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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탐욕이 난무하는 세상, 공적 세계의 합리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힘과 탐욕이 난무하는 세상, 공적 세계의 합리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07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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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14강. 이승환 고려대 교수의 ‘『한비자』’ 읽기

오래 전에 개봉돼 화제가 됐던 중국 영화 「영웅: 천하의 시작」(장이모우, 2002)의 결말 부분은 인상적이다. 秦王 政(후의 시황제)을 암살하러 온 무인이 자신의 사명을 저버리고 그를 살려준다. 문과 무에 관한 대화를 통해 진왕 정의 天下觀을 읽은 이 무인은 담담히 죽여야 할 천하의 공적 앞에서 등을 돌린다. 인상적인 것은 바로 이 장면이다. 진왕은 고뇌한다. 그를 살려둘 것인가. 인품과 무예의 정수를 본다면 마땅히 그를 살려 보내야 한다. 그러나 신하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殺’을 주문한다.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여기 이 장면에서 ‘殺’을 주문한 신하들, 그리고 그런 신하들과 정부를 꾸린 진왕 정에게 ‘전제정부’에 대한 이론적 감명을 준 이가 바로 韓非子다.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된 『한비자』는 당대 법가 사상의 집합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2일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14강은 한비자의 『한비자』편이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과)가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한비자』를 어떻게 읽어냈을까. 혹은, 오늘날 저 먼 시대의 『한비자』 읽기를 어떤 방식으로 권유했을까.
동양의 문화전통에서 인과 의는 보편적인 의의를 갖는 도덕규범이다. 그러나 한비자는 정치영역에서 인의와 같은 도덕규범을 거부하고 오직 법만을 유일한 규범으로 간주했다. 이 교수는 한비자가 인의를 배격하는 이유를 여덟 가지로 나눠 살폈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지난해 4월 5일 ‘문화의 안과 밖’ 11회차에서 강연중인 이승환 교수

해제: 한비자와 『한비자』
한비자는 법가의 대표자이자 先秦 시기 최후의 대 사상가다. 『한비자』에는 역사의 변천에 관한 광활한 시야와 현실 정치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 들어있으며, 정치 이론의 측면, 역사 문헌적 측면, 그리고 문학·문체의 측면에서 고루 뛰어난 가치를 담고 있다. 먼저 정치 이론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관료 부패와 정실주의를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방략, 경제적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각종 정책, 법과 형벌의 사회적 기능과 효과, 군주의 리더십과 정치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원리(理)에 대한 탐구, 관념과 이론을 현실의 장에서 검증하는 문제, 현실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인간관, 도덕과 공리의 관계, 사회 변동에 따른 규범의 변천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로 볼 때 『한비자』에서는 당시 사회에서 답이 요구되던 중대한 문제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어서, 선진 정치사와 사상사 연구에 필수적인 학술서라고 할 수 있다. 역사 문헌적 가치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비자』에는 상고 시대부터 전국 말기의 귀중한 역사 자료를 담고 있다. 문학적 가치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비자』는 선진 시기의 다른 저작들에 비해 문체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구성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덕치와 법치
전국 시대에는 극심한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가와 법가는 서로 다른 처방을 제시했다. 공자의 덕치사상을 이어받은 맹자는 당시의 혼란이 지배 계급의 탐욕과 포학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도덕적 자각과 덕성의 함양을 통해 仁하고 義로운 정치를 실행하도록 촉구했다. 반면에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는 당시의 혼란이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힘’들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엄격한 ‘법’의 적용과 무거운 형벌을 통해 강력한 군주권을 확보하는 길만이 혼란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유가가 ‘덕’을 주로 하고 ‘법’을 보조적 수단으로 삼는 ‘德主刑補’의 정치 이념을 추구한 반면, 한비자는 ‘인의’와 같은 도덕규범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오로지 ‘법’만이 공적 영역에서 관철돼야 할 유일한 규범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한비자의 정치사상에서 흥미로운 것은 ‘법치’의 확립을 위해서 ‘인의’와 같은 도덕규범은 반드시 배격해야 한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비자는 왜 ‘인의’를 배격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는 왜 ‘인의’는 ‘법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봤던 것일까. 그리고 한비자는 왜 ‘인의’와 같은 도덕규범이 ‘법치’의 시행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여겼을까. 과연 ‘인의’는 법치의 확립을 위해 배격해야만 할 가치인가. 이러한 의문에 답하는 일은 유가와 법가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지만, 나아가서는 유교적 가치관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한국 사회의 규범 문화를 반성적으로 성찰해보기 위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한비자가 ‘인의’를 배격하는 여덟 가지 이유
① 신하에 의한 ‘인의’의 시행은 군주의 통치권을 잠식한다
여기서 먼저 방법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한비자가 배격하고자 하는 ‘인의’는 과연 누구의 ‘인의’인가?” 하는 점이다. 『한비자』 전편을 통해서 볼 때, 그가 가장 시급하게 배격하고자 하는 ‘인의’는 신하에 의해 시행되는 ‘인의’이다. 신하에 의해 ‘인의’가 시행될 경우, 군주의 통치권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② 공이 없는 자에게 仁愛를 베푸는 일은 사회적 신뢰를 훼손한다
군주가 ‘인’을 쉽게 베푼다면, 공이 없는 자가 상을 받게 되고 죄지은 자가 사면 받게 되어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③ 仁愛는 이득을 얻기 위한 도구적 수단에 불과하다 한비자는 ‘인’을 공을 이룬 사람에게 제공하는 賞의 의미로 파악하고, ‘애’를 조건부적 보답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에 있어서 ‘인’이나 ‘애’는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본래적 가치가 아니라 단지 ‘공적에 대한 대가’ 또는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한비자가 파악하는 ‘인애’는 인간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순수한 도덕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얼룩진 ‘이익사회’에서 통용되는 ‘물질적 대가’ 혹은 ‘조건부적 보답’에 지나지 않는다.
④ 백성들의 人性은 비열하기 때문에 仁愛로 교화할 수 없다 한비자가 ‘인의’를 배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성에 대한 불신에서 연유한다. 한비자에 의하면, 부모가 사랑을 베푼다고 해서 불초한 자식이 바르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며, 군주가 ‘인’을 베푼다고 해서 백성들이 질서를 지키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불초한 자식을 길들이기 위해서 부모의 사랑이나 스승의 가르침과 같은 ‘교화’의 방식은 별 효과가 없으며 차라리 ‘법’이 더욱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고 본다.
⑤ ‘인의’라는 사적 도덕은 법의 공공성을 파괴한다
한비자는 신하에 의해 시행되는 ‘인’은 자신의 지지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에 불과하다고 파악했다. 이런 관점에서 파악된 ‘인’은 보편적 도덕규범의 성격을 띠지 못하고 편파적이거나 파당적인 私德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한비자는 공직에 몸담고 있는 관리가 ‘인’과 ‘애’를 베푸는 일은 곧 ‘공공 재화의 유용’과 ‘편파적인 특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⑥ 효율적인 지배 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인애보다 重刑이 효율적이다
백성들의 본성을 “사랑에는 기어오르고 위압에는 굴복하는 비열한 존재”로 파악하는 한비자의 입장은 자연히 ‘인애’에 의한 교화 대신 관료 체제의 ‘위엄’과 형벌 제도의 ‘엄격함’에 의거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통치 이념은 자연히 엄격한 법 집행과 무거운 형벌을 선호하는 중형주의적 통치 방식으로 이어진다.
⑦ 공공성의 확립을 위해서는 평등하고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사회 규범의 공공성은 ‘규범의 보편적 적용’이라는 절차적 합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한비자는 엄격한 법 집행과 관련, 아무리 ‘좋은 동기’에서 나온 행위라 할지라도 이러한 행위가 정해진 규정을 넘어서거나 직분을 위반한 것이라면 가차 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⑧ 시대의 변천으로 말미암아 인과 예의 도덕 정치는 효력을 상실했다 한비자는 ‘인’이나 ‘예’에 의한 도덕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시대의 변천’을 든다. ‘인’과 ‘예’는 옛날처럼 소박한 시대에나 가능했던 덕목이지, 현대의 시대적 조건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생산력이 발달하여 서로가 이익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인’이나 ‘예’ 대신 ‘법’이라는 객관적이고 강제적인 규범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王道와 覇道의 갈림길에서
한비자가 제시한 이유들은 나름대로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가 처했던 현실 속에서 객관적이고 효율적인 사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절실하게 요청되는 제안이었다고 여겨진다. 더욱이 강대국 사이에 끼어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던 한나라의 공자였던 한비자로서는 공권력을 확보하고 군비를 강화하기 위해 ‘인의’(덕치) 대신에 ‘신상필벌’을 골자로 하는 공리적 사회규범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한비자보다 조금 앞서 전국 시기를 살았던 맹자는 ‘인의’를 부정하는 한비자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한비자와 맹자의 상충하는 듯 보이는 입장들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각기 정당성을 확보한다. 한비자는 군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발호하는 重臣 세력과 私家 집단을 약화시키고자 했지만, 맹자는 군주를 善政으로 이끌기 위해 어진 신하를 중용해 군주권을 견제하고자 했다. 군주권을 강화해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려는 한비자의 입장과 군주권을 견제해 선정으로 이끌려는 맹자의 입장은 각기 ‘자국의 안전 도모’와 ‘폭정의 방지’라는 합목적성을 지닌다. 이러한 두 가지 합목적성은 결코 평면적 차원에서 대립되는 것은 아니며, 각기 다른 차원에서 정당성을 지닌다.


한비자와 맹자가 지녔던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의식과 해결 방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제적으로는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략이 자행되고 국내적으로는 부패 권력의 서민에 대한 침탈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현실에 직면해서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길일까. 우리는 한비자의 입장과 맹자의 입장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덕치’와 ‘법치’의 관계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고 보인다. 한비자의 방략에 입각해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의 短命은 잊을 수 없는 역사적 교훈을 남겨주었다. 천하를 힘으로 얻을 수는 있어도 힘만으로는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사실. ‘인의’가 결여된 세상은 야수의 세계이지 인간의 세계는 아니다. 공적 세계의 합리화는 도덕을 배제한 힘의 논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역으로 힘을 무시한 도덕적 호소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공적 세계의 합리화는 “힘과 탐욕이 난무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정치적·도덕적으로 원만하게 질서지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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