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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에게 필요한 안목
출판 편집자에게 필요한 안목
  • 김미정 책세상 편집장
  • 승인 2015.08.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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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편집자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현재와 미래의 ‘저자’들에게 소개하기. <교수신문>의 ‘편집자’가 책세상의 ‘편집자’에게 요청한 주제다. ‘우리는 생각한다’라는 이 지면의 무게가 주는 부담은 잠시 접고, 요구 사항에 충실해보려 한다.

사유의 형태로 존재하던 지식이 물성을 갖춰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기획에서 홍보까지라고 범위를 좁혀보아도 편집은 그 경로와 층위가 너무나 다양해서 일반화하기가 어렵다. 편의상, 아이디어의 단초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시리즈를 가지고 넓은 의미의 편집 과정을 짚어본다.

‘하나의 개념을 한 권의 책으로’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우리 시대의 청춘이 비판적 사유의 근육을 키울 통로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사회과학 개념사’라는 기획의 틀을 잡았다. 소규모지만 전담팀을 만들고 ‘개념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인 동시에 그 개념에 농축된 사회의 구조와 역사를 보여주는 지도’라는 지향을 담아 ‘한국 사회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열쇠가 되는 사회과학의 개념들을 뽑아 그 의미와 역사, 실천적 함의를 해설하는 시리즈’로 기획을 구체화해나갔다. 2007년 봄에서 여름 사이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학계의 개념사 연구 현황을 살펴봤다. 역사학 중심, 전문 연구자 대상, 그리고 서구적 개념의 국내 수용사 중심이어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타깃 독자와 관련해서는, 선배 세대에 비해 비판적 사유 훈련을 하기 힘든 대학 초년생들이 사회 인식에 눈뜨는 입문서이자 진보적인 감수성과 지식을 접하는 첫 관문 역할을 염두에 뒀다.

다음은 ‘개념’을 정할 차례. 두 분의 기획위원(이성재, 홍기빈)을 섭외해, 보편적이면서도 오늘의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개념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개념들을 ‘기본 관념’ ‘제도’ ‘사건’ ‘쟁점’의 네 범주로 나눠 배치하고, 각 범주에 따른 5부 구성의 기본틀을 마련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단계.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사유와 경험이 농축돼 있는 개념의 역사를 실제로 펼쳐낼 ‘저자’가 필요하다. 교양서이지만 학적 내공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의 영역에서 각 개념과 관련된 전문 연구자를 조사해 필자 리스트를 만들고, 그중에서도 30~40대 소장학자를 우선해서 섭외를 했다. 시리즈인 만큼 통일된 형식의 청탁서를 작성해 메일로 전송하는 방식을 택했다. 저자들에게 시리즈의 지향과 기본 구성안을 제시하되, 각자의 관점과 개성에 따라 변용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했다. 단 별도의 추가 설명글, 각 장의 말미에 들어가는 ‘깊이 읽기’, 마지막에 들어가는 ‘개념의 연표’, 이미지 자료 같은 요소는 시리즈 전체의 일관된 요소로 통일했다. 때로는 섭외가 단번에 성사되고, 때로는 오랜 길을 돌고 돌아 만나기도 했다.

저자들이 집필하는 동안, 책세상 문고·카뮈전집 등을 함께해온 디자이너에게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의뢰했다. 사회과학 개념사라는 단단한 틀에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을 입히려는 모색 끝에, 본문에 들어가는 이미지들을 결합해 제목 글자를 구성하는 개성 있는 표지 디자인이 완성됐다. 본문은 붉은색 계열의 별색을 사용해 강렬한 대비 효과를 연출했다. 시리즈 제목은 한글로 짓고 싶었는데, 수십 개의 안을 놓고 논의를 거듭한 결과 결국 ‘실천하는 삶’이라는 뜻의 라틴어가 채택됐다.

드디어 원고 완성. 시리즈의 성격과 통일 요소 등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에는 전면 수정을 부탁드리고, 부분적인 보완 지점은 편집을 진행하면서 요청했다. 교정 교열 과정에서는, 개념사라는 성격상 문체의 개성보다는 명료한 의미 전달에 중점을 뒀다.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저자에게 별도 설명글을 요청했고, 이미지 자료를 찾아 덧붙였다. 이렇게 여러 겹의 산고를 거친 ‘비타 악티바 : 개념사’ 시리즈는 2008년 11월 『인권』으로 시작해 『공공성』까지 모두 서른 권이 출간됐다.

한 시리즈의 편집 과정을 숨가쁘게 정리하고 보니, 지나치게 각론에 치중됐다는 걱정이 든다. 편집자라면 모르겠으나, 저자들에게는 지루한 설명이 되리라. 한 사람의 편집자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꿈이기는 하지만 때로 당대 지식 지형의 설계자로서 저자의 뒤를 든든히 받치고 싶은 열망, 섬세한 눈과 깐깐한 사유로 원고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읽고 시대의 공기를 읽는 안목을 갖춘 편집자로 성장하고 싶은 속내는 살짝만 내비쳐본다.

 

 

 

김미정 책세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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