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5:20 (토)
"한국엔 이-팔 갈등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가 없다"
"한국엔 이-팔 갈등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가 없다"
  • 이재 기자
  • 승인 2015.08.11 1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동의 미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저자 최창호 건국대 중동연구소 소장

“다양한 유대인 이주민을 받아들인 이스라엘은 사회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적으로 ‘기획’해 억압하고 있다. 폭력에 반대하면 反유대주의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우리나라 사회도 체제안보를 이유로 일부 의견을 배척하는 모습이나타나는데 상당히 우려가 크다.”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연구해온 최창모 건국대 중동연구소 소장(융합인재학부‧66, 사진)은 우리사회가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모습이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중동의 미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펴내며 제3자의 눈으로 이-팔 갈등을 들여다볼 것을 요구했다. 1955년생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드문 중동학자이자 이스라엘 전문가인 최 소장은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중동학회 회장과 아시아 중동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고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방학을 맞아 한창 『중동 백과사전(가칭)』 편찬 막바지 작업에 바쁜 그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최 소장의 이번 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내재적인 문제를 진단한 뒤 국제정세와 한국과의 관계를 서술하는데 후반부를 할애했다. 그는 국내 미디어가 이-팔 갈등을 소비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사건보도 위주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책 후반부에 국제정세와 한국과의 관계를 서술한 것도 이-팔 갈등을 해외토픽으로만 소비하지 말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갈등의 원인을 명확히 포착하고 흐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 전문가들이 미디어에서 중동문제를 설명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한쪽 입장에 쏠렸거나 맥락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터뷰 이재 기자 jael@kyosu.net

△ 그간 중동에 대해 쓴 책이 없지 않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모두 서술하고 이를 국내외 정서와 함께 엮어내는 시도를 했다. 두 국가를 따로 놓고 보는데 한계가 있다고 봤을 텐데. 이는 그간 국내 미디어가 중동을 설명하는데 갈증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 중동문제가 터졌을 때 기자들이 쓰는 기사를 보면 날짜와 장소만 바꾸면 모두 같은 기사다. 국내 언론의 보도는 모두 사건 중심이라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얘기다. 어떤 시점을 정지시켜놓고 사건이 발생했을 단편적인 인과관계에만 초점을 맞춘다. 긴 호흡으로 사태를 조망하는 훈련이 돼있지 않다. 보도중심의 언론에게 이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해도 기자가 멀리 보고 행간에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를 담아 독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사건사고 뉴스처럼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이는 미디어에서 중동문제를 설명하는 전문가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 중동문제가 터지면 미디어가 찾는 전문가들은 대동소이하다. 최 소장을 비롯한 몇몇이 국내 중동연구와 중동에 대한 국내 사회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미디어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아쉬운 점이있다. 특히 미디어의 입맛에 맞는 설명을 하는 게 문제다. 또는 지나치게 본인의 경험에 입각해 진영을 나눠버리고 있다. 親팔레스타인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거나 親이스라엘 입장에서 팔레스타인을 테러로 매도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이-팔 갈등의 진영논리에 빠질 이유가 뭐가 있나. 나는 이스라엘에서 공부한 親이스라엘계 한국학자지만 전문가로서 이스라엘을 통렬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전문가들이 그간 이스라엘에 치우쳤던 국내 미디어의 중동 이해를 아랍권 혹은 親팔레스타인으로 옮겨온 성과와 노고는 인정하지만 그들 역시 IS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아랍권의 모순과 문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에서 그들이 대신 아랍이나 팔레스타인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

△ 보다 직접적으로 이-팔 갈등을 들여다보자. 많은 사람이 경악하는 것은 인종청소에 준하는 억압을 받았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봉쇄하는 모습 자체다. 책에서는 이를 反유대주의가 시온주의를 낳고, 시온주의가 다시 반유대주의를 낳고 있다고 서술했다. 이를 ‘변태적인 근친관계’라고 지적했는데.

“정신분석학적 용어였다. 과거 중세시대 유럽 각지에서 박해를 받은 유대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인류 보편적인 욕망을 꿈꿨다. 古都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시온주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역시 터키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팔레스타인인의 보편적인 욕망은 철저히 무시했다. 이스라엘이 건국됐으니 시온주의는 그 생명력을 다했어야 했는데 이스라엘 유대인은 선민사상을 버리지 못해 갈등을 유발하고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했다. 지금은 이스라엘 사회의 존속을 위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시온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가면 이스라엘의 패망도 멀지 않을 수있다.”

△ 위험한 발언이다. 이스라엘 사회의 존속을 위한 시온주의란 뭔가. 왜 시온주의를 버리지 못하면 이스라엘의 존망이 위험한가. 

“지금의 시온주의는 외세(아랍권)의 위협에 맞서 내부 결속을 다지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유대인은 1천년 동안 세계 각지를 떠돌았던 탓에 각 이주지역에 따른 차이가 극심하다. 일부 유대교 원리주의자가 있는가하면 유대교를 믿지 않는 유대인도 많다. 종교와 삶을 일치시킨 이들과 합리주의를 받아들인 이들이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반목한다. 외부의 ‘기획된 적’을 상정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내부 혼란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 나만의 진단이 아니다. 이스라엘 학자들은 우스갯소리로 ‘5~10년에 한 번씩 전쟁이 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내부폭발로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불안한 사회를 한데 묶어주는 것이 팔레스타인의 존재인 셈이다.”

△ 이스라엘 사회가 그토록 불안정한 이유는 뭔가. 

“집단적 트라우마가 있다. 나치에게 지독히 억압받았던 기억이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앞선 세대의 유대인들은 여전히 수용소 시절 번호가 팔에 낙인찍혀 남아 있다. 건국 과정에서 치렀던 7~8회의 전쟁도 안보의식을 강화했다. 한때 이스라엘은 학교에 총기를 들고 등교하던 병영국가였다. 아직도 이런 기억이 남아 있다. 이게 시온주의와 함께 유대인을 포획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 ‘샤일록’으로 매도돼 차별 받았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람보’로 변해 체제를 위협하는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같은 유대인의 모습이 국제적으로는 반유대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굉장히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폭력을 멈추라는 국제사회의 지적을 반유대주의자의 도발이나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과거의 트라우마, 시온주의, 선민사상 등이 뒤섞여 흑백논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모습에서 분단된 한반도의 모습이 보인다. 남과 북의 대치 상황 속에서 진영 간 흑백논리는 한국에서도 우려를 낳고 있는데. 

“그렇다. 유대인의 모습에서 ‘분단’을 본다. 유대인은 외부의 억압으로 내부의 정체성이 강화돼 어느 민족에게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대단히 강력한 타민족 배타성을 드러낸다. 우리사회도 최근 분단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강력하게 지배하는 이분법적 사회로 나아가고 있지 않나. 사회적 모순을 내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외부요인을 들어 해석하거나 회피하고 있다.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이나 이처럼 내부의 결속을 강조하고 순혈주의를 내세우는 ‘동종교배’를 강요해선 안 된다.”

△ 국내 중동연구 기반은 어떤가. 이-팔 갈등에 대한 좁은 이해나 미디어의 소비방식도 모두 국내 연구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탓도 있을 텐데. 

“매우 취약하다. 전국에 5개 대학 가량이 아랍어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하기엔 턱없이 적다. 일부 명사에게 중동문제에 대한 해석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껏해야 40~50명의 연구자가 활동할 뿐이다. 그나마도 대다수가 성서학이나 신학을 연구한다. 중동 정치학이나 교육학, 경제학, 사회학 등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10명 남짓에 불과한 형편이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이 자기 전공에 기대어 중동의 일부만 설명할 수 밖에 없고 전역을 조망할 실력을 기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책을 쓰게 된 배경 중 하나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종합적인 전문가라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연구를 늘려서 종합적인 이해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가 편중된 이유 중 하나는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친이스라엘 성향이다. 우리나라 이스라엘 연구의 시작은 교회인데, 교회가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고대 이스라엘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분야의 필요성에 비해 과도하게 연구가 몰렸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과 현대 이스라엘 사이에 간극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미약하다. 고대 이스라엘, 다윗이 골리앗에게 돌을 던지던 억압 받는 민족상이 크게 부각됐고, 이를 현대 이스라엘에 그대로 적용하다보니 현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있다는 지점이 대중에게는 잘 소개되지 않았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고초를 겪는 민족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비극과 겹치기 때문에 국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됐고 심지어 한국인이 ‘두번째 유대인’이라는 인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경험적 동질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지 않나.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뭔가.
 

“억압 받는 유대인의 이미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이후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후 60~70년대 새마을운동을 추진할 때 모델이 된 것이 이스라엘의 키부츠 운동인데, 이 때 유대인 이미지의 ‘정치화’가 이뤄졌다. 키부츠 이념에 가미됐던 마르크스주의적 이념은 모조리 삭제된 채 개발이념만 차용됐다.

당시 새마을운동을 추진한 국내 관료가 이스라엘 히브리대 농과대 출신이었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이후 90년대부터는 신화적, 정치적 이스라엘을 찾아 이스라엘로 ‘순례’를 떠나는 한국인이 많아졌다. 이를 유대인 이미지의 상업화로 규정할 수 있다. 신화화는 정치화를 가속했고, 정치화는 상업화를 폭발시킨 셈이다.”

△ 신선한 시각이다. 종래의 이-팔 이해가 시온주의와 인종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사회와의 동질성을 추적해 들어간 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를 이어받을 후학양성은 크게 위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가. 

“많이 안타깝다. 지난 2010년 건국대 히브리어학과가 폐지됐다. 연구의 맥이 한 차례 끊긴 셈이다. 1991년부터 2010년까지 약 460명의 학생이 이 학과를 거쳐 갔다. 국내에서 연구자로 활동하거나 각종 산업체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독일 등 국제연구소에서 중동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이들이 국내 중동문제 연구의 뿌리를 다시 세울 것이라고 격려하지만 연구의 흐름이 끊긴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한때 중동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국내 중동학회는 이슬람 연구에 크게 치우쳐 있다. 사실상의 이슬람 학회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팔 문제 등에 대한 연구나 이해는 소수에 불과하다. 내부에 이스라엘을 연구하는 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분야가 성서학 등이라 중동문제를 조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국내에는 아랍어와 히브리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사람이 없다. 회장을 지낸 나도 능통하지 못하다. 풍문에 따르면 북한에도 히브리어 가능자가 있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도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에 히브리어를 구사할 줄 아는 외교관이 배출돼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최창모 소장은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비교종교학, 중동학, 신학 등이다. 논문으로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창 4장)의 구조와 의미」, 「시온주의 운동의 이념과 유대 민족통합 전략」, 「'중세이슬람 고지도의 발전과정과 세계이해」 등이 있다. 『나의 미카엘』, 『유대교와 이슬람, 금기에서 법으로』, 『기억과 편견』 등의 책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