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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비교 연구, 고대 인류의 특성 밝힌다
유전체 비교 연구, 고대 인류의 특성 밝힌다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06.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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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06. 청동기시대

▲ 얌나야(yamnaya) 사람들이 장묘 문화와 전통을 유럽으로 전파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 출처: <네이처>
고대 인간 DNA 연구로 청동기시대에 대한 비밀이 밝혀질까. 지난 10일 <네이처>에 「DNA 데이터 증폭으로 청동기 시대를 밝히다」(DNA data explosion lights up the Bronze Age)라는 주제의 논문이 소개됐다. 이번 연구로 인도-유럽어의 전파와 기원에 관한 오랜 논쟁이 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4천년 된 머리카락 다발에서 첫 번째 고대 인류의 유전체를 발견한 지 5년만의 일이다.
고고학적 격언 중에 도자기류는 인구 이동을 추적하는 문화유적 관련 정보를 모두 알려주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런 이유로 고고학자들과 개체군 유전학자들은 사람들의 DNA로 고대 문화의 추가 고고학적 증거를 찾기 위해 협력했다. 고대 인구 유전체 연구는 저렴한 비용으로 DNA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특히 현대의 오염 물질로부터 고대 DNA를 분리했다. 질이 매우 저하됐긴 하지만 말이다.

청동기는 전세계 공통의 시대였을까
선사시대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고고학자들은 문자 이전 시대 사람들의 특성과 행동양식을 밝히고자 했다. 연구원들은 전세계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공통으로 겪었다고 간주한다. 기원전 3천년대에 구리채집법과 구리에 주석을 섞으면 강도가 세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청동기시대가 열린다. 이 시대의 경우 문자로 기록을 남긴 집단의 존재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지역에 따라 시대의 변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멕시코 중부의 유목민이 오랫동안 농작물 재배하다가 정착 농업을 막 시작하려 할 때, 아메리카 대륙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시릴 아이돈, 리더스북, 2010)에 따르면, 기원전 4천년 무렵 아메리카대륙 사람들은 거의가 수렵이나 채집을 했다.
덴마크 코펜하겐 자연사박물관의 고대유전학자 모르텐 알렌토프트(Morten Allentoft)와 에스케 빌러슬레프(Eske Willerslev)가 이끄는 팀은 기원전 약 3천년부터 서기 700년까지 유라시아에 걸쳐 살았던 101명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이 인구 규모의 염기서열 분석은 유라시아의 청동기시대에 관한 오랜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연구원들은 유럽에서 발견된 기원전 3천500년경의 청동기가 아시아에서 스페인 또는 발칸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했다. 기원전 약 3천년부터 기원전 약 1천년까지 격동의 시기에 새로운 기술과 전통문화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스텝(steppe)에서 시작해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질러 퍼졌다. 새로운 기술과 전통 문화는 미세하게 조작된 무기의 사용이나 말이 끄는 전차부터 장례 관행의 변화까지 다양하다.
알렌토프트는 염기 서열 분석으로 청동기시대 문화의 변화가 이주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 시대 사람들 생각의 확산 때문인가에 대한 고민을 풀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이주의 증거로 청동기 시대가 열릴 때 북부와 중부 유럽인들의 유전체 구성이 크게 변화했음을 제시했다. 기원전 3천년경 이들 유전체가 중동에서 온 초기 농부나 수렵 채집 생활을 한 초기 유럽인들의 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기원전 2천년경 이들 유전체는 기원전 약 2천900년경 스텝에서 떠오른 얌나야(yamnaya) 사람들의 문화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69명의 고대 유럽인들의 염기 서열을 분석한 이 연구로 연구원들은, 얌나야의 이주가 인도-유럽어를 서유럽으로 전파시킨 데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알렌토프트의 팀은 기원전 2천900년부터 기원전 2천500년까지 중앙 러시아의 알타이 산맥 부근에 살았던 얌나야 사람들의 유전 증거를 찾았다. 그리고 인도-유럽어가 왜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사용되는지 설명했다.
아울러 고대 인구 유전체학은 고대 사람들의 신체와 생리 특성도 알려준다. 알렌토프트는 101명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얌나야가 락토오스(lactose, 젖당) 내성에 대한 DNA 변이 가능성이 가장 높았음을 밝혔다. 오늘날 거의 모든 북유럽 성인들은 우유를 소화할 수 있지만, 청동기시대 유럽인은 그런 경우가 드물었다. 이는 초기 유럽인 농부들이 우유에서 칼로리를 얻었다는 이전 주장에 모순되고, 스텝 이주자들이 유럽인들의 특성을 만들었음을 암시한다.


빌러슬레프도 83명의 고대 유럽인들의 DNA를 분석해 7천700년 전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굵은 머리카락 그리고 수많은 땀샘과 연관된 돌연변이가 일반적임을 발견했다. 이는 잠재적으로 이들 그룹 사이가 연결됐음을 드러냈다. 키와 관련된 진화적 압력의 증거도 발견했다. 이베리아족의 경우 8천년 전 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도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키가 작아졌다. 반면 스텝에서 이주해 온 얌나야는 그들의 이웃보다 키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DNA로 밝힌 인도-유럽 어족의 기원
언어는 문화보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활과 화살의 쓰임은 언어를 알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문화의 확산이 언어와 꼭 관련이 있지는 않다. 이러한 언어 논쟁에도 고대 DNA가 개입되며, 170개의 표본을 분석한 연구에서 인도-유럽 어족 기원의 증거가 제공됐다. 인도-유럽어는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유럽 전역과 남부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됐다. 이탈리아, 게르만, 슬라브, 힌디, 토카리아의 언어 중 가장 광대한 어족이기도 했다. 때문에 언제 그리고 어디서 이들 언어가 전파됐냐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논쟁의 두 주요 이론은 아나톨리아(Anatolian)와 스텝 가설이 있다. 아나톨리아 가설은 최초의 인도-유럽어가 기원전 7천년 신석기 기간 동안 농업과 함께 아나톨리아(오늘날 터키에 있는 지역)로부터 퍼졌다는 가설이다. 언어 관련 데이터에 대한 계통 분석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고고학과 유전 데이터 역시 유효하다.


반면 스텝 가설은 최초의 인도-유럽어가 흑해-카스피 해의 스텝에서부터 퍼졌다고 가정했다. 최근 가설은 인도-유럽어가 기원전 약 3천700년에서 기원전 약 2천년 사이 초기 청동기 시대와 후기 동기 시대(Copper Age) 동안 퍼졌다는 주장이다. 특히 얌나야 문화 사람들에 의해 알려졌다는 설명이 덧붙는다. 기원전 4천년 경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에 의해 처음 가축화된 말은, 수백 년 간 식용이었다가 기원전 2천년경에야 비로소 힘과 속도를 이용하기 위해 사육된 것으로 보인다. 얌나야 사람들은 바퀴 달린 마차라는 혁신으로 말을 이용했던 유목민이다. 스텝 지대에 사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은 풍부한 풀을 먹인 우수한 말을 사육했고, 금속과 함께 전차를 만드는 데 썼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개체군 유전학자 폰터스 스코그런드(Pontus Skoglund)는 청동기 시대의 이들 동부 문화가 얌나야와 연관이 있다는 설명은 꽤 명확하지만, 문화의 전파가 모든 인도-유럽어의 기원을 설명한다는 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행인 점은 얌나야 사람들의 확장이 스텝 가설에 무게를 실어줬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한꺼번에 이동했다면, 언어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적이자 언어학적인 고대 DNA 연구는 선사 시대를 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연구원들은 더 정확한 고대 모습을 보기 위해 다량의 유전체에 접근해 더욱 많은 데이터를 얻고자 한다.
고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고 어떤 질병이 있었는지 알게 되면 현대 인류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에 이르렀는지 밝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연구 결과가 주목되는 지점이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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