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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심리학의 한 가능성 … 情·恨 등의 개념 심화했다
한국적 심리학의 한 가능성 … 情·恨 등의 개념 심화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05.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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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문화심리학』 한성열·한민·이누미야 요시유키·심경섭 지음 | 학지사 | 592쪽 | 23,000원

문화심리학은 문화와 관련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이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영향은 오래 전부터 여타 학문들의 관심사였으나 심리학에서 문화를 주제로 받아들인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문화에 따라 마음의 질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문화가 빠른 속도로 교류하면서 심리학은 점차 문화의 중요성에 눈길을 돌리게 됐고 문화심리학이 태동하게 된다. 그러나 문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것은 심리학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화심리학은 다양한 뿌리와 전통을 갖게 됐는데 각각의 전통은 저마다의 인식론적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이론이나 연구결과의 공유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기 어려웠던 한국의 현실에서 문화 이해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문화심리학은 기존의 관점에서 생소한 접근이었다. 대다수의 심리학자들에게 문화심리학은 주류심리학에서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인 비교문화심리학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결과 심리학에서 문화는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라는 독립변인으로 이해될 따름이었다. 한국에 문화심리학이 소개된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몇 종류의 번역서만 출간됐을 뿐, 한국 심리학자들이 쓴 문화심리학 교재 한 권이 없었다는 사실은 문화심리학의 험난한 그간의 여정을 상징한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에서 문화이해의 중요성을 다시금 설파하고 문화심리학의 연구성과들을 소개하기 위해 집필됐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누구나 문화가 중요하다 말하지만 문화란 무엇이고, 문화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은 세계화의 거센 파도를 맞으며 빠른 속도로 다문화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의 준비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가치관, 관습, 행위양식 등을 포괄하는 문화는 인간이 만든 환경(man-made environment)을 뜻한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인간은 문화 안에서 태어나고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물고기가 자신이 살고 있는 물에 대해 알지 못하듯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문화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따라서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시각과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됐다.

 

이 책은 서양, 특히 미국 심리학의 이론들을 수입하고 적용하는 데서 나아가 한국의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된 한국인의 마음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고 한국인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는 의의를 갖는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문화란 무엇이고 왜 이해해야 하는지(문화이해의 필요성),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으며, 어떻게 심리학의 연구주제가 됐는지의 과정(문화심리학의 기원), 그리고 문화심리학의 연구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비교문화심리학의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다. 비교문화심리학은 크게 서양과 동양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왔다. 이 책에서는 주제에 따라 문화적 성격 유형(문화와 성격)과, 문화가 인지에 미치는 영향(문화와 인지), 문화에 따른 정서표현의 법칙과 문화적 정서(문화와 정서), 사회적 행동에서의 문화의 영향(문화와 사회), 문화에 따른 정신건강의 기준과 분류(문화와 정신건강) 등을 소개했다. 끝으로 3부에서는 한국인의 심리를 마음의 질(한국인의 마음), 마음의 질에 결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자기관(한국인의 자기관), 사회적 상황에서의 행동들(한국인의 사회심리), 마음건강(한국인의 마음건강) 등의 주제로 묶어 다루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서양심리학의 관점에서 연구해왔던 문화라는 주제를 동양, 그리고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심리학자(이누미야 요시유키)의 참여로 동양인의 심리, 특히 일본심리학의 연구들을 풍부하게 소개했으며, 기존의 비교문화심리학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인의 마음과 행동을 다섯 장에 걸쳐 심도 있게 다뤘다. 문화심리학은 서양과 동양이라는 문화간 비교에 초점을 맞춘 비교문화심리학뿐 아니라 각 문화의 토착적 심리개념과 행위양식 등을 연구하는 토착심리학이라는 관점이 있는데, 3부에서는 이에 따라 한국인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개념들을 소개했다.


예를 들면, 한국인들은 ‘억울함’, ‘서운함’, ‘자존심’, ‘恨’, ‘情’ 등의 말로 자신의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이들 개념은 서양 심리학에서 대응하는 개념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러한 심리상태에서 비롯되는 동기와 행위양식은 문화적인 것으로 외국의 연구나 사례에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없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러한 노력들은 서양, 특히 미국심리학의 이론들을 수입하고 적용하는 데서 나아가 한국의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된 한국인의 마음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고 한국인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는 의의를 갖는다.
또 하나의 장점은 현실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와 인간에 대한 관념적인 논의가 아닌, 그리고 우리의 현실과는 관계없는 이론과 연구의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고 한국인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한국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을 추출해 개념화 및 이론화하고 있는 3부를 비롯해, 한국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이문화 간 교류 및 다문화현상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삶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쳐온 유교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들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빠른 성장을 가능케 했던 한국인의 근면과 성실, 사회적 질서와 규범의 원형이 되고 있는 孝와 長幼有序, 교육열로 대표할 수 있는 강한 성취동기(立身揚名) 등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은 아직도 한국인의 삶 속에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근거해 한국인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심리학뿐만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언어학, 기호학, 경영학 등 여러 학문분야에서 풍부한 문헌을 수집하고 분석했으며, 심리학의 대표적 연구방법인 실험 및 조사연구(양적연구) 외에도 문화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질적분석과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언어표현 등을 추출하고 분석하는 사회적 표상 분석 등 다양한 방법론적 접근을 시도했다.
책을 준비하면서 역량의 부족도 많이 느꼈지만 문화란 대부분의 인간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만큼 심리학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을 아우르려 했다. 문화에 관심을 갖고 문화에 관련한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께 조그만 보탬이 되길 바란다.

한 민 우송대 교양교육원·문화심리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클락대 발지너 교수의 문화심리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연구했다. 문화심리학의 통합적 이해를 지향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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