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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와 대학교육
시간강사와 대학교육
  •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 승인 2015.08.1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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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 허남린 논설위원

시간강사 없이 대학이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학생 수는 엄청나게 불어났고, 이들이 이수해야 할 졸업학점은 대략 120학점 이상이다. 이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졸업시키려면 학교 당국은 수많은 교과목을 개설하지 않을 수 없다.

강의실을 아무리 크게 지어도 수강생이 200~300명이면 양질의 수업에 한계가 온다. 실험이나 집중연구가 필요한 교과목은 많은 학생들을 받을 수도 없다.

여기에 되도록이면 학급을 작게 만들어 수업의 질을 높이라는 압력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의 관심과 사회의 수요도 날이 다르게 분화하고 있다. 이 모든 요인은 제공해야 하는 교과목 증가로 이어진다.

문제는‘누가 그 수많은 교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가’이다. 대학의 교수 수는 학생 수의 증가나 교과목의 분화 속도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여기에 정규직 교수들은 수업교과목
의 증가에 민감하게 반발한다.

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가. 여기에 비용문제가 있고, 결국은 비정규직의 틀로 노동의 값을 싸게 만드는 길로 나아간다. 이 모든 문제를 떠맡아 해결해 주는 존재가 시간강사다.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면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한국과는 다른 두 가지의 접근방법에 주의하고 싶다. 하나는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에서 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캐나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다. 이 둘의 접근방법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이로부터는 공통되는 현상이 산출된다. 그것은 저임금과 신분불안의 비정규직 시간강사를 양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에서는 대학교육의 품질과 명성을 소수정예 교육으로 승부한다. 학부 한 학년의 수가 2천 명이 넘으면 그 대학은 이미 명문대학이 될 가능성이 적어진다고 믿는다. 실제 명문 사립대학치고 한 학년의 정원이 2천명이 넘는 대학은 거의 없다.

대표적인 대학들의 정원은 적게는 1천명, 많아야 1천500~1천800명 정도다. 그리고 이들 대학의 정규직 교수의 수는 전 학부 학생대비 6~7명에 1인, 많아도 8~9명에 1인 정도의 비율이다. 학생 대비 교수의 수가 충분하기 때문에 시간강사를 채용할 필요가 거의 없어진다.

여기에 이들 대학들은 작은 수강인원의 학급을 편성해 질 높은 수업을 제공하고자 총력을 기울인다. 명문대학의 명성은 20명이 안 되는 학급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에 정비례한다.

시간강사를 쓰더라도 2~3년간 준비 점검을 하고 여러 단계의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이사회의 결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한 과목 한 과목의 수업에 들이는 정성은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여기에 비해 사립학교가 없는 캐나다의 대학들은 학생 수가 많다. 테뉴어 트랙 교수 이외의‘시간강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예외적으로 졸업을 앞둔 소수의 박사과정 학생들로 하여금 한 과목 정도 가르치게 하는 것 이외에, 원칙적으로 모든 강사는 공고를 하고 공개경쟁을 통해 채용한다. 이렇게 채용된 강사는 국가의 노동법에 따라 임금 및 신분에 관한 철저한 보호를 받는다.

일례로 필자가 속한 대학에서는 10여 년 전에 외국어‘시간강사’를 전원 전임강사화 했다. 일단 채용되고, 자신들이 원하는 한 이들은 평생 신분과 연봉이 보장되는 전임강사로 학기당 4과목 정도의 수업을 담당한다. 고용의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캐나다의 강력한 노동법은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주고, 시간강사의 비애를 없애주는 힘이 됐다.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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