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8-04 17:26 (수)
그 때, 카시미르 ‘Dal’ 호수는 바다처럼 넓고 고요했다
그 때, 카시미르 ‘Dal’ 호수는 바다처럼 넓고 고요했다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15.09.16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초원에서 흑해까지_ 47. 소 티베트 라다크, 대 티베트 발티스탄, 그리고 진짜 티베트
▲ 마토스 곰파(gompa)에서 내려다 본 라다크 풍경. 곰파는 사원이라는 말이다. 라다크의 산에는 나무든 풀이든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됐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는 내가 됐다. 우리는 하나의 육신에 녹아든 두 정신이다.” ―알 할라지, 『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 중에서.

 

35년 넘게 밥과 채소류만 먹는 채식주의자(vegan)로 살아온 나는 국내는 물론 해외를 여행할 때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적지 않은 고민을 한다. 낯선 타국 땅에서 긴 여행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중 고기가 안 들어가고도 맘에 드는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될 때의 행복감이라니! 그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을 뭐라 말하기 어렵다. 8년 전 쯤 인가 히말라야 산자락에 자리한 라다크 여행을 마치고 사추(Sachu)를 경유해 인도 북부 마날리(Manali)로 가는 1박 2일의 험난한 노정 초반. 어느 길가 식당에서 맛본 모모라는 야채만두의 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내게는 그 날 그 식당의 모모가 왕 중의 왕이었다. 라다크-마날리 간 여정은 무척 힘들지만, 기력 쇠해지기 전 반드시 도전해볼만하다.

까왈리(Qawwali) 왕 중의 왕(the Shahanshah-e-Qawwali; the The King of Kings of Qawwali)은 단연 누스랏 파테 알리 칸이다. 까왈리는 수피의 음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수피(Sufi)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Sufism)의 수행자를 가리킨다.

Sufi라는 말은 ‘羊毛’를 뜻하는 아랍어의 어근 수프에서 파생됐다. 수피즘의 초기 수도승들이 금욕과 청빈을 상징하는 흰 양모로 짠 옷을 입었기 때문에 수피라 불렸다. 수피派라 불리는 이슬람 신비주의 분파는 전통적인 교리 학습이나 율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수피즘의 실행자로서 수피는 개인별로 소속된 투루크(turuq, ‘교단’)가 다르다. 투루크란 몰라(Mawla; mola; mula)라 불리는 대스승(grand master) 주변에 몰려드는 회중 즉 신도들을 말한다. 몰라는 궁극적으로는 선지자 무함마드에게로 귀속된다
.
수피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밭을 가는 노인도, 풀무질하는 대장장이도, 양을 치는 목동도, 빨래하는 아낙도 수피가 될 수 있다. 누구라도. 수피가 추구하는 것은 이(흐)산(ihsan) 즉 숭배의 완성(perfection of worship)이다. 이(흐)산은 알라를 경배하는 것이다. 마치 그 분을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그분을 보지 못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분께서 필경 지켜보고 계실 것이므로. 알라를 경배하고 예언자와 그 후계자들을 찬미하다 보면 절로 노래가 나온다.

까왈리는 역사와 전통이 600년이 넘는 수피 음악이다. ‘노래하는 부처(the singing Buddha)’. ‘까왈리 왕 중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누스랏 파테 알리 칸의 고향 파이잘라바드(Faisalabad)가 있는 파키스탄 펀잡주와 신드주, 인도의 델리와 하이데라바드,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와 치따공 등지에서 특히 인기가 있다. 원래는 수피 사원이나 영묘 등에서 연주 되다가 점점 그 영역이 확산됐다. 누스랏이라는 국제적 까왈리 가수 외에도 파키스탄 태생의 사브리 형제(Sabri Brothers), 바하웃딘 꿋뜨붓딘(Bahauddin Qutbuddin), 아지즈 미안(Aziz Mian) 등 걸출한 스타들이 있다.

13세기 치스띠(Chisti) 교단에 속하는 델리의 수피 성자 아미르 쿠스로 데흘라비(Amir Khusro Dehlavi)가 페르시아, 아랍, 터키, 인도의 음악 전통을 융합해 오늘날 우리가 듣는 까왈리를 탄생시켰다. 곧 이야기하겠지만, 중앙아시아나 터키 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sama라는 말이 까왈리와 흡사한 음악 형태를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는 까왈리 연주에 공식적으로 메흐필레사마(Mehfil-e-Sama)라는 세션이 있다. 까울(Qaul)은 ‘예언자의 말씀’이고, 까왈은 어떤 까울을 반복해서 노래하는 사람이며, 까왈리는 까왈의 노래를 말한다.

수잔 서랜든과 숀 펜 주연의 무거운 영화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1996년)의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20세기 최고의 까왈 누스랏은 에디 베더(Eddie Vedder)와 함께 까왈리를 연주했다. 죽은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듯한 그의 목소리 연주는 음울하면서도 신비롭다. 안타깝게도 누스랏은 이듬해인 1997년 8월 영국 런던에서 숨을 거뒀다. 1948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불과 오십. 아까운 아티스트가 갔다.

까왈리가 소리로서 신과 예언자를 찬양하는 것이라면, 수피즘의 유일한 목적인 신과 하나 됨을 위해 춤과 노래를 결합한 독특한 의식이 있다. 이른바 수피 댄스라고 알려진 세마 의식(Sema ceremony)이 그것이다. Sema라는 말은 ‘listening’이라는 뜻을 가진 sama에서 왔다. 세마 의식을 행할 때 수피들은 특유의 원통 모양의 모자를 쓰고 우주와 신과 일치하려는 자세를 취한 채 빙글 빙글 돌며 旋舞를 춘다. 이때 춤의 리듬에 맞춰 심호흡을 하며 온 정신을 집중해 알라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 이것이 세마의 본질이다. 이 과정 속에 신의 영광을 찬양한다든지 따위의 짧은 주문을 반복해 암송하는 일을 지크르(Dhikr 혹은 Zikr, Zekr: 회상, 기억이라는 뜻)라고 한다. 수피들은 단식 중에 徹夜로 이런 세마 의식을 행하면서 계속해 신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며 찬양한다. 그런 가운데 때때로 황홀경에 빠져들기도 한다.

다시 20년 전 추운 겨울날의 훈자로 돌아가서, 역사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의 설명에 의하면, 훈자는 알리아바드, 칼리마바드, 가니시, 하이데라바드를 망라하는 지역이다. 그는 훈자 일대(중부)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부루샤스키어와 가니시어라고도 했다. 가니시어는 가니시 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부루샤스키어로 ‘금(gold)’이라는 뜻의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가니시는 타칭인 셈이다. 산간지역 가니시(Ganish)는 훈자를 지나는 옛 실크로드 상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인간 정착지로 길기트에서 90km의 거리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척의 가니시 마을에는 가보지 못했다.     

가니시 지역의 촌락에는 가렐스(Garelth), 차보이쿠살(Chaboikushal), 슈쿠노살(Shukunoshal), 카이(Khaii), 불다스(Buldas), 칠가니시(Chillganish)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유서 깊은 마을 칠가니시(Chillganish) 주민들은 칠가니시쿠즈(Chillganishkuz)라는 유서 깊은 부족 사람들이다. Chillganishkuz라는 말의 뜻은 ‘물(chill)가에 사는 가니시인(Ganiskuz)’이다. 마치 소수맥, 수달단과 같은 종족 명칭이다.

▲ 소 포탈라궁이라 불리는 라다크 틱셰 곰파 아래 해바라기꽃과 기도하는 남자의 앙상블.

훈자강을 사이에 두고 훈자 왕국과 나가르(Nagar) 왕국은 전통적 라이벌 관계에 놓여 있었다. 발티스탄 지역은 골짜기에 터전을 잡은 이런 작은 독립 왕국들로 이뤄져 있었다. 이들 소왕국은 통치자인 라자(raja, 王)들 간의 혈연관계는 물론 교역, 공통의 신앙, 강력한 문화적 언어적 유대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발티스탄은 인접한 카시미르에 의해 무력으로 예속됐다. 카시미르에는  도그라(Dogra)라는 독자적인 신분제도가 존재한다. 도그라는 사봐르나(savarnas) 즉 카스트(caste)에 속한 브라흐민(Brahmins), 라지푸트(Rajputs), 바이샤(Vaishyas), 수드라(Shudras)와 카스트에 속하지 못하는 소외계층인 비 사봐르나(non-savarnas) 다시 말해 아봐르나(avarnas)로 이뤄졌다. 이 가운데 ‘왕의 아들(son of a king)’이라는 의미의 라지푸트 계급이 1947년 카시미르가 독립할 때까지 수백 년 동안 그곳을 지배했다.

카시미르는 히말라야 산맥 서쪽 끝 부분의 남쪽에 있는 계곡을 말한다. 현재 잠무-카미미르는 인도령, 아자드 카시미르와 길기트-발티스탄은 파키스탄령에 속하며 아크사이친(Aksayqin, 阿克賽欽)은 중국령이다. 카시미르 지역을 더 많이 점유하고 있는 국가는 인도. 그러나 거주 인구 대다수가 이슬람 신도로 파키스탄과의 병합을 원하기 때문에 현지 주둔 인도정부군과의 마찰이 심하다. 내가 몇 차례 이곳에 갔을 때도 매번 시위 때문에 시내 통행이 제한되곤 했다. 카시미르 거주 무슬림들에 대한 인도군의 인권 탄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파키스탄은 이걸 빌미로 인도를 비난하고 인도는 파키스탄이 이슬람 테러집단을 지원한다며 맞대응하고 있다.

카시미르의 역사, 지리, 종교, 민속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닐라마따 경전(The Nilamata Purana)』에서는 카시미르라는 말의 기원을 물에서 찾는다. Ka는 ‘물’을 의미하고 shmir는 ‘고갈시키다(to desiccate)’를 뜻하는 것으로, Kashmir는 ‘물이 고갈된 땅(a land desiccated from water)’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월지족의 한 갈래인 玉의 부족 쿠시(Kush)/카시(Kash)가 거쳐 간 곳에는 족명이 지명으로 남아있다. 그 중 하나가 파미르고원 이서의 첫 도시 카시가르다. 카시는 ‘옥’, 가르는 ‘산’을 뜻하니 ‘玉山’이라는 의미다. 카시미르 역시 ‘玉嶺’을 나타내는 말이다. 파미르가 ‘蔥嶺’이듯.

구태여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리스크가 따르지 않는 모험 여행은 없다. 편하자고 하자면 집에 있어야 한다. 지인들과 잠무-카시미르의 주도인 스리나가르(Srinagar)에 갔던 적이 있다. 거기 바다처럼 넓고 고요한 호수 달(Dal)의 하우스보트에서 며칠을 묵었다. ‘달’이라는 이름이 듣기에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때 깊은 한숨과 함께 동준 씨가 말했다. “여기서 좋은 사람과 한 달만 살아보면 좋겠다.” 출판사 김 사장이 화답했다. “우리 내년에 다시 옵시다.” 내가 말했다. “퍽이나 그러시겠수.” 결국 그 둘은 카시미르 달 호수에 다시 가지 못했다. ‘분열된 맥박(split pulse)’라는 뜻의 힌디어(Hindi) dal은 ‘분열시키다(to split)’라는 의미의 범어 dala에서 왔다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워 맥박이 제멋대로 뛰어서일까.

카시미르의 산하가 과연 아름다운지 의문이 든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당장에라도 여행가방 메고 인도행 비행기에 오를 일이다. 갔다가 그곳이 샹그릴라다 싶으면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된다. 그래도 조국은 아무 탈 없이 번성할 것이다.

카시미르도 그렇지만 훈자가 속한 발티스탄은 워낙 청정지역이라 예로부터 손꼽히는 장수촌이었다. 물론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 개통으로 중국과 파키스탄을 왕래하는 화물차가 수없이 지나다니며 매연을 내뿜기 때문이다. 유전인자 때문이 아니라 과거 훈자사람들은 식습관과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다른 동네 사람들보다 오래 살았다. 미네랄 풍부한 무공해 훈자강물, 살구 등의 과일 섭취, 스트레스 없는 삶, 일상 속의 규칙적인 노동, 충분한 수면, 그리고 홍차에 우유와 소금을 가미한 솔트티(salt tea). 이런 것들이 모여 그들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중요한 것은 발티스탄이 과거에는 작은 티베트(Little Tibet)로 알려졌고 나중에는 이 이름이 라다크까지 아우르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양자를 구별하기 위해 발티스탄은 작은 티베트(Little Tibet), 라다크는 큰 티베트(Great Tibet)라고 불렀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게는 라다크는 ‘붉은 나라(red country)’라는 뜻을 지닌 마르율(Maryul)로, 발티스탄은 발티율(Baltiyul)로 알려져 있었다. 전자는 산에 나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고, 후자는 발티인들의 나라라는 의미일 것이다. 발티인들은 누구일까. 히말라야 산중, 고개 넘어 또 고개라는 뉘앙스가 있는 ‘큰집 티베트’ 라다크로 들어가기 전 ‘작은 집 티베트’ 발티스탄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기울여 보자. 여기에도 유목민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월지 후손이 과거를 기억 못한 채 오늘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힘겹게 그러나 순박하게.

아주 오래 전 티베트 캄파(Khampa) 즉 캄족이 쵸르밧 계곡(Chorbat Valley)을 거쳐 카플루(Khaplu) 지역에 들어왔다. 다르드족은(Dardic tribes)은 길기트로부터 론두 계곡(Roundu Valley)을 거쳐 현재의 발티스탄에 이르렀다. 이들이 발티스탄의 주민이 된 발티족이다.

티베트의 주요 구성원이기도 한 캄파(Khampa)는 캄(Kham, 康) 사람(pa)이란 뜻의 말이다. 캄파는 전통적으로 추시 강죽(Chushi Gangdruk)이라 불렸는데, ‘4개의 강과 6개의 산맥(four rivers and six ranges)’이란 의미다. 티베트 남동부 캄 지역 주민 중 적어도 3분의 1은 羌方言 사용자들이다. 이들은 西夏라 불린 탕구트(Tangut)를 세운 선비족, 대월지의 서천 이후 羌族과 더불어 살며 인종적 문화적 하이브리드(hybrid)가 돼 정체성이 모호해진 소월지 황중월지호, 의종호 등의 후손일 수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다.

훈자를 가기 위해 먼저 찾은 길기트는 과거 소발률(小勃律) 왕국이었다. 오늘날의 발티스탄에 해당하는 발률은 본래 카시미르 북부에 있던 나라로 인도와 페르시아·중앙아시아·토번을 연결하는 교통로 상에 있었다. 8세기 초 토번에 패해 대·소 발률로 분열됐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