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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의 무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산문집의 무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6.02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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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그저 좋아서: 소망이 담긴 수상』 정범모 지음|학지사|231쪽|13,000원


학문적 논의가 거의 다반사가 돼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학계는 수많은 대학과 학회는 있어도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切磋琢磨’하는 공동체, ‘아카데믹 커뮤니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학문 발전을 위해서는 큰 흠이다.

 


▲ 정범모 한림대 명예 석좌교수
원로 교육학자인 정범모 한림대 명예 석좌교수(사진)의 산문집 『그저 좋아서: 소망이 담긴 수상』(학지사 刊)는 7년 전 나온 『그래, 이름은 뭔고?』의 속편이다. 저자는 “나는 7년 전 친구와 후학의 권 유로 『그래, 이름은 뭔고?』라는 회고 성격의 산문집을 펴낸 일이 있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지도 모르나, 많은 사람이 즐겨 읽었다고 일러 줬다. 이제 다시 주위의 지인들이 구순을 기념으로, 그 후에도 회상이 많을 터이니, 그것을 글로 옮기기를 권해서 그 속편으로 이 산문집 『그저 좋아서』를 썼다”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그는 “연구와 강의는 중단했어도 지금도 읽고 생각하고 쓰는 버릇은 쉬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드문 思惟人이다. 구순을 넘긴 한국 교육학계의 우람한 이 거인의 산문집에 담긴 그의 육성에는 ‘정범모’라는 교육학자를 이룬 삶의 소소한 순간들에서부터 학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새겨 넣은 지성의 흔적까지 깊은 주름처럼 새겨져 있어서 더욱 귀중하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이 탓에 직접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황혼기’에 쓰는 회상은 지난날의 얘기이면서도 실은 내가 참여할 수 없는 내일의 이 나라에 대한 소망을 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실린 글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 책의 부제가 된 ‘소망이 담긴 수상’의 의미가 이곳에 있다. 마종기 시인의 시 「상처」처럼, 이제는 늙은이의 나이가 돼 사물의 본디 모습을 편견 없이 마주하게 된 이 원로 교육학자는 나라의 미래에 대해 마음 깊이 품고 있는 소망들을 책 전체에 고루 채워놓고 있다. 인상적이자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삶의 문제들, 나이 들어감과 죽음의 문제, 스포츠와 극한의 경험, 자신이 존경했던 분, 유학 시절의 경험, 학자의 길, 일본과 역사, 평소 암송하고 좋아하는 시, 부자의 의무, 자유민주주의 등 다양한 소재에 걸쳐 자신의 ‘회상’을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찬 물을 길어 올리듯 그렇게 이끌어낸다.
아무래도 저자 자신이 구순을 넘겼기 때문에 삶의 길목에서 가장 큰 화두는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는 「죽을 땐 천당?」이라는 글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이렇게 언급했다. “많은 사람에게 죽음의 두려움에는 사후의 세상에 대한 걱정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극락과 연옥, 천당과 지옥의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은 그리 믿지 않는다. 도리어 대승불교의 『반야심경』에 있는 ‘空’의 사상에 공감하면서, 죽으면 그저 空·無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기에 그는 “늙어도 몸과 마음은 적정하게 ‘써야 한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오래 활력을 유지한다”(「늙어도」)라고 말하면서 이를 직접 행동에 옮긴다.


흔히 교육학자 ‘정범모’를 가리켜 한국 교육학계의 큰 산맥이라고 평하는데, 말 그대로 그의 문하에는 학자들이 넘쳐 난다. 이쯤에서 궁금한 물음 하나. 그는 도대체 어떤 학문관을 지녔을까. 「학문: 쓸모와 즐거움」과 「학자의 길」은 그런 그의 학문관을 다시 한번 읽을 수 있는 글이다. 「학문: 쓸모와 즐거움」에서 그는 고대 희랍 철학의 전통을 언급하면서 학문을 ‘즐거움이고 놀라움’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학문이 발견하는 진리(쓸모와 실용성)는 이차적인 문제다. 그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는, 옛 중국의 학문관을 짙게 이어받아서인지 학문을 ‘치국평천하’를 위한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는 풍조가 짙다. 이런 실용적 풍조는 결국 학문의 축적적인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출세 학문관’ 지양을 강조하는 그는, 배움과 앎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라는 경험으로의 복귀를 주문한다. 어릴 때부터 이를 만끽할 수 있는 교육을 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그가 말하는 ‘학자의 길’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자신이 학자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집안’의 DNA와 모교 교수들의 ‘선약’이 결정적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렇지만 정작 어렸을 때의 꿈은 학자가 아닌 ‘자연과학자’였다. “중등학교 시절인 경성사범학교 시절에도 장차 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고, 과외활동으로 물리화학부에서 여러 실험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때 벌써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우주 대폭발 이론’ 등에 관한 책을 탐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은 1945년 광복과 함께 바뀌게 된다. “당시 자연과학을 연구할 사회적 여건이 빈약하기도 했지만, 해방된 나라에서 우선 급한 것이 긴 일제강점에 찌든 한국 국민의 심성을 활짝 개발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공을 교육학으로 바꿨다”는 것. 물론 교사양성기관이었던 경성사범학교의 경험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원로 교육학자가 스스로를 두고 ‘아카데미 플레이보이’, 학문의 난봉꾼이라고 자처한 부분이다. 그것은 다학문적인 성격을 지닌 ‘교육학’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교육이라는 문제를 중심에 두고, 심리학은 물론 사회학, 문화인류학, 정치학, 행정학, 역사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을 섭렵해야 하는 학문이 바로 교육학이다. 그렇기에 저자도 이 학문 저 학문 기웃거리게 됐고, 거기서 재미도 발견했다는 것이다.
구순을 넘긴 저자는 그렇게 지나온 학자의 길에 아무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고 고백한다. 한 가지 못 이룬 꿈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서가 어딘가에 꽂혀있을 1950~1952년 유학 시절의 수기에 ‘내가 유학 후 귀국하면 나처럼 배우기 위해 이역만리 미국에까지 와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의 학계, 교육계를 건설하리라.’라는 당찬 꿈을 적어 놓은 적이 있다. 나는 이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아직도 모든 학문의 첨단을 섭렵하려면 미국 유학을 가는 것이 대세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째서 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일까. 여기에는 한국 학계가 풀어내야 할 문제점이 도사려있기도 하다. “학문이란 혼자서는 대성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정범모 교수는 학문적 업적이 축적되려면 ‘아카데믹 커뮤니티’ 즉 학문 공동체가 제대로 형성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자들이 서로 어울리며 학문적 아이디어를 주거니 받거니 서로 허심탄회하게 비판도 하고 칭찬도 하고 제안도 하고 협의도 하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그저 친교하고 술잔이나 나누고 세상사의 한담이나 즐기는 관계만이 아니고, 학문적 논의가 거의 다반사가 돼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학계는 수많은 대학과 학회는 있어도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切磋琢磨’하는 공동체, ‘아카데믹 커뮤니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학문 발전을 위해서는 큰 흠이다.”


물론 학계 곳곳에 ‘학구적 공동체’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노학자의 눈에는 아직도 미흡해 보이기만 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대학과 학계에서도 그냥 즐기기 위한 친목 단체 같은 공동체가 아니라 학문적 추구와 교환이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열린 마음으로 이뤄지는 크고 작은 ‘학구적 공동체’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학문 발전에 제일 긴요한 관건일 것이다.”
구순의 공력이 담긴 산문집 『그저 좋아서』가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것은 이런 지혜의 권면에 담긴 담백함에 있다. 그래서 그의 소망 깃든 육성이 좀 더 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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