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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恩師님의 뒷모습을
다시恩師님의 뒷모습을
  • 김영주 울산대·아동가정복지전공
  • 승인 2015.06.0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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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칼럼] 김영주 울산대·아동가정복지전공

"자식이 부모의 궤적을 따라 사는 것처럼 제자도 스승의 길을 따라간다. 학생을 가르치며 스승의 은혜를 갚는다."

몇 주 전 노랫말처럼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은사님을 뵀다. 그날 연구모임에 바삐 가는 중이었는데, 저 아래 계단에 서 계신 모습이 아무래도 은사님 같았다. 일흔 중반의 모습이라기엔 젊어보여서 긴가민가했다. 정말 반가워서 뛰어가 인사를 드리고 손을 잡았다.

몇 달 만에 올라온 서울에서 은사님을 우연히 만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은사님의 목적지인 세종문화회관에 모셔다 드리는데 걸음이 늦으셨다. 가시는 길에“전통문화를 잊지 말라”며 여러 차례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마침 연구모임이 전통육아에 대한 주제라서 은사님의 당부가 와 닿았다. 은사님은 외국 유학중에 오히려 전통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평생 동안 전통 육아에 대해 연구하신 터라 그 말씀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영문으로 된 전공서적을 보는 게 당연했던 대학원 시절 소학과 논어를 공부하고, 전통육아를 과학적·심리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던 경험은 내 평생의 학문적 자산이 됐다.

자식이 부모의 궤적을 따라 사는 것처럼 제자도 스승의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은사님을 좇는 것이 참 어렵다. 늘 소탈하고 스스로를 낮추던 은사님의 모습을 흉내조차 내기 쉽지 않다. 은사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은사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오십 줄을 넘어가니 자연스레 은퇴 이후를 생각하게 된다. 노령화 사회에서 은퇴하고도 20년은 너끈히 살 것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현직에 있을 때도 은사님의 모습을 따라 사는 것처럼 은퇴 이후에도 그를 좇을 것 같다.

한번은 우리나라 서원을 평생 연구한 건축학과 교수가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강의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을 봤다.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열정, 박학다식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줬다.

토요일마다 가던 경주 박물관 대학에서 은퇴하신 노교수가 탄탄한 모습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강의하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1970~1980년대에 유적을 발굴하며 쌓은 학문적 경험과 식견에 질투심마저 들끓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내 평생의 학문적 자산이 무엇인가 곱씹어본다. 그것을 은퇴 이후의 내 삶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궁리해 본다. 시류와 펀드를 좇아 이 연구, 저 연구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기도 하다.

이러다가는 은퇴하기도 전에 밑천이 드러나 강단에 서 있는 것이 부끄러울 것 같다. 눈이 침침해서 책 읽기도 어려워지고, 컴퓨터 화면이 어른어른해져 오래 집중하기도 어렵다. 앞으로 남은 15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암담하기도 하다. 강의하는 중에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입속에서 맴돈다. 방학이 끝나고 나면 더 그렇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단어의 초성을 잡고 헤매고 있으면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알려준다.

젊은 시절의 연구와는 다른 형태를 궁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모으고 쌓은 것들을 해체하고 나만의 관점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학생들의 스마트폰에서 검색되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전공을 선택하고 30년 넘게 탐구해 온 주제에 대한 자기만의 시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남은 기간 동안 은퇴 이후의 내 주제가 될 학문적 영역을 찾아 다시 정진할 것이다. 그 길을 찾아 다시 은사님의 뒷모습을 좇는다.


김영주 울산대·아동가정복지전공
서울대에서 문학 박사를 했다. 저서로는『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는 전래동화 새롭게 읽기』,『 아동 영성 발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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