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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지리학으로 본 파리
문학 지리학으로 본 파리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5.08.1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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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소설의 감동이 아직 남아있거나 혁명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에서

살았던 작가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면 소르본대학 근처 팡테옹 지하에

잠들어 있는 빅토르 위고와 장 자크 루소의 묘를 찾아도 좋을 것이다.

 

종교와 무관하게 채플 웨딩을 선호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서구 문화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그리 보면 ‘꿈의 도시’ 파리를 꿈꿨던 일본인들이 ‘더럽고 불친절하며 온갖 인종의 집합소’인 파리를 방문한 뒤 정신적 충격을 받고 이른바 ‘파리 신드롬’을 겪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파리 신드롬’은 일본인들의 경험만은 아니었던 듯 싶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도 자서전인 『고백』에서 파리를 처음 보고 느낀 감상을 이렇게 적고 있다. “변두리인 생마르소에 들어서자 더럽고 악취가 나는 좁은 거리, 볼썽사납고 어두컴컴한 집들, 더럽고 궁핍한 분위기, 거지들, 짐수레꾼들, 헌옷 수선하는 여자들, 길거리에서 탕약과 헌 모자를 파는 여편네들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 파리에 대한 찬양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파리를 고대 바빌로니아처럼 상상했던 것이다.” 청년 시절 자신을 제네바가 아닌 파리 출신이라고 속일 정도로 파리 사람이고 싶어 했던 루소가 실제 파리를 보고 느꼈던 충격은 그만큼 컸다. 루소는 평생 파리를 떠나 살고 싶어 했고 말년을 시골에서 보냈지만 결국 파리에 묻혔다.

파리는 ‘더럽고 불친절하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 문화의 수도로 몰려들고 있다. 파리를 더 이상 ‘꿈의 도시’로만 여기지 않기 위해서도, ‘더럽고 악취 나는’ 도시로만 여기지 않기 위해서도 이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먼저 파리의 한복판 시테 섬에서 우리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노트르담 드 파리’를 만나게 된다. 이 찬란한 고딕 건축물은 천정의 리브 볼트와 외벽을 지지하는 플라잉 버트리스 덕분에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을 투과시키고 있다. 종탑에 올라, 두 개의 탑 사이를 오가며 종을 치다 귀머거리가 된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죽게 만든 프롤로 신부를 성당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시킨 위고의 소설 장면을 떠올린다면 해질녘 성당은 더 처연해 보일 것이다.

이제 지하세계로 내려가야 할 때다. 파리에는 총 연장 2천4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하수구가 있다. 지상의 모든 거리 이름이 지하에도 이중으로 표기돼 있을 정도로 파리의 하수구는 도시 전체를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장 발장이 혁명의 와중에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업고 도피한 곳도 파리의 하수구다. 센 강을 좌로 끼고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오페라 가르니에에 닿게 된다.

가스통 르루의 유명한 소설 『오페라 극장의 유령』에서 유령이 크리스틴을 이끌고 가는 환상적인 지하세계 역시 극장 아래에 흐르는 파리의 하수구다. 고전에서 신바로크까지의 양식이 혼합된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8톤에 달하는 샹들리에와 천정화인 샤갈의 「꿈의 꽃다발」까지 감상했다면 센 강을 우로 끼고 바스티유 광장까지 내려가 보기로 하자.

프랑스 혁명의 성지인 바스티유 광장에는 지금은 없지만 1814년에서 1846년 사이에 거대한 코끼리 상이 만들어져 서있었다. 『레 미제라블』에서 가브로슈가 아이들을 함께 안식처로 삼은 장소가 바로 이 코끼리 상의 몸체 안이다. 바스티유 성채가 사라진 자리에 나폴레옹의 지시로 계획되고 설계된 이 코끼리 상은 완성되지 못한 채 흉물로 남아있다 철거된다. 바스티유 광장을 등지고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다가 다시 시테 섬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향하면 파리에서 오래된 거리들 중 하나인 생 드니 街와 만나게 된다.

6월 봉기를 일으킨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앙졸라, 콩브페르는 이 거리 어딘가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정부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의 감동이 아직 남아있거나 혁명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에서 살았던 작가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면 소르본대학 근처 팡테옹 지하에 잠들어 있는 빅토르 위고와 장 자크 루소의 묘를 찾아도 좋을 것이다.

올 여름 연구차 들른 파리의 페르 라 쉐즈 묘지에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짐 모리슨의 묘 앞을 지나가다 참배객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기타 연주로 짐 모리슨의 곡을 연주하며 그를 추억하고 있었다. 랭보와 장 콕도를 사랑했던 짐 모리슨은  파리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파리를 찾았다. 올 여름에도 저마다의 사연과 꿈을 찾아 ‘파리 신드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이 도시를 찾을 것이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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