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8:40 (금)
“‘이중과제론’ 완수하는 길은 ‘방법으로서의 일본 정치 연구’”
“‘이중과제론’ 완수하는 길은 ‘방법으로서의 일본 정치 연구’”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6.17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일 수교 50년, 일본 정치 연구 어디까지 왔나

▲ 남기정 교수
오는 22일, 한국과 일본은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한다. 22일 열리는 두 나라 수교 50주년 행사에 정부 고위급 인사가 상호 참석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한일수교 50주년이라고 하지만, 실제 한일관계는 냉각돼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민간 차원, 즉 학술영역에서 일본은 어디까지 연구돼 왔을까. 이와 관련 <일본비평> 제12호(2015 상반기)에 수록된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사진)의 논문 「한국의 일본 정치 연구사: ‘이중과제’의 인식과 극복의 여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 교수는 해방 후 한국의 학계가 일본연구의 역사를 스스로 어떻게 정리하고 어떠한 과제 설정 하에서 일본연구를 진행했는지, 주로 일본 정치 연구를 중심으로 고찰했다. 그는 여기서 한국의 일본연구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 ‘한국적 연구방법론 확립’과 ‘국제적 보편성의 확보’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이중과제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남기정 교수의 논문 결론 부분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정치학을 중심으로 한국의 일본 연구 전개를 살펴봤다. 그것은 전근대나 식민지 지배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 연구를 향한 불신의 시선을 극복해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불신의 씨앗은 김성일 일화에서 기원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본에 대한 ‘내재적’ 이해와 그에 입각한 ‘합리적’ 대응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말미암아 ‘정세오판’을 유도한 원흉으로 낙인찜힘에 따라, 일본에 대한 어떠한 낙관론도 조선시대 이후 한반도에서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가 마련됐다. 거꾸로 국익의 사칙연산을 생략한 ‘근본주의적’ 일본 비판은 일단은 무오류의 철칙으로 대접받게 됐다. 이러한 뒤틀림은 근대에 들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화 과정을 겪으면서 더욱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잡게 됐다. 따라서 일본 연구는 언제나 일본 비판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둬야 했고, 일본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적극적 평가를 의도하면 할수록 일본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은 일종의 ‘후미에’(踏???, 사상검증을 위한 의례)와 같이 필수 전제가 됐던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 일본이해’는 늘 ‘주체적 필요성’에 의해 정당화돼야 했고, 그런 의미에서 늘 ‘목적의식적’이어야 했다. 이것이 일본연구에 ‘이중과제’를 부과하는 배경이 됐다


. 그런데 이러한 ‘이중과제’를 한국의 일본 정치연구가 스스로의 과제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주체적 필요성’이 더 이상 필수 전제가 되지 않아도 되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 마련됐다. 마침 그 시기에 한국에서는 ‘세계화’를 구호로 지역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고, 일본 정치 연구가 양적 급성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객관적 일본이해’는 ‘국제적 보편성 확보’라는 새로운 과제로 털갈이를 해 일본연구의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대일본학회를 중심으로 연구를 전개해 온 일군의 일본연구자들이 그 동안의 연구성과의 축적 위에서 이러한 변화에 즉응해 일본 연구의 질적 도약을 주도했다. 이후 한국의 일본 정치 연구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점도 노정되고 있다. 그것은 ‘국제적 보편성의 확보’라는 목표가 가지는 이중성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 정치 연구가 국제적 맥락 속에서 일본의 위상을 파악하는 ‘관계론’적 관점에 서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그러한 입장의 과도한 반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시 ‘한일’ 관계라는 특수한 시점으로 돌아오는 손쉬운 통로가 되고 있는 듯 보인다. 따라서 ‘국제적 보편성의 확보’라는 목적에서 보다 중요한 과제는 일본 정치 연구를 국제적 시좌에서 시도해 연구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일본 정치 연구가 힘써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가장 우선적으로 지역연구의 세계적 전개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지역에 대해 시선의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지역에 대한 시선이 제국의 지정학으로부터 강대국의 지역연구로 이동하고, 바야흐로 일상과 생활 세계에 대해 관심을 쏟는 새로운 연구 방법이 모색되고 있는 現狀을 감안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지역연구의 중심이, 정책학으로부터 사회과학으로, 그리고 문학·사학·철학으로 이동해온 것과도 관련된다. 이 현상은 또한 지역연구가 적용의 학문으로부터 설명의 학문으로, 그리고 이해의 학문으로 변화해온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가 등장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지역 연구에 대한 기대의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바야흐로 한국의 일본 지역 연구는 트랜스내셔널한 지역 속에서 일본을 파악하고, 이를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일본 지역 연구는 또 다른 ‘이중과제’를 안고 있는 듯 보인다.


첫째는 한국의 일본 연구가 일본의 일본 연구와는 다른 또 하나의 중심을 세워, 일본 연구의 또 다른 발신국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의 일본 연구자 네트워크에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연구자의 네트워크를 중첩시키는 것이다. 그 목표는 조선의 선배들이 일본 연구를 통해 시도했던 세계인식을 21세기에 동아시아 수준에서 수행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즉 일본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는 없다’와 ‘동아시아는 실체이다’라는 양 극단의 주장 사이에서 동요하며 空洞이 돼가고 있는 ‘동아시아’론에 내용을 채우자는 것이다. 이때 정치학은 추상론으로 치우치려는 최신의 포스트모던한 지역연구를 정책론의 영역에 머물게 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방법으로서의 일본 정치’ 연구가 21세기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델론’과 ‘관계론’을 동시에 극복하며 일본연구의 ‘이중과제론’을 최종적으로 완수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째에 맞이한 한일관계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출구가 여기에서 찾아질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