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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 ” 월전 인물화의 비밀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 ” 월전 인물화의 비밀
  • 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승인 2015.06.29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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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를 말하다: 월전 장우성 10주기 특별전 「참삶의 꿈-월전의 인물화」展

 

▲춤, 1993. 128x97cm, 종이에 수묵채색, 월전미술문화재단.

「참삶의 꿈: 월전의 인물화」展(이천시립월전미술관 특별전시실 6월 11일~9월 6일)은 한국 근현대 동양화의 대표적 작가인 月田 張遇聖(1912~2005)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예술세계에 있어서 중요한 갈래였던 인물화를 중점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다. 성격적으로는 장우성의 전체 예술세계를 집성, 망라했던 2012년의 「월전의 붓끝, 한국화 100년의 역사」展의 후속 전시이면서, 그의 한 장르의 작품들에 집중한 첫 번째 전시로서의 의의도 지닌다.

장우성의 전체 예술세계를 돌아보면 인물화는 그에게 있어서 단순한 하나의 장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가 그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던 것도, 기량을 쌓아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던 것도, 또 삶의 가치를 가장 진하게 담아냈던 것도 다름 아닌 인물화였기 때문이다. 그의 인물화는 전통회화와 서양회화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수묵채색 인물화로, 현대의 수많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줬고, 이를 통해 현대 화단의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미술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초상화는 장우성이 본격적으로 그림에 입문하기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장르다. 어린 시절 조선 말기, 근대 초의 대표적 초상화가였던 蔡龍臣(1850~1941)의 사실적인 초상화를 본 뒤의 감동은 그를 화가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실제로 장우성은 가장 먼저 조부와 부친, 모친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화가로서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에 유행하던 사진을 이용한 극사실적 묘사법으로 얼굴을 그려냈고, 신체는 전통적인 선묘법을 이용하여 평면적으로 처리했다. 가족에 대한 孝와 禮를 통해 참삶을 추구했던 젊은 시절 장우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장우성이 젊은 시절 회화 기량을 연마하고, 표출시켰던 것은 서양화풍에 입각한 사실적인 인물화를 통해서였다. 산수화가 중시됐던 전통시대와 달리 인물화가 중요한 장르가 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새로운 현상이었다. 이는 시민사회의 발전으로 개개인의 일상과 사적인 내용들이 그림의 주제로 부각되면서 자연스럽게 인물화가 중요시됐던 구미 근대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장우성의 초기 인물화 가운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름다운 여성을 그린 美人圖다. 이 역시 근대기에 이르러 서구 예술론의 전파로 美가 절대시되고 여성, 미인을 미의 정수로 인식하게 되면서 미인도가 부각됐던 시대적이 배경이 작용한 것이다. 장우성 역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적절한 주제로 미인을 선택했던 셈이다.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대상의 표현을 통해 참삶을 추구했던 장우성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聖畵는 장우성의 중년 이후 작품세계에서 주목되는 장르다. 그는 성모마리아의 聖年을 기념하는 1950년의 「국제 聖 미술전」에 한국 대표로 출품하는 등, 공적인 목적으로 성화를 그렸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던 장우성이 많은 성화를 그렸던 것은 그가 당시를 대표하는 뛰어난 수묵채색 인물화가로서, 인물묘사가 중요한 성화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장우성은 한국 가톨릭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전통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가톨릭 미술의 요소를 차용해 한국적으로 번안한 새로운 성화를 만들었다. 그에 의해 한국적으로 변모한 성화는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것이었다. 본래 장우성은 신자가 아니었으나,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2004년에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그린 성화는 자신이 믿었던 神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됐다.


장우성은 동양 정신세계의 원형으로서 불교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는 종교로서보다는 사상적인 차원에서였다. 이러한 면은 그가 불교를 주제로 다룬 작품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데, 실제로 그의 불교주제 회화들은 본격적인 불교 회화가 아니라, 성격과 양식에 있어서 文人畵와 접점이 많은, 승려가 깨달은 순간의 감흥을 표현한 禪宗畵와 유사하다. 성화와 불교 주제 회화는 종교적 성스러움을 통해 참삶을 추구했던 장우성의 면모를 엿보게 해준다.
인물화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은 장우성이 그의 후반기 예술세계에서 文人畵에 집중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렇지만 그에게 있어서 인물화의 의미나 중요성이 작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세계를 반영한 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은 그림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이해하는 게 적절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 장우성의 인물화를 전통회화에서의 분류인 故事人物畵와 風俗畵의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 승무도, 1937년, 비단에 수묵채색, 227x182cm, 국립현대미술관

고사인물화는 훌륭한 혹은 경계해야할 不德한 옛 인물이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그려냄으로써 교훈을 주고자하는 목적으로 그려지던 것이다. 이러한 鑑戒的 성격의 고사인물화는 유교의 영향력이 컸던 전통시대와 달리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효하지 못했고, 자연스레 많이 그려지지도 않았다. 이러한 면에서 장우성이 고사인물화에 다시금 주목한 것은 문인화를 통해 전통의 가치를 되살리려던 그의 입장에서 일면 당연한 것이었다.

 


풍속화는 전통적으로 당대의 일상과 생활을 표현하던 그림으로, 대상 자체는 달라졌지만 좋은 모습에는 찬사를, 반대의 모습에는 비판적 시각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고사인물화와 유사한 성격도 보여준다. 이러한 면은 장우성의 풍속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는 밝고 희망찬 현재의 모습을 그렸는가 하면, 경계해야할 세태도 담아냈다. 장우성의 고사인물화와 풍속화는 본연의 목적처럼 고전적 덕목인 ‘권선징악’을 상기시킴으로써 참된 삶을 가꾸어가고자 하는 의도도 내포했다.
장우성은 화가로 활동했던 70여년의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작품을 그렸고, 또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가 시종일관 유지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그림을 통해 참삶을 추구했던 점이다. “좀 더 인간적이고 사람에게 따뜻한 분위기를 풍겨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려고 마음먹어본다”는 장우성의 언급은 그에게 있어 그림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알려준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이었다. 장우성은 자신의 예술세계 전체에서 이를 추구했다. 그렇지만 그의 참삶의 추구를 가장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인물화이다.

장준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월전의 작품을 감상하는 미적 포인트는?

▷193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70년의 오랜 기간 동안 변모해온 화풍의 다양성과 역사성

▷원근법과 명암법 등 서양화법의 장점을 결합시킨 수묵채색화의 참신성
 
▷사진이 활용된 극사실적 얼굴표현과 전통의 평면적 신체표현이 결합된 초상화의 시대성

▷최초로 한국인으로 번안된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모습의 선구성과 독자성

▷화면 위 畵題를 통해 드러나고, 강조되는 그림의 의미와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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