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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센 베스도 물리치는 토박이의 힘
억센 베스도 물리치는 토박이의 힘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7.14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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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34. 쏘가리

 

“나무도 쓸 만하게 곧은 것이 먼저 베이고(直木先伐), 단 샘물은 먼저 마른다(甘井先竭)”고 한다. 그래도 남겨진 굽은 나무가 先山을 지키고, 사람 노릇 못하는 병신자식이 효자노릇을 한다. 그리고 같은 뜻으로 “곧은 나무 먼저 찍힌다”라고 하는데, 무리 중에서 지나치게 뛰어나거나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미움을 받기 쉽다.
쏘가리(Siniperca scherzeri) 물고기도 그렇다. 민물고기(淡水魚)의 제왕이라 불릴 만큼 멋나고 날쌔면서도 맛이 좋아 회·매운탕·저냐(煎)등으로 미식가들의 호기심을 끈다. 이렇게 인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잡아먹으려드니 별수 없이 씨가 마를 수밖에 없다.
큰 호수가 몇 개 있었기에 망정이지 얕은 강만 있어 요새처럼 강바닥이 말라버렸더라면 진정 종자도 못 건질 뻔했다. 그런 점에선 호수가 한몫을 한 셈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무지하고 오만에 찌든 인간들의 심술에 어디 하나 남아나는 것이 없다.

▲ 쏘가리사진출처: greenfish.co.kr

옛날에도 쏘가리가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선인들의 詩句나 그림, 도자기들에 흔히 등장했다. 또 예로부터 준수한 생김새와 최고의 뛰어난 맛 덕분에 天子魚로 불리기도 했다. 배스와 함께 낚시꾼들의 루어낚시에 안성맞춤인 어종이다.
아마도 쏘가리라는 이름은 지느러미가시가 쏜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일 터다. 쏘가리를 몸 색깔이 아름답다고 錦鱗魚라 부르고, 魚(쏘가리 , 물고기 魚)라고도 한다.
궐어라는 물고기이름에 재미나는 이야기가 하나가 있다. 임금이 사는 곳을 大闕이라 하고, 쏘가리 과 대궐의 闕자는 뜻은 다르지만 발음이 같다. 그래서 쏘가리그림을 그려도 반드시 한 마리를 그렸으며(태양이 하나이듯 임금은 언제나 한 사람이니까), 두 마리를 그리면 국가나 군주를 전복할 것을 꾀한 죄(謀反罪)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아따, 무서운 세상. 모반이란 말만 나와도 목이 댕강 날아가는 세상이 아니었던가.


쏘가리는 농어목, 꺽지과의 민물고기로 한국이나 중국을 원산지로 보며, 한국의 꺽지과 고기에는 쏘가리와 꺽지, 꺽저기 3종이 있다. 몸길이 20~30cm 이상으로, 50cm가 넘는 것도 흔하다. 지느러미에는 무척 날카로운 가시가 있고, 아래턱(下顎)이 좀 길며, 옆줄(側線) 또한 뚜렷하다. 몸통은 옆으로 납작하고, 몸은 검누런 바탕에 둥근 갈색 반점(무늬)이 흩어져 있다. 한마디로 날렵하고 때깔 좋은 맵시 나는 물고기다. 쏘가리는 물이 아주 맑고 자갈이나 바위가 많은 큰 강에 산다.
물고기나 짐승이나, 또 사람 할 것 없이 초식하는 동물은 굼뜨고 온순하나 육식하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거칠고 포악하다. 쏘가리는 肉食하는 어종으로 특히나 등지느러미가시는 바늘 못지않게 뾰족하고 예리해 맨손으로 잡기에는 두렵다. 등지느러미가시는 12~13개고, 얇은 막으로 연결돼 있으며, 보통 때는 드러눕던 가시가 자극을 받으면 성내면서 반사적으로 버쩍 선다. 도마 위의 고기가 칼을 무서워하랴(俎上肉不畏刀). 놈들도 도마 위에 올랐으면서도 칼이 살짝만 건드려도 바늘을 삐죽 세운다.


어쨌거나 쏘가리(mandarin fish)는 물이 매우 맑고 흐름이 빠른 바위가 많은 곳에 산다. 쏘가리는 새우나 수생곤충, 잔물고기를 잡아먹지만 다른 큰물고기 모두가 이놈들의 밥이 된다. 그래서 강물의 먹이사슬(food chain)에서 맨 끝 자리에, 그리고 먹이 피라미드(food pyramid)에서는 꼭지(頂点)에 올라있다.
쏘가리는 5월에서 7월에 걸쳐 산란한다. 돌 옆에 가만히 붙어있다가도 휙휙 쏜살같이 내빼며, 발정기에는 다른 놈이 접근을 하면 옆구리를 바위에다 썩썩 문지르면서 잔뜩 겁을 준다. 또 좀 얕은 여울물가로 나와서 자갈밭에다 밤에 알을 낳고, 부화된 새끼물고기(稚魚)는 빠르게 성장해 2년 후면 25cm넘게 다 자란다.
쏘가리 중에서 바탕색이 누런 黃쏘가리가 있다. 이는 쏘가리와 같은 종으로 검은 색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없어진 돌연변이종이다. 쏘가리 말고도 황금색의 송어·미꾸리·메기 따위도 흔히 나온다고 하고, 색소결핍이 일어난 금붕어나 비단잉어는 그 값이 천정부지다. 어쨌거나 돌연변이로 생긴 생물들은 생존력(경쟁력)이 약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터줏고기가 외국에서 든 도입종에 쪽을 못 쓰고 판판이 당한다고 해서 걱정이 태산이다. 물고기를 키워 먹겠다고 들여왔다가 생태계 교란으로 큰코 다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오염과 남획으로 최근에는 멸종위기를 맞았고, 5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한달 여는 어획을 금하고, 18cm 이하의 어린 고기를 잡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소양호에만 해도 쏘가리 산란장이 있다. 인공수풀에 알을 달라 붙이게 하는데, 사료개발의 덕에 근래 와서 쏘가리를 인공부화를 시켜 사육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쏘가리는 육식하는지라 살아있는 먹잇감이 난제였고, 특히 치어에 산 먹이를 주는 것이 힘들었다.
이렇게 쏘가리를 키워 먹겠다는 것 말고도 얼마만큼 키워 호수에 풀어 놓아 외래종의 치어를 마구 잡아먹게도 하니 일석이조다. 다시 말해서 별 수를 다 써도 억센 배스(bass)나 블루길(blue gill)을 잡을 길이 없었다. 중과부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놈들을 눌러 이기는 우리 토종물고기가 있으니 바로 쏘가리다. 본토박이 쏘가리의 힘찬 외침이다.
“야, 자식들 나와라. 한 판 붙어보자.”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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