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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育兒,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없나?
학업·育兒,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없나?
  • 김나라 광주과학기술원 박사과정·신소재공학부
  • 승인 2015.05.27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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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나라 광주과학기술원 박사과정·신소재공학부

대학원에서 학업과 연구에 전념하는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시기는 평균적으로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시기다. 올해 서른한 살인 필자 역시 박사과정 2년차이던 2012년 가을 평생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두달 뒤로 다가온 소중한 2세의 출산을 기다리며 졸업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임신, 출산, 육아에 문외한이었던 필자는 연일 확대되고 있는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에 관한 기사나 사설을 손쉽게 접할 수 있었고, 유급의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제도 등의 모성보호제도 및 정부지원정책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나 대학원생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정부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도 곧 알 수 있었다.

혹시 학교에서 마련한 출산지원제도는 없을까. 약간의 기대를 안고 대학원의 학생지원 부서를 찾아가 출산휴가 등 대학원생을 위한 출산지원제도가 있는지 문의해봤다. 담당자는 내 질문에 황당해하며 학기 중에 임신·출산·육아 휴학이 가능하다고만 말했다. 다른 대학원도 마찬가지의 상황이거나 별도의 휴학제도마저 시행되고 있지 않은 학교가 다수다. 그러나 학기 시작 시점에만 복학이 가능한 휴학제도는 대학원생에게 상당기간의 연구 단절을 초래하고, 출산·육아로 지출이 증가하는 시기에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또한 지도교수의 배려로만 가능한 출산휴가는 때로 산모와 아이의 건강 유지에 요구되는 최소의 기간마저 주어지지 않는 사례도 빈번하다.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세계 일류 대학의 경우는 어떨까. 문득 몇 년 전 학회 참석을 위해 보스턴에 갔다가 MIT를 견학했던 때가 생각난다. 건물 안팎에서 거대한 유리벽을 통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오픈된 연구실과 과학적 영감을 자극하는 예술작품들이 건물 곳곳에 배치돼 있던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캠퍼스 중심에 위치해 많은 아이들이 뛰놀던 커다란 놀이터와 여기저기 눈에 띄는 보육실도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왔다.

MIT와 하버드는 학생이 좋은 부모로서도 동시에 역할을 해야 할 경우 그 책임을 학생과 대학이 함께 분담해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대학이 가진 여러 의무들 중 하나라고 공표하고 있다. 이 대학들은 출산휴가, 유급휴가, 양육비 지원뿐아니라 학내 보육센터 운영, 수유·유축실구비 등을 통해 학생들이 적절한 시기에 가정을 이루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학업에 정진할 수 있는 실제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외국 일류대학의 사례와 비교하면 국내 대학에서 학업과 육아를 수월하게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길이 멀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실정에도 반가워할 만한 소식은, 국내 연구중심대학을 대표하는 KAIST에서 출산휴가의 제도적 보장 및 출산휴가 중 생활 보조금 지급, 남학우의 육아휴학 등을 포함한 임신·출산·육아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캠퍼스 내에 수유·유축실을 구비하고 있으며, 수용인원이 21명으로 제한돼 있지만 교내 교직원 어린이집도 대학원생 부모의 이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작지만 바람직한 움직임이 초석이 돼 결국에는 대학원생이 육아를 하면서도 학위과정을 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환경에서는 여성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여성 직장인들도 가족들의 희생과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일과 육아의 양립을 이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선진국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할 수도 있는 출산지원제도의 혜택이, 그 혜택마저도 절실한 대학원생에게까지 형평성 있게 적용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일까. 필자는 곧 출산을 하고 박사과정을 졸업하게 되겠지만, 앞으로 동일한 과정을 겪게 될 여성 후배들은 개선된 지원 환경 속에서 학업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사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나라 광주과학기술원 박사과정·신소재공학부

전도성 고분자의 전도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시대 앞당길 투명전극전사기술 개발’관련연구가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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