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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사의 디딤돌
한국 지성사의 디딤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8.31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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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출판사 50년의 책들

1966년 12월 2일 창립한 문예출판사는 독자에게 유익하고 가치 있는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출판 이념을 가지고 첫 책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출판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데미안』은 출판 등록이후 20여일 만에 내놓은 책이다.

첫 책은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 문예출판사가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을 내세우면서 한국 출판계에 뛰어든 데는 당시 열악한 출판환경이 크게 작용한다.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교양서가 변변치 않은 ‘척박한 교양의 시대’였다. 바로 이런 ‘결핍’에 주목한 문예출판사는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과 교양에 필요한 책들을 단행본으로 출판함으로써 한국 출판에 새로운 단행본 시대의 서장을 열 수 있었다.

이후 문예출판사는 해외 문학과 사상을 소개하는 서적과 함께 우리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철학·사상, 인문·사회과학, 문학·예술 분야의 학술도서를 다양하게 출판해 현대 지성의 산실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출판계를 비롯 학계에서 바라본 문예출판사의 출판 공적은 △청소년을 위한 문학 교양도서 출판과 우수 역자 발굴 △문학창작집과 문학연구서 및 문학비평서 출판 △인문·사회과학의 학술도서 출판 △한국미술 분야의 학술도서 기획출판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문학 교양도서 출판과 우수 역자 발굴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당시 1960~70년대 일어판 중역 또는 졸속 번역 등 부실한 번역 출판 풍토에서 역량 있고 우수한 번역자를 발굴, 원전 번역으로 좋은 외국문학 작품과 명저들을 국내에 소개해 번역 출판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데미안』(1966)을 비롯,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1972),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72),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1973)를 출간, 장안의 화제가 됐다. 특히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문학예술총서’ 발간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됐다. 이를 계기로 문예출판사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인문·사회과학 학술도서로서 ‘총서’ 출판에 힘을 실었다.

‘철학사상총서’, ‘인문·사회과학총서’, ‘문학예술총서’등을 기획 출판해 관련 학문의 연구 의욕을 고취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학자와 사상가들의 주요 저서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해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1977)를 첫째 권으로 ‘철학사상총서’를 발간하기 시작했으며, 수잔 K. 랭거의 『예술이란 무엇인가』(1977)를 첫째 권으로 ‘예술총서’가 이어졌다. 프리츠 파펜하임의 『현대인의 소외』(1978)는 ‘인문사회과학총서’의 맨 앞에 놓였다. 조금 늦었지만 ‘한국문학연구총서’도 1983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권영민의 『한국근대문학과 시대정신』이 첫째 권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역량 있는 번역자를 발굴, 양서 번역에 앞장선다고 해도 국내 저자의 발굴과 기획 도서 출간이 없다면 출판사가 질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문예출판사가 ‘한국학’ 쪽인 한국미술분야에 심혈을 기운인 것은 적확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한국미술분야는 오랜 시간을 요하는 편집과정과 많은 제작비 부담 등으로 채산성이 없다는 결정적인 취약점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문예출판사는 ‘한국미술총서’를 기획 출판해 한국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서적 출판으로 명성을 얻었다.

안휘준의 『한국회화의 전통』(1988)이 ‘한국미술총서’ 첫째 권의 테이프를 끊었다. 이 책은 이듬해 ‘제29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문예출판사에 안겨줬다. 황수영의 『한국의 불상』(1989), 정양모의 『한국의 도자기』(1991), 장경호의 『한국의 전통건축』(1992), 진홍섭의 『한국의 석조미술』(1995), 이호관의 『한국의 금속공예』, 진홍섭의 『한국의 불교미술』(1998), 홍선표의 『조선시대회화사론』(1999), 권영필의 『미적 상상력과 미술사학』(2000), 김리나의 『한국고대불교조각 비교연구』(2003) 등이 이어졌다. 문예출판사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2006년 12월 2일 『한국미술사』(진홍섭·강경숙·변영섭·이완우)를 출간했다. 조선미의 『초상화 연구』(2008)도 이 계보에 놓인다.
2015년 8월, 광복 70주년·문예출판사 창립 50년 기념으로 이두영의 『현대 한국출판사(1945-2010)』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판한 문예출판사는 현재까지 984종의 책을 한국 문화에 깊이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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