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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의 정치학 … 기침소리가 모든 것을 삼키고 있다
감염의 정치학 … 기침소리가 모든 것을 삼키고 있다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5.06.09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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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공포

메르스 감염자가 40명을 넘어섰다. 메르스가 치명적인 전염병이란 공포감이 만연하지만, 일부에서는 메르스가 지역사회에 감염될 가능성이 낮아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어떤 정보를 믿고 따라야 할지 설득력이 없다. 과연 전문가와 학계는 메르스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메르스가 정말 위험한 전염병인지, 아니면 독감과 비슷한 바이러스일 뿐인지, 감염자가 발생한 병원 정보 공개 문제 등 현안을 짚었다.

영화「감기」에서는 치사율이 높은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가 국가를 재난사태에 빠뜨렸다. 현실성과 개연성이 없어 보였던 이 영화같은 일은 더이상 영화 속 설정으로 그치지 않게 됐다. 메르스 공포가 확돼되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시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3차감염을 통해 도시 전체가 폐쇄될 위기에 놓이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흡기 바이러스, 격리조치,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와 관리부실’이라는 면에서 영화와 현실이 꼭 닮았기 때문이다.

메르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중증급성호흡기질환이다. 주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중동에서 발병했다. 현재까지 명확한 감염원인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낙타를 통한 감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메르스에 감염되면 38도 이상의 발열을 동반한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이며, 치사율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가지 시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6월 5일 14시 기준) 메르스 감염자 41명, 사망 4명, 격리자는 1천820명에 이른다. 정부가 메르스 최초 감염자에 대한 초기대응에 실패해 2·3차 감염자까지 확대시켰다는 비난이 거세다.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한 지역은 급기야 휴교를 선언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지난 3일(오후 5시 기준) 전국 유치원, 초·중·고, 특수학교와 대학까지 모두 544곳이 휴교했다고 발표했다.

메르스는 정말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인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사망자가 더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메르스 위험론’이 커지는 반면, 한쪽에서는 독감과 비슷한 바이러스라며 위험론을 ‘과잉반응’으로 일축한다.

대한감염학회는 메르스 환자와 접촉력이 없으면 감염될 확률은 거의 없기에 과도한 불안과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메르스를 연구하고 있는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도 “현재까지 메르스 감염자는 모두 병원 내 감염으로 나타났다.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은 낮으므로 메르스를 전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병원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면역력이 약한 환자나 보균자와 접촉한 의료진 등은 감염될 확률이 높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지역사회로 퍼져나갈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대한감염학회는 메르스 사망자가 고령이거나 신장암 치료 병력, 천식, 스테로이드 장기 복용 등 기저 질환이 있는 환자라고 설명했다. 면역력이 정상인 일반 사람들의 경우, 감기와 비슷한 증상으로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SNS에서 떠도는 메르스 공기감염 의혹에 대해서도 “공기 전파 가능성은 없다”고 진단한다. 송 교수는 “메르스는 침 등의 비말감염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메르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미정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메르스는 사망위험률이 높은 전염병이다”라고 주장했다. 메르스가 독감과 비슷하다는 말은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는 “중동에선 메르스로 500여명이 사망했고, 우리나라도 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3차 감염은 없을 거라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결국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하면서 무서운 전염력을 보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용석 경희대 교수(생물학과)도 근거없는 섣부른 판단이 오히려 국민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현재까지(6월 5일 기준) 나타난 우리나라 메르스 치사율은 9%로 지난 2009년 신종플루보다 10배 높다. 메르스를 ‘위험하지 않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정보공개의 중요성
메르스에 대한 막연한 공포확산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정보가 요구된다. 특히 병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많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정 사무처장은 “또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밝힐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를 꺼리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단순히 병원명 공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느 병원이 며칠동안 메르스에 노출됐으니 그때 외래나 입원환자들은 자가증상이 나타날 경우 빨리 병원을찾아가라고 알려줘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정보공개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보와 대처방법을 모르니 허위정보에 의지하고, 그러다보니 불안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불안감은 학교는 휴교하게 하고, 경제시장을 망가뜨리고, 모든 병원을 신뢰할 수 없는 사태로 치닫게 한다.

결국 이 같은 현상은 정부의 초동 대처과정이 미흡했기 때문이란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주은우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정부가 초기대응에서 체계적인 방역체계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국민들은 정부의 방역조치를 믿고 따랐을 것이다. 왜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공개할 수 없는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우석균 정책위원장도 “현재상황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빨리 공개하는 방법이 혼란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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