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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전된 사유의 편린들, 새로운 사상 창출의 조건을 말하다
침전된 사유의 편린들, 새로운 사상 창출의 조건을 말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6.23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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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격동의 시대와 자아의 인식』 엄정식 지음|세창출판사|407쪽|22,500원

지금까지 검토해 온 것이 어느 정도 옳다면 우리는 전통적인 사상의 맥을 따라 선조 사상가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당연히 이 땅에서 새로운 관심과 문제의식을 통해 또 하나의 비판적 종합을 창출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로운 사상적 풍토가 마련돼야 하며, 한국 전통사상을 현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또한 그 주체가 ‘민족적 자아’로 확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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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이사장 정민근)이 벌이는 일 가운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가 있다. 이게 좀 재밌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진짜 석학 강좌가 맞냐는 비판에서부터 ‘양로당’(청중들이 대부분 나이 많으신 분들이라) 강좌라는 폄하까지 있다. 그렇더라도 이 인문강좌가 꾸준히 학계와 대중의 만남을 통해 ‘인문학적 사유’에 대한 대중적 기반을 확장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계산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0년 12월 18일부터 2011년 1월 29일까지 다섯 번에 걸쳐 매주 토요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진행된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가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의 「격동의 시대와 자아의 인식」이었다. 이 강좌에다 2013년 5월 한국철학회 60주년 기념 춘계학술대회의 기조강연 「과학기술시대의 철학과 과학정신」을 덧붙인 게 바로 『격동의 시대와 자아의 인식』이다. ‘격동의 시대’라는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거기에 ‘철학자 엄정식’이 한 사람의 철학도로서 살아오면서 고민해 온 내용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이른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철학도로서 그동안 사색하고 고민해 온 내용들을 호소하듯 혹은 절규하듯 청중들에게 토로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체계적으로 엮어진 한 권의 논저라기보다 그동안 침전된 사색의 편린들을 나열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됐다. 제1장 소크라테스적 자아의 인식, 제2장 과학기술시대와 비판적 합리성, 제3장 한국의 민족사상과 공동체적 자아, 제4장 행복과 자아의 인식, 제5장 종합토론을 이었다. 각각의 장이 따로 떨어져 있지만 모두가 ‘자아’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내적 일관성을 견지한다. 소크라테스적 자아 인식, 비판적 합리주의, 공동체적 자아, 행복 등은 멀리 있는 추상적 주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째서 ‘자아의 인식’을 그토록 강조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 철학자는 가치의 탐구와 의미의 분석을 통해 질병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처방의 역할을 담당한다. 철학자는 현실의 중요성과 상식의 소중함을 강조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사변적 이론가일 뿐이지 실천가나 행동가는 아니다. 물론 철학자가 책임 있는 지성인으로서 혹은 양식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일에 관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철학의 고유한 임무는 아니다. 치유는 역시 행동하는 지식인, 가령 종교가이거나 시민운동가 혹은 정치가나 관료들의 몫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자기 치유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치유의 일차적인 임무는 이 땅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의 몫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 가기 위해서 진정한 의미의 자아 인식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자아의 인식 혹은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격동의 시대’에는 혼란이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상황의 판단에 무디어지고 개념적 혼동을 일으켜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참과 거짓, 그리고 행복과 쾌락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정한 자아를 인식할 수 있을까. 저자가 보기에 ‘진정한 자아 인식’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이 있어서 정상적인 상황에서조차 그 필요성을 실감할 수 없는 과제여서, 혼돈이 소용돌이치는 격동의 시대에는 이것이 더욱 생소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돈의 시대를 지혜롭게 넘어서려면, 진정한 자아 인식과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소크라테스적 자아 인식’을 책의 맨 앞에 내세운 것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다.
같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화학자’인 이덕환 교수는 이 책과 관련, 제2장 「과학기술시대와 비판적 합리성」 부분을 높이 샀다. 분석철학자가 과학 문제에 깊이 발언한 사례라는 것, 저자의 과학문화에 대한 이해가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 그래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적 접근에 제대로 공감한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제2장에서 과학정신이 배태한 비판적 합리주의의 미덕을 궁구한 저자는 한국의 공동체적 자아로 눈을 돌려 ‘새로운 한국사상의 창출’을 우회적으로 주문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검토해 온 것이 어느 정도 옳다면 우리는 전통적인 사상의 맥을 따라 선조 사상가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당연히 이 땅에서 새로운 관심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또 하나의 비판적 종합을 창출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새로운 비판적 종합 앞에는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거의 유일하게 이 땅에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조들이 격돌하고 있으며,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 나라 강산과 국가와 민족이 분단돼 서로 이질적인 사유 실험을 지속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사상에 대한 해석조차 공유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장애물 앞에서 새로운 한국사상의 창출은 어떻게 가능할까. 분명히 말하지만, 이 책은 ‘대중 강연’을 토대로 쓰였다. 때문에 저자는 심도 있는 해법보다는 ‘일반적’ 수준의 해법을 제시했는데, 먼저 자유로운 사상적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 전통사상을 현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하며, 이 주체가 ‘민족적 자아’로 확인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개인의 생각은 자신이 지닌 인격적 자아의 표현이듯이 한 민족의 사상체계와 문화는 ‘공동체적 자아’의 한 형태인 그 민족의 민족적 자아로부터 도출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상황이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비판적 종합으로서의 새로운 한국사상이 창출되기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철학자의 사색의 편린을 담았고, 대중 강연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호흡이 빠르고 쉽게 읽히는 미덕이 있다. 자아의 인식과 비판적 합리주의를 연결하고, 이를 공동체적 자아로 수렴해 한국사상의 새로운 창출을 주문한 것은 흥미로운 제안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저자의 고민에 깊은 감동도, 열정의 그림자도 쉬 읽혀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강연(강좌)’이란 한계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불투명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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