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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에 숨겨진 또 하나의 얼굴은‘참주’와‘다수’의 협주곡”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에 숨겨진 또 하나의 얼굴은‘참주’와‘다수’의 협주곡”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9.15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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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31강.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의『군주론』읽기

‘문화의 안과 밖’시즌2 고전읽기 전체 31강이자 ‘근대 사상과 과학’의 두 번째 강연 텍스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군주론』에 관해서는 국내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번역서와 해설이 자자한 터라, 곽준혁 소장의 독해는 시작부터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지난 5일(토) 진행된 강연에서 곽 소장은 ‘참주와 다수의 협주곡’이란 틀로 『군주론』을 읽어냈다.
곽준혁 소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세계 유수의 인문학 출판사인 영국 루틀리지(Routledge)의 ‘Political Theories in East Asian Context’의 책임 편집자로 있다.
저서 및 편저로는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비지배를 꿈꾸는 현실주의자』, 『지배와 비지배: 마키아벨리의 『군주』읽기』, 『경계와 편견을 넘어서: 우리시대 정치철학자들과의 대화』, 『근대성의 역설』(공저·2009) 등이 있다.
“마키아벨리가 ‘철학적 성찰’과 ‘시적 가능성’의 결합을 통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귀족’이 아니라 ‘인민’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역설을 꿈꿨다”고 운을 뗀 곽 소장은 『군주론』에 담겨 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갔다. 흥미로운 것은, 『군주론』에 내재한 ‘수사적’에 주목, 이를 ‘누구를 어떻게 설득하려 했느냐’로 접근한 대목이다. 그의 접근은 ‘고전읽기’라는 대의에 충실하면서도, 고전 독해가 어떠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전범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강연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두 가지 역설: 누가 설득의 대상인가, 어떤 공화주의자인가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이 누구에게 그리고 언제 헌정됐는지는 수수께끼입니다. 그런데 저는 『군주론』에 담겨 있는 또 다른 수수께끼를 다루려고 합니다. 직접적인 이유는 마키아벨리가 ‘철학적 성찰’과 ‘시적 가능성’의 결합을 통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귀족’이 아니라 ‘인민’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역설을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크게 두 가지 측면을 부각하고자 합니다.

첫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내재한 수사적 특징입니다. 이때 ‘수사적’특징은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저술을 통해 ‘누구’를 ‘어떻게’설득하려 했느냐는 질문과 관련됩니다. 기존의 대답들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뉘어 전개됐습니다. 첫째는 『군주론』은 거시적 안목을 담았다기보다 이탈리아의 해방을 위한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구상을 담은 저술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둘째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한 후 공화주의자로 전향했다는 견해입니다. 셋째는 『군주론』의 대상이 군주가 아니라 시민이며, 동일한 맥락에서 『군주론』은 군주를 위한 교본이 아니라 공화정을 꿈꾸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저술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저의 해석은 세 가지 입장 모두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군주론』이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입장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정치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제공하려 했다는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입장은 『군주론』과 『강의』가 거의 같은 시기에 저술됐다는 문헌학적 자료들을 통해 이미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므로 자세한 반박은 불필요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입장은 마키아벨리의 ‘민중주의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견해입니다. 문제는 마키아벨리가 최초부터 대중 또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군주론』을 집필했는지는 불확실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지배하려는 욕구’를 가진 ‘소수’가 설득의 대상이라고 보는 게 더욱 자연스럽습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주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내재된 ‘공화주의’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냉소적 비난으로부터 마키아벨리를 구제하기 위한 최근까지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됐습니다. 하나는 마키아벨리의 저술에서 브루니(Leonardo Bruni)로 대표되는 ‘시민적 공화주의’를 찾아내려는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마키아벨리로부터 근대 자유주의의 맹아를 찾으려는 경향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자는 마키아벨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성찰로부터 상당히 이탈한 사실을 과소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시민적 공화주의’에 내재했던 귀족주의적 속성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강한 반발을 간과했고, 후자는 ‘지배하려는 욕구’를 가진 ‘소수’가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에서 지닌 의미에 무관심했습니다. 종합하자면,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에 감춰진 또 하나의 얼굴은 ‘참주’와 ‘다수’의 협주곡입니다. ‘다수’를 위해 헌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한 ‘참주’, 그러한 ‘참주’를 통해 정치적 공간에서 자신들의 ‘지배받지 않으려는’욕구를 표현할 수 있게 된 다수, 그리고 이러한 다수의 지지를 통해 유지되고 존속되는 군주의 정치권력, 이 모든 것이 ‘소수’와 ‘다수’의 갈등이 만들어 내는 정치적 역학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이 갈등의 미학으로 수렴되는 지점이 마련됩니다.

참주 길들이기: 새로운 참주론, 두 개의 소실점

군주주의가 득세하던 1513년,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탈고했을 때 피렌체는 이른바 역설이 필요한 사회였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참주를 은밀하게 비난하거나 참주의 속성을 몇몇 폭력적이고 일탈적인 인간의 특성으로 귀착시키는 태도를 거부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참주’의 고전적 이해에 자기만의 해석을 덧입힙니다.

첫째, ‘군주’와 ‘참주’의 구분을 파괴합니다. 『군주론』15장에서 19장까지 전개되는 군주의 자질에 대한 설명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소크라테스 이후 지속된 ‘올바른 삶’의 기준들을 한꺼번에 허물어 버립니다. 둘째, ‘좋은 삶’에 대한 논의보다 ‘영광’과 ‘공포’에 초점을 둔 이야기를 통해 ‘참주’를 설득하려고 노력합니다. 즉 ‘참주’가 다수를 위해 봉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철학적 성찰을 통한 계도보다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셋째, ‘참주’의 속성을 특정 인물들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누구나 상황이 허락된다면 그러한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 해도, 두 가지 난점이 여전히 우리의 이해를 방해합니다. 첫째는 ‘지배하려는 욕구’와 ‘명령하려는 욕구’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다수에게서 ‘지배받지않으려는 욕구’로부터‘명령받지 않으려는 욕구’를 구분해서 제어할 동기나 의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헌정사에서 ‘두 개의 소실점’이 갖는 수사학적 의미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참주’적 욕망을 가진 인물이 알아야 할 인민의 속성을 아는 사람이고, 인민의 ‘명령받지 않으려는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군주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군주가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를 충족함으로써 얻게 될 정치적 보상, 즉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지배받지 않고자 하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제시하는 조언의 핵심은 ‘참주’적 속성과 ‘인민’의 욕구가 창출하는 앙상블입니다. 이렇듯 마키아벨리는 참주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식을 진지하게 모방할 것을 주문합니다. 군주는 인민의 ‘지배받지 않으려는 속성’을 우선적으로 충족해 줘야하고, 인민과 귀족 중에 하나만을 자기편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인민을 선택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또한 군주는 무엇보다 인민에게 ‘외세로부터 자유’와 ‘귀족의 수탈로부터 자유’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만이 군주가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의 충족과 국가의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가 있다는 조언합니다.

마키아벨리와 우리

마키아벨리의 참주 교육에 내재한 수사적 의도와 그가 그렸던 공화주의 리더십이 갖는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다수’가 갖는 소극적 열망, 즉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으로부터 ‘공공선’의 근거를 찾아내고, 이러한 ‘다수’의 열망을 충족할 수 있는 제도의 확립이 곧 강력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최근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가 갖는 특성을 ‘민주적’ 또는 ‘민중적’이라는 범주에서 분석하는 학자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사상을 인민 주권에 기초한 ‘민주주의’라는 틀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非지배 자유’를 통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듭니다. 만약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각각 고유한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긴장 또는 결합하면서 발전된 정치적 원칙으로 이해한다면, 마키아벨리로부터 민주주의의 제도적 운영과 관련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참주의 속성에 대한 정치적 통찰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참주의 속성이 자발적으로 제어되거나 폐기되리라 믿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가 묘사한 수많은 사례가 인민의 정치적 목표는 ‘지배’가 아니라 ‘비지배’가 돼야 한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부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가 ‘지배하려는 욕구’로 전환되는 정치사회적 조건 속에서 ‘부패’의 단초를 찾고,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에 충실한 인민과 이들의 욕구를 실현시키려는 군주로부터 건강한 사회의 초석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비관적 도덕주의’의 이면에 존재하는 ‘악’을 두 가지 잘못된 정치적 결과와 등치시킵니다. 그것은 무분별한 폭력의 행사와 정치적 무관심입니다. 그는 ‘비지배의 관철’이라는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본다면, ‘힘의 논리’에 기초한 ‘비관적 현실주의’가 아니라 ‘시민적 견제력’에 기초한 변화의 제도화가 시민의 정치적 삶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모든 생각이 피렌체가 당면했던 시대적 요구를 통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그의 주장이 갖는 의미를 차분하게 고민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숙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통찰력, 정치권력에 대한 심미안, 제도적 구상에 내재된 신중함, 그리고 그의 전복적 상상력까지, 모두 있는 그대로 논의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그가 가졌던 ‘다수’에 대한 생각도, 그가 그렸던 제국에 대한 구상도, 모두 ‘비지배’의 실현으로 수정되고 귀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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