, 어학영역에서는  자오(Zhao Jin) 동지대 교수의 「텍스트와 문화: 텍스트들의 문화성」 발표로 학술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전체 참가자 대상의 패널 프로그램 6회에 4개 분야의 51개 분과 프로그램으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강행군인 학회였다.

25일(화) 오후에는 독일학술교류처(DAAD)에서 업적이 훌륭한 외국 독문학자들에게 수상하는 ‘야콥 및 빌헬름 그림상’ 수상식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2012년 안삼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의 수상자는 브라질 파라나 연방대 독문과 조테(Paulo Astor Soethe) 교수인데, 그는 답사를 통해 최근 남미에서 독일 언어와 어문학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마지막 날인 30일(일) 오후 3시에는 다음회기 5년을 이끌어갈 회장단 선거가 있었다. 이탈리아 팔레르모대의 아우테리(Laura Auteri) 교수가 단독 출마해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은 1995년 첫 이사를 배출했으며, 두 번째 이사로 임기를 마친 필자에 이어, 올해 최윤영 서울대 교수가 추천돼 선출됐다.

이번 대회 역시 패널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만한 논의가 제기됐다. ‘전통과 혁신 사이의 언어학’, ‘독문학은 얼마나 전통적이며 얼마나 모던한가?’, ‘괴테와 공자: 다문화성에 관한 독일과 중국의 관점’, ‘멀티모덜리티와 상호매체성: 새로운 미디어의 기회와 도전들’, ‘외국독문학의 이질적인 시각들: 현재와 미래’, ‘문화들간 가교로서의 동지대학교’ 등의 패널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괴테와 공자: 다문화성에 관한 독일과 중국의 관점’이었다. 괴테와 공자에 대한 이야기인가 했는데, 예상과 달리 독일의 ‘괴테문화원’과 중국의 ‘공자학원’에 관한 현황 보고와 두 나라의 언어정책이 논의의 중심에 자리했다.

 

패널 논의와 분과 발표의 특징

공통적인 것은 두 나라 모두 이들 문화원을 통해 자국의 문화영토를 엄청나게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자학원’은 현재 전 세계에 5천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전 세계 한국문화원의 숫자는 20개국 24개라고 하니 거론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다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면 전적으로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독일과 한국의 문화원과 달리 공자학원은 각나라의 대학들과 교류해, 중국의 문화나 중국어 등의 교육 및 전파를 위해 세워진 교육기관으로서,양국의 협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 학자 발표 편수는 40편으로서 어학 10, 문학 24, 문화학 1, 독일어교육 5편이며, 문학분야에서 국내 대학 독일인 교수의 발표가 두 편 더 있었다. 이번 IVG 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54편의 발표가 이뤄진 분과는 ‘문학과 미디어에서의 사실과 픽션’ 분과였다. 허구성과 미디어에 관한 연구가 여전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학에서는 중국에서 개최된 만큼 ‘전통과 변화: 독일어권 문학에서의 극동’ 분과에서도 30편 넘는 발표가 있었다. 중국에 관한 내용이 압도적인 가운데, 일본이 뒤를 이었으며, 한국도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다뤄졌다. 그밖에도 중세에서 현대까지의 시대별 문학, 현대문학의 신사실주의, 이민자문학과 망명문학, 생태학과 환경문제, 역사소설, 홀로코스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등이 주제로 다뤄졌으며, 17-19세기 여성작가들의 연결망, 독일 코믹스, 문학 속 경찰 이미지, 감성의 언어 등 새로운 주제들도 눈에 띄었다.

내가 주로 참석한 분과는 안문영 충남대 명예교수가 주관한 ‘세계문학 속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독일 라이프치히대 헤에크(G¨unther Heeg) 교수와 장은수 한국외대 교수가 주관한 ‘브레히트 이후의 연극과 영화’ 분과였다. 브레히트 분과는 이번 발표와 토론 결과를 IVG의 발표집 출간과는 별도로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로 결정을 했다는 후문이다. 미래 학회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폴란드 등 동유럽을 비롯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스페인  등 이른바 브릭스(BRICS)로 불리는 나라들, 그리고 이집트 등 아프리카 대륙의 독일어 배우기 붐이 계속 화제가 된 이번 학회에서 참석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중국 내의 독일어 교육과 독어독문학의 눈부신 성장이었다. 1950년대 초반 7개이던 독일어문학 관련학과가 지금은 근 150개에 이른다. 1970년대 후반 중국의 개방 이후 중국과 독일이 협력해 상호 경제적 문화적 투자를 활성화시켜온 결과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만 받으면 대학취직은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도 제2외국어로서 독일어를 도입한 학교들이 많으며 이는 점차 확대되리라는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제2외국어 교육정책이 역행하는 길을 걸어온 것과는 대조된다.

외국어교육정책과 문화정책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한 나라의 문화영토 확장 목표지점, 더 나아가 글로벌한 지평에서 차지하고자 하는 지점을 그려놓고 이뤄져야 한다. 중국과 독일이 그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달려왔고 또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지난 90년대 이래의 우리나라 제2외국어 정책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이뤄진 것일까.

 

한국 독어독문학의 과제와 전망

한국, 중국,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3년마다 돌아가며 독문학자 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명칭도 처음에는 한중일 중심의 ‘동아시아독문학자대회’였는데, 지금은 ‘아시아독문학자대회’로 불리며 인도, 타일랜드, 베트남, 인도네시아,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 독문학자들이 참가한다. 2006년 한국에서 개최됐을 때 240명이 참석했는데, 2016년 8월 23일-26일 서울 중앙대에서 개최되는 아시아독문학자대회에는 더 많은 숫자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의 독문학은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어 중국학자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제 독일박사 출신의 젊은 학자들이 넘치는 중국에 비춰보면 한국의 독어독문학이 노쇠해 가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그나마 재능 있는 후학들을 보며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다행이랄까. 중국에 앞서 한국에서 세계독어독문학회가 열릴 줄 알았다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던 한 미국 노교수의 표정이 떠오른다. 한 20년쯤 후 세계독어독문학회를 한국에 유치할 수 있을까(5년마다 열리는 학회 내부적으로 이미 앞으로의 10년 동안의 개최지는 거의 정해져 있는 셈이니 말이다). 지금부터 투자를 하고, 후학들을 키워야한다는 데 대해 이번 한국 참가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 모든 것에 선행해 세계지도를 펴놓고 우리의 문화지평을 제2외국어교육에서부터 다시 그려볼 일이다. ‘미래 비전’이라는 말이 참으로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최민숙 이화여대 명예교수·독문학(전 IVG 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