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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의 바람 타고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의 인문학’
유행의 바람 타고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의 인문학’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6.30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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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철학과현실> 105호의 제안

철학문화연구소가 펴내는 계간 <철학과현실>105호(2015 여름)가 흥미로운 특집을 내놨다. ‘인문학 진흥을 위한 대책을 논하다’가 그것이다. 위행복 한양대 교수의 「대학인문학의 회생이 인문진흥의 관건이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의 「정부주도 인문학진흥의 가능성과 한계: 인문한국(Humanities Korea)사업과 그 이후를 중심으로」, 김성민 건국대 교수의 「인문학의 위기와 포스트-인문한국(Post-HK)의 방향」 등을 실었다.

한편 <철학과현실>은 늘 시의적 주제를 골라 ‘특별좌담’으로 소화해왔는데, 이번 여름호 역시 「한국의 민주정치는 ‘좀비 민주정치’인가?―선거법 개정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특별좌담을 진행했다. 김민전, 박범진, 손봉호, 이명현이 참여했다. 一讀할만한 시의적 주제임에 틀림없다. 위행복, 조성택, 김성민 교수의 제언 일부를 발췌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위행복 한양대 교수(중국학과), 「대학인문학의 회생이 인문진흥의 관건이다」
1996년, 제주도에 모인 국공립대학 인문대학자들에 의해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선언된 이래 몇 번의 유사한 진단과 발언이 반복됐는데,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인문학이 진정한 위기에 처한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왜인가? 대학 바깥의 ‘인문학 열풍’이 오히려 인문학을 왜곡시킬 조짐을 보일 뿐만 아니라, 대학 바깥에서는 ‘열풍’이 불고 있다는데, 막상 인문학의 본산인 대학에는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무용’한 학문으로 치부되기 쉽고 시장으로부터 외면되기 쉽지만, 저마다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존엄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국가사회 발전의 장애물인 부도덕과 부패를 걷어내려고 꿈꾸는 인문학의 진흥이야말로 선진국 진입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인문학 스스로도 자기변혁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인문학의 사활이 시장의 선택에 맡겨져서도 안 된다. 제반 원인들로 인해 대학인문학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 ‘인문법’ 제정이나 업적평가제도 개선 등 대학인문학의 회생 조치를 서둘러서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인문학진흥종합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교육부에 감사하며, 그 결과에 대한 기대도 크다.
또한 인문학이 그 본령에 충실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요청하고 싶다. 인문학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다양성과 자율의 토양에서 자라는 종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무성하게 자라난 인문학의 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면, 혹은 인문학의 풍성한 과실이 사람들에게 제공되기를 원한다면, 관심이 지나친 간섭으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요구가 인문학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인문학 성장의 기반을 조성한 후, 스스로의 힘으로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가는 과정을 지켜봐주기를 요청하고 싶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철학과), 「정부주도 인문학진흥의 가능성과 한계」
대학에서 인문학이 퇴조하는 상황과는 달리 최근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는 경제성장에 따른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적 욕구로 이해할 수 있으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일반 대중들의 인문학에 대한 자발적 관심이 자칫 유행처럼 끝나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개인의 삶이 고양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품격이 올라가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인문정신으로 확대 발전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인문학 프로그램들은 그 주제나 내용에 있어 대학의 기초교양으로서의 인문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교양과 내면의 만족감이 주된 목적이다. 그러나 인문학이 개인의 내면적 만족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적 가치로 확대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요컨대, 개인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닌 사회적 공공재로서의 인문학을 기대하는 것이며, ‘무중력’의 인문학이 아닌 시민적·공공적 가치를 지향하는 인문학을 기대하는 것이다.
공공재로서의 인문학은 한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적 품격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문화적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몇 사람의 뛰어난 예술가나 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다. 대중들이 공유하고 향유하는 예술과 인문학의 수준에 의해서 한 사회의 품격이 결정되며, 나아가 예술과 인문학은 한 사회의 집단적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인문학이 대학의 학술적 연구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공공재, 문화자원으로 기능할 때 한국사회에서 ‘인문정신’의 발현이 비로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대학과 사회, 연구와 교육, 전문지식과 대중지식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통합할 수 있는 추진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경우 대학 내 인문학의 ‘연구와 교육’은 교육부 소관이며, 도서관이나 박물관 등 ‘시민생활과 문화자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으로 분리돼 있어서 사회적 공공재로서의 ‘인문정신’을 진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1세기 우리사회가 진정 문화융성과 함께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미국의 국립인문진흥재단(NEH)과 같은 인문진흥 전담 기관을 설치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김성민 건국대 교수(철학과), 「인문학의 위기와 포스트-인문한국(Post-HK)의 방향」
지금 제기되고 있는 포스트 인문한국의 필요성은 첫째, 인문한국 지원 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제기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문한국 연구소들은 연구 성과 이외에도 많은 사회적·실천적 성과들을 축적해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 연구소들이 자립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상태에서 인문한국 사업 지원의 종료는 이제까지 쌓아온 연구 및 사업 역량의 해체이며, 지난 10년 동안의 사업성과를 ‘無’로 돌리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둘째로, 현재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연구중심에서 사회적 확산 및 실천적 적용으로의 전면적 전환’ 시점에 서 있다. 그들은 어젠다 연구와 더불어 ‘교양강좌 및 교육프로그램개발’, ‘디지털콘텐츠개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과 연계된 사회적 의제화 및 사회적 확산 사업들을 추진해왔으며, 적지 않은 성과들을 이룩해왔다. 이런 점에서 현재 인문한국 연구소들은 ‘어젠다의 사회적 의제화와 연구소의 자립화’에서 핵심적인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인문한국 연구소들은 현재 세계적 연구소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성과들을 내고 있지만, 그것이 아직까지 전면화 되지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도 포스트 인문한국(Post-HK)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4년 목포대의 도서문화연구소는 ‘Scopus’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룩했으며,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와 서강대의 동남아연구소도 한국학을 세계화하는 성과와 더불어 한국학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인문한국 연구소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의 일부만 가시화된 것일 뿐, 어젠다의 특성상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연구소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 인문한국의 지원 방향은 각 필요성에 맞춰 ①인건비 지원은 HK교수 정년트랙보장 및 연구소 재직을 전제로 해 이를 시행하는 대학의 연구소에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지원하는 대상은 HK연구교수와 연구보조원의 인건비를 일차적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②사업비 지원은 연구자료 축적 및 연구 활동보다는 HK연구소의 사회적 적용 및 확산 사업, 그리고 HK연구소의 세계화를 목표로 하는 사업에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③연구비 지원은 학제적 연구를 넘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한 인문적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는 융복합연구 지원을 대상으로 삼고 이를 권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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