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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이념지형 분석 … “박정희의 민족주의는 ‘레토릭’”
한국정치의 이념지형 분석 … “박정희의 민족주의는 ‘레토릭’”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7.07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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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역사아카데미 집단서평회_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 강정인 지음|아카넷|2014


2015년 6월 25일(금) 저녁 7시 30분, 푸른역사아카데미가 진행하는 ‘서평회’가 시작됐다. 대상 도서는 강정인 서강대 교수의 책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였다. 김동춘(성공회대), 임지현(서강대), 장동석(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이 대담자로 참석했다. 사회는 사회학자 정수복 박사가 진행했다.
알려진 대로 강정인 교수는 그간 문제적 저작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사회과학의 서구 종속성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초상』,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 『넘나듦(通涉)의 정치사상』,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플라톤의 이해』, 『마키아벨리의 이해』, 『통치론』(공역), 『로마사 논고』(공역), 『정치와 비전 1-3』(공역) 등이 있다. 이러한 저술 목록은 그가 저술에만 온통 집중해왔음을 보여준다. 이날 집단 서평회에서 오간 대화들을 정리했다.
자료·사진 제공=푸른역사아카데미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강정인: 이 책은 한국현대정치의 이념적 지향을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통해 그려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4대 이념은 자유주의, 보수주의, 민족주의, 급진주의다. 이 네 가지 이념으로 한국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왜곡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적어도 세계 시장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네 가지 이념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서구세계의 연구를 따른다는 부담감과 불가피성은 있다. 그러나 학문을 한다는 것은 비록 한글로 쓰더라도 국제적인 관점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4대 이념의 원산지인 서구와 이를 뒤늦게 수용한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4대 이념의 한국적 전개와 변용은 한국 정치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또한 역으로 4대 이념의 서구적 특수성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히다.


또한 이 책은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가 이념적 전개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세계사적 시간대와 일국사적 시간대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전자의 압도, 후자의 반발 및 변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한국 현대 정치의 이념적 지형을 규정하는 ‘구조적 조건’이라면, ‘민족주의의 신성화’는 한국정치의 이념적 지형에 대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규정적 영향력과 한국정치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형성된 이념적 지형의 ‘내용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의 신성화는 단순히 구조적 조건의 수동적 반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이래 한국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정치적·역사적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형성된 독특한 특징이다.


정수복: 한국의 정치이념을 네 가지로 요약하고,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했다. 여기에 대해서 토론을 진행해 보고자 한다. 제가 강정인 선생님을 훌륭하게 생각하는 건 외국학자의 이론을 두고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학자들의 이론이나 논의를 가져와 논쟁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김동춘: 저자의 민족주의 신성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데, 민족주의를 하나의 사상으로 보는 것과 감정으로 보는 것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또 정치가들이 사용하는 민족주의도 다른 차원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신성화됐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고 본다. 한국의 전통이 아니라 분단 반공체체의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적 민족주의를 실현할 수 없는데서 오는, 즉 통일이나 일본·미국과의 자주적인 관계를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전통으로 민족주의를 신성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의 선택 이데올로기 민족주의는 철저한 현실정치라고 하는, 미국이 만들어 놓은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기에, 역시 사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일종의 레토릭(rhetoric)이 아닌가. 반민족적 민족주의라는 용어도 박정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용어일 것이다. 박정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그가 경험한 일본의 군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아닐까. 박정희의 민족주의도 레토릭이란 생각이 든다.

임지현: 번역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독일의 나치즘을 내셔널 소셜이라고 하는데 국가사회주의가 아니라 국민사회주의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번역의 문제가 많은 것을 축약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민족주의의 신성화인데, 나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의 신성화라고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민족주의는 정치종교다. 신 대신에 민족, 국가, 계급, 젠더 세속적인 대상을 섬기기에 민족의 신성화가 강정인 선생님의 이야기에 더 잘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 박정희 문제인데, 해방 이후 자유주의 보수주의 말고도 만주국에서의 경험 등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어야 한다. 서양을 하나의 관념체계로 묶어버리는 것인데, 박정희의 이런 측면은 일본 극우들의 민족주의적 사상과 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한석정 선생의 논문을 보면 박정희의 계획경제, 사유재산 불인정, 동원체제, 군사 퍼레이드, 주민등록증 제도 등 통치제도 방식은 만주국의 경험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정희를 이해하는데 만주국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빠진 게 아쉽다.


셋째, 박정희 독재에 관한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인지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보고, 내가 우리의 좁은 경험을 일반화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만일 내가 반공주의자이고 급속한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보장 받았고, 이러한 경험에서 본다면 박정희를 나쁜 독재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가 경험한 박정희 체제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박정희 체제가 같은 것일까.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됐다. 독재와 민주주의가 엉켜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해야 지금을 이해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나쁜 부분을 독재라고 이야기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도망가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이론은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정당화해왔다. 그래서 20세기 독재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부분도 박정희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남한이야 말로 냉전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본다. 동유럽 계획경제의 효율성이 70년대 후반 경직돼 갈 때 남한이나 대만이나 싱가폴 등이 그 위치를 점했다고 본다.

장동석: 책 내용에 대해서 한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민족의 영원성이라는 것이 일종의 종교 같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학문적으로 학습된 역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 책은 굉장히 많은 질문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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