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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페스트』
메르스와 『페스트』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5.06.1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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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어느‘평범한 도시’에 기이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거리에서 죽은 쥐 몇 마리가 발견됐다. 날이 갈수록 죽은 쥐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환자들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체온이 39.5도에 이른 환자는 온몸이 쑤시는 고통을 호소했다. 의사는 환자를 격리시키고 특수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병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동안 환자들이 죽어갔다. ‘열병’을 두고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행정기관의 조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 열병이‘페스트’라는 말이 돌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그 재앙을 믿기 어려웠고 자고나면 잊히는 악몽 정도로만 여겼다. 언론도 당국도 그 전염병을 지나가는 열병 정도로 여겼는지 몇 가지 예방적 조치만을 당부했다. 그러는 사이에 학교를 병원으로 개조해야 할 정도로 감염자와 사망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마침내 사망자가 30명으로 늘어나서야 당국은‘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낸다.

중동호흡기증후군를 말하는‘메르스’이야기가 아니다. 알베르 카뮈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페스트』1부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요약이다.“ 봄철의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셍트의 향기 속으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로 시작하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아름다운 산문인 「티파사의 결혼」(1939)을 쓴 작가가 죽은 쥐들의 냄새가 진동하는『페스트』를 불과 10년도 안 돼 썼다. 물론 그 사이에는‘세계의 무의미와 부조리에 대한 자각’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성이 말살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깨진 전쟁이라는 경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뮈는『페스트』에서 알제리의 오랑 시에서 발생한 페스트로 도시가 폐쇄돼 사람들이 고립된 가운데, ‘페스트’로 상징되는 ‘거대 악’에 맞서 싸우는 의사 리외의 헌신과 자원봉사자 조직을 이끄는 타루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메르스 아니 페스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세 가지로 나타난다. 우선 기자 랑베르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믿는 전염병을 피해 오랑이라는 도시를 빠져나가려 한다. 다음으로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징벌이기 때문에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는 자원봉사자 조직을 만들어 이 전염병에 맞서 싸우는 타루와 의사 리외가 있다. 랑베르가 생각을 바꿔 도시에 남기로 결심한 것은“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노력으로 페스트는 물러가고 도시는 해방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힘은 사람들 사이의 연대의식이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는 생각”을 의미하는 연대의식에 대해 카뮈는 단편집『적지와 왕국』(1957) 중「요나」편에서 중요한 암시를 한다. 작품 속에서 화가 질베르 요나는 아주 작은 글씨로 화폭에‘솔리테르(고독. solitaire)’인지‘솔리데르(연대. solidaire)’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단어를 써놓는다. 이처럼 고독과 연대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솔리다리테’, 즉 사람들 사이의 연대의식은 기본적으로 계약이나 규율에 따라 맺어지는 강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연대의식에서 중요한 것은‘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 빚이 있고, 내가 어려움에 놓인 타인을 도와주면 그들도 언젠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확신과 믿음이다. 그 믿음을 어떻게 확인하고 증명하겠는가. 그래서 연대라는 가치를 가능하게 해주는 타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는 고독이 뒤따른다.

메르스든 페스트든 그것이 재앙으로 남을지 한때 유행했던 전염병으로 남을지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연대의식에 달려 있다. 타루가 말하듯이“사람은 제각기 자기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고……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이며……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페스트균이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고 어딘 가에서 잠자고 있는 것처럼’연대의식을 담보하는 사람들 사이의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 무너지면 그 병균은 다시 고개를 쳐들 것이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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