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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한 복판을 응시한 시선과 전쟁연구의 새 지평
6·25전쟁의 한 복판을 응시한 시선과 전쟁연구의 새 지평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6.23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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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 ‘전쟁’, 가까이에서 혹은 넓게


6월 25일을 앞두고 출판계가 ‘전쟁’ 관련된 책들을 잇달아 내놓기 시작했다. 참상의 한 가운데서 혹은 전쟁의 본질을 응시하는 책들까지 다양하다.
6·25를 기억하는 우리들에게는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작전: 현봉학 박사와 포니 대령의 미담사례 포함』(스탠리 웨인트라웁 지음, 송승종 옮김, 북코리아)와 『미국의 6·25전쟁사: 왜, 비긴 전쟁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을까』(정길현 지음, 북코리아)가 우선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쟁을 좀 더 넓은 시야 속에서 담아낸 책들도 있다. 전쟁은 일찍이 ‘유럽’에서 혹독하게 진행된 바 있으니 『유럽사 속의 전쟁』(마이클 하워드 지음, 안두환 옮김, 글항아리) 같은 수작도 놓칠 수 없다. ‘폭력으로 평화를 일군 1만 년의 역사’라는 부제가 많은 것을 말해주는 책 『전쟁의 역설』(이언 모리스 지음, 김필규 옮김, 지식의날개)은 저자의 주장이 파격적이어서 솔깃하다.


‘흥남철수’는 분단 한국의 깊은 비극적 상처다. 문학과 영화 등에서 이런 흥남 비극을 다룬 것은 제법 있다. 스탠리 웨인트라웁이 쓴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과오의 순간들에 관해 말해주는 책이지만, 한국전쟁에 관한 다른 저서들과 확연한 차별성도 보여준다. 이 책은 장진호 부근에서 벌어졌던 ‘인간들’에 대한 정교하고 상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타임머신을 태워 전투의 현장으로 데려다줌으로써, 바로 그때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온몸으로 느끼고, 울고, 웃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목처럼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만이 다뤄진 건 아니다. 한국전쟁에 개입하기 위행 압록강을 몰래 건너온 중공군의 기상천외한 수법, 마오쩌둥 안들인 마오안잉의 사망, 만주 국경 일대에 대한 맥아더의 ‘수박 겉핥기식’ 공중정찰, 일본 주둔 극동군 총사령부 정보참모의 판단 착오, 트루먼 대통령의 ‘원자폭탄’ 발언 파장, 중공군의 기사도와 미군의 답례 등 다양한 전쟁 이면 에피소드들을 만날 수 있다.


북한대학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길현의 책 『미국의 6·25전쟁사』 역시 ‘부제’가 의미를 암시한다. 미국은 왜 우세한 무기체계와 압도적인 군수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을 ‘비긴 전쟁’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는가, 저자는 이 문제의식을 밀고 나갔다. 바로 이 접근 태도가 흥미롭다. 저자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쓰는 동안 필자는 ‘부끄러웠고’ 연구를 거듭할수록 ‘회한’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부끄러웠던 이유는 …… 불과 6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일어났던 6·25전쟁의 실체와 군사작전의 수행과정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회한은 6·25전쟁 과정에서 전개된 다양한 합동작전 등을 더 일찍 연구했더라면 군 재직시 작전계획 수립 등을 훨씬 발전적으로 수행했을 것이라는 후회를 말한다. 어쨌거나 이 책은 36년 군에 몸담았던 한 정치학 박사가 ‘6·25전쟁의 작동 과정’을 면밀히 분석한 데 그 의미를 매겨야 할 것 같다. 그의 말대로 “군 내부에서 6·25전쟁 연구의 새로운 붐을 조성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책이다.


마이클 하워드는 옥스퍼드대 근대사 분야 명예교수다. ‘전쟁과 사회’라는 관점에서 전쟁사를 연구해온 세계적인 전쟁사학 중의 한 사람이다. 『유럽사 속의 전쟁』은 1천년의 유럽사를 ‘전쟁’이란 키워드로 읽어낸 책이다. 책을 옮긴 안두환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이렇게 말한다. “하워드의 전쟁사 연구는 전쟁의 발발과 과정 그리고 영향에 대한 단순한 기술이나 분석이 아니다. 이는 칸트의 역사철학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문학으로서, 폭력의 역사 속에서 인류의 도덕적 진보를 찾아내고자 하는 야심찬 시도다.” ‘폭력의 역사’ 속에서 ‘인류의 도덕적 진보’를 찾아내려는 시도란 어떤 것일까. 저자의 말 한 마디를 빌려보자. “전쟁을 전쟁이 치러진 사회·문화·정치·경제적 배경으로부터 분리해서 따로 생각하는 것은 전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측면을 간과하는 것이다.” 저자는 1천년이란 긴 시간을 씨줄로, 거기에 그려진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날줄로 유럽 사회 전체의 발전을 추적했다. 따라서 이 책의 초점은 전쟁의 승패를 분석하거나, 시대별 전쟁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대신,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전쟁과 사회’의 복합적 상호 영향관계를 입체화하는 데 주력한다.
원제가 ‘War! What Is It Good For?’(1970년에 발표돼 베트남전 당시 대표적 저항곡으로 불렸던 에드윈 스타의 「워(War)」에서 따온 제목이다)인 『전쟁의 역설』은 큰 관점에서 봤을 때 전쟁은 인류에게 이롭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역설’이라고 번역서 제목을 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전쟁이 이롭다니? 저자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게 재밌다. 첫째, 전쟁은 더 크고 조직화된 사회를 만든다. 맥아더 군정과 일본사회를 생각해보면 된다. 둘째, 전쟁은 더 크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간이 찾아낸 유일한 방법이다. 셋째, 전쟁으로 평화로워진 사회는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됐고 삶의 질도 높였다. 물론 단편적으로 바라보면 이 과정이 불공평한 건 틀림없지만,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내 오면서 전쟁의 승자건 패자건 할 것 없이 후손들은 더 큰 사회, 더 강력한 정부 아래서 과거보다 잘 살게 됐다. 이게 저자의 역설적인 주장이다. 저자 이언 모리스는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고대 경제를 거쳐 지금은 빙하기 이후의 세계사를 연구하고 있다. 하워드나 모리스의 책에서 한 가지 더 의미를 건져야 한다면 그것은 6·25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한 우리들에게 전쟁사 연구가 어떤 차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좌표를 보여준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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