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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축 시대의 ‘인간됨’ 논의 검토 … 인류 미래 위한 결단에 기여하려는 작업”
“‘주축 시대의 ‘인간됨’ 논의 검토 … 인류 미래 위한 결단에 기여하려는 작업”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19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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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16강.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칼 야스퍼스 『역사의 근원과 목적에 대하여』」

지난 16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16강은 야스퍼스의 『역사의 근원과 목적에 대하여』로 ‘고전시대’를 마무리했다. 이후 고전읽기는 ‘전근대’ 편으로 넘어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강연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 괴테의 『파우스트』(김수용 연세대 명예교수), 주자의 『근사록』(이승환 고려대 교수), 이황의 『성학십도』(이광호 연세대 명예교수), 정약용의 『목민심서』(백민정 가톨릭대 명예교수)를 탐색하게 된다.
심미적 이성을 사유의 특징으로 삼아 예술과 사상의 내면지도를 그려왔던 김우창 교수는 이번 강연을 통해 야스퍼스 사유의 기저를 ‘실존주의’로 잡아내면서 특유의 독법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야스퍼스가 『역사의 근원과 목적에 대하여』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됨에 대한 옛 업적―주로 주축 시대로 대표되는 업적을 검토하고, 그것이 오늘에 가질 수 있는 의미를 攻究해, 인류 미래를 위한 결단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의미를 매겼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칼 야스퍼스. 사진출처= http://www.haw.uni-heidelberg.de/presse/pm-07_11_2011-jaspers.de.html.(Karl Jaspers Stiftung)
제1부 사고의 초월성, 주축 시대와 동서양의 문명

실존주의가 혼란의 시대에 연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존의 철학은 공적인 관점―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도 그 나름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 삶을 모든 것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해서, 그 개체적 삶에 대한 관심이, 천박한 의미로 취할 수도 있는 개인적 삶의 고민에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그것이 인간과 존재 일반에 대한 철학적 반성의 심화에 기여한 것은 틀림이 없다. 야스퍼스가 밝히려 한 것은, ‘지속적 역사’의 리듬이 아니라, 사람의 인식론적 지평의 열림과 한계를 보여 주는 ‘메타 히스토리’이다. 『역사의 근원과 목적에 대하여』는 이 열림을 역사적으로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책이다.
야스퍼스의 주축 문명론의 중점은 주축 시대를 도래하게 한ㄹ 사상적 전환의 의미를 밝히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환의 의미는 단순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데 있다기보다는, 적어도 그의 생각으로는, 그것을 계기로 보다 본질적인 인간됨이 가능해진다는 데 있다. 이것이 나타내는 정신의 새 출발로부터 시작해, ‘인간 존재의 형성(die Gestaltung des Menschseins)’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야스퍼스에게는 주축 시대의 변화가 기적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가 특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같은 현상이 지구의 세 지역에서 동시에―물론 야스퍼스가 제시하는 바로 이 ‘동시’라는 것도 천년에 걸친 사건을 말하는 것이지만―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일어났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주축 시대의 전환―여러 지역에 걸쳐 일어난 전환의 사건의 동시성은 일단 여러 사실적인 원인으로써 설명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원인 가운데, 야스퍼스가 분명하게 동의하는 원인은 희랍에서나, 중동에서 또는 중국에서 일정한 지역이 여러 국가와 공동체로 분할되고 서로 경쟁 관계에 들어간 것이 하나의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대의 고급 문명의 안정성을 깨트리고 삶의 조건을 흔들리게 했다.


야스퍼스가 지적하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보편적 사고와 개념들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고의 체험으로써 비로소 깨달음이 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고의 체험은 감동의 체험이다. 그렇다는 것은, 보편성의 확인이 추상적 수긍이 아니라 사건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야스퍼스는 실존주의의 입장을 지킨다고 할 수 있다. 실존적 체험의 관점에서, 개념적·이념적 이해를 ‘깨침’·‘깨달음’에 연결할 때, 대체로 그것은 실존적 감동을 함축하는 이해를 말한다.
야스퍼스의 관찰은 주축 시대의 사건을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아의식은 주축 시대를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또는 일반적으로 역사를 이해하려고 하는 여러 노력 속에서 작용한다. 이 노력에서 얻게 되는 체험적 깨달음은 인식론적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개인적인 것, 시대적인 것, 역사적인 것, 그리고 공동체적인 것, 보편적인 관점에서 인간적인 것,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에 놓여 있는 진리에 대한 추구가 하나가 됨으로써, 오늘의 인간은 주축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야스퍼스는 인류의 역사를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한다. 그는 이것을 인간이 인간으로서 네 번을 새로 출발한 것으로 말한다. 첫째는 역사 이전의 시대(Vorgeschichte) 또는 先史 시대다. 그는 이것을 프로메테우스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이 시기에 언어, 도구, 불의 사용이 시작된다. 이러한 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치음으로 인간이 되게 했다. 두 번째의 인간의 출발은 고대의 고도 문명(Die alte Hochkulturen)의 시대에 일어난다. 나일 강가의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강가의 인도 문명, 중국의 황하 문명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 번째가 주축 문명이다. 이때에 인간은 정신적 인간의 가능성으로 완전히 열리게 된다. 네 번째는 ‘과학기술대(Das wissenschaftliche-technische Zeitalter)’이다. 지금 인간이 체험하고 있는 것이 그 형성 과정이다. 서양으로 하여금 과학 기술의 도약의 주인공이 되게 한 서양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양한 사실들을 긴장을 유지하면서 교환하고 통합하는 힘이다. 이것은 강하고 유연한 주체 과정을 나타낸다. 이것이 과학으로 나아가는 역사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세계사의 중심으로서의 서양을 말하면서, 야스퍼스는 그것만으로 참으로 중심이 있는 인류사 또는 세계사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충 설명한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장에서 그의 핵심 주장은 동서양의 구분이 사고를 돕는 암호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2부 과학 기술의 시대―역사의 제3단계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의 관심사는, 지금까지의 사고의 기본이 됐던 주축 혁명의 사고를 규명하는 외에, 그 미래를 내다보려는 것이었고, 이 혁명의 중심이 어느 쪽에 있든지 간에, 인간의 역사가 새로운 시대―미지의 시대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데 있었다. 이 새로운 시대는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과학과 기술의 시대로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미지의 것에 대해 사람이 불안한 마음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가 표현하는 것은, 이미 비친 바와 같이, 무엇보다도 불안감―특히 그것이 주축 시대에 이룩된 인간의 가능성,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사고, 그에 기초한 전면적 인간성의 성취―초월적 도약을 통해 이룩한 가능성을 잃어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데 대한 불안감이었다.


세계적인 인간사가 시작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인은 말한 바와 같이 과학과 기술이다. 여기에 선례가 되는 것이 일단 추상 개념보다 물질적 현실을 중시한 중세 말의 唯名論이다. 그러나 동시에 유명론의 시대는 마녀의 시대이기도 했다(야스퍼스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과학과 미신의 공존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학의 시작으로 일어난 인간 심성의 단순화―과학적 이성 그리고 다른 감성적 차원 심성 이 두 차원의 분리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시사하고자 하는 것은 후자가 아닌가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분명하게 갈라놓는 일들은 19세기에 일어난다. 유럽의 업적이 인류 문명의 새로운 축이 되는 것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서다. 그런데 과학 기술의 등장은 유럽이 정신과 영혼의 관점에서 뒷걸음치기 시작한 것과 중국과 인도가 바닥에 떨어진 시점에 일치한다. 야스퍼스는, 중국과 인도에 대해, 『역사의 근원과 목적에 대하여』에서 매우 예언자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즉 세계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이들 나라는 다시 세계사의 현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단 야스퍼스가 시도하는 것은 과학 안에 들어 있는 합리성에 대한 비판이다. 과학과 기술의 이성은, 그의 생각에, 존재론적 모태로부터 분리돼 단순화됨으로써 비인간화될 가능성을 갖는다. 야스퍼스의 비판이 선명하지 않은 것은 논리보다는 내면적인 직관에 의존하는 그의 사고와 서술의 경향에도 관계되지만, 과학 기술 현상의 양면적 가능성에 대한 그의 기대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새로운 과학은, 케플러, 갈릴레오의 발견, 지구 일주 항해, 현미경, 망원경 발명, 고대 문명에 대한 고고학의 발견, 성서에 대한 역사 비평 등―이러한 발명과 발견 속에서 성장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만드는 일반적 분위기 속에서 과학은 대체로 실용적 목적으로 시작해, 곧 그 자체 목적을 추구하는 학문이 된다. 이렇게 성장한 과학적 사고의 특징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야스퍼스는 과학 고유의 사고의 특징으로서 세 가지를 든다. ①방법론적 지식, ②추론의 확실성, ③보편타당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특징들은 과학 특유의 것이면서도, 야스퍼스의 생각에는, 서양의 전통에서 이뤄진 문화적 결과다.


과학을 위와 같이 전통적 사고방식에 연결해 생각하는 것은 가치 판단이나 비판이 아니라 사실적 연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계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과학의 긍정적인 면이다. 진정한 그리고 포괄적인 과학은 ‘깊은 영혼의 역사적 구조’에 이어져 있다. 과학은 복잡한 역사적 모티프의 테두리 속에 있다.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때, 과학은 진정한 과학이기를 그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은 점점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됐다. 물질세계를 개조하고 세계적으로 ‘계몽된 세계관’을 가져올 것이라는 요란한 외침은 계속되지만, 진정한 과학은 ‘가장 감춰져 있는 비밀’이 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야스퍼스는 현대 과학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과학이 그 기초가 되기는 하지만, 인간의 삶을 현실적으로 바꿔 놓는 것은 기술이다. 기술은 삶의 환경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기술 변화를 통해 지구 전제가 하나의 공장이 되고, 사람은 거대한 기계의 장치 속의 한 부분이 된다. 기계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일어나는 변화된 삶의 모습에 대한 야스퍼스의 기술은 사뭇 극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기술이 가져오는 삶의 환경 변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는, 이와 같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야스퍼스는 궁극적으로 인간성이 기술에 의한 인간의 비인간화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에 인간은 특별한 ‘근원(Urprung)’을 스스로 안에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그가 책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근원’에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역사를 움직이고 인간의 궁극적인 우주적 목적을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의 본분을 찾는 노동을 위해서는 노동의 조건들이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가능하게 할 동인을 하나로 단순화하자는 사람들이 있지만, 노동을 한 가지로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 과제의 관점에서 다시 말하건대, 작업의 환경이 전체적으로 보다 인간적인 것이 돼야 한다.


새로운 삶의 조건이 열어 놓은 가능성이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세계사적인 결단은 지금과 앞으로의 몇 세기에 이뤄지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역사적으로 옛날에 이뤄졌던 것들이 오늘날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스스로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여 줄 것인가 하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정이 필요할 것이다. 생각만으로 문제들을 풀 수는 없다. 그러나 “철학이 이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이 하는 것은 생각과 내적 자세와 가치 측량을 제시하고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선택을 보여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개인들은 예측을 넘어 사물의 진전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야스퍼스가 『역사의 근원과 목적에 대하여』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됨에 대한 옛 업적―주로 주축 시대로 대표되는 업적을 검토하고, 그것이 오늘에 가질 수 있는 의미를 공구攻究해, 인류 미래를 위한 결단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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