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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이라 불리는 경험과학적 탐구가 인간 자신에 대해 알려준 사실들
인지과학이라 불리는 경험과학적 탐구가 인간 자신에 대해 알려준 사실들
  • 이향준 전남대 철학과 BK21플러스사업단
  • 승인 2015.05.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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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_ 어떤 통섭의 현장, ‘철학적 횡단 세미나 2015: 몸과 인지’ 참관기

▲ ‘몸과 인지’ 철학세미나는 말 그대로 ‘횡단적’ 사유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다.

이번 세미나는 발표자에 동반되기 마련인 논평자가 지정되지 않고 발표자들과 청중들이 질의와 토론에참여했다. 사업단의 명칭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횡단적 사유’를 지향한다는 목적에 충실했다.


전남대 인문대학 1호관 106강의실은 ‘이을호기념강의실’이라고 불린다. 茶山學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인 玄庵 李乙浩(1910∼1998)를 기리는 의미에서다. 지난 1일 이곳에서 꽤나 흥미로운 학술행사가 열렸다. 철학과 BK21플러스 횡단형 철학전문인력 양성사업단(단장 노양진, 이하 ‘사업단’)이 주최하는 ‘철학적 횡단 세미나 2015’라고 명명된 이 학술 세미나의 주제는 ‘몸과 인지’였다.
발표자는 모두 8명이었고 행사는 3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에서는 언어학, 서양철학, 동양철학 분야에서 각각 「인지언어학적 탐구의 가능성」(김동환, 해군사관학교), 「체화 개념의 지도 그리기」(이영의, 강원대), 「道를 아십니까?」(이향준, 전남대)라는 제목의 글들이 발표됐다. 2부에서는 법학, 의학, 윤리학 분야에서 「법과 인지」(강태경, 이화여대), 「체화된 인지와 몸의 분류」(강신익, 부산대), 「몸의 습관화와 도덕교육」(박병기, 한국교원대)이라는 주제가 다뤄졌다. 마지막 3부에서는 음악, 영화 분야에서 「음악의 체화된 의미에 대한 인지학적 해명」(정혜윤, 명지대), 「왜 고양이와 개는 우리와 영화를 보지 않을까」(이상욱, 부산대) 등이 선보였다.


겉으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철학 연구 기관이 주관하는 행사임에도 8명의 발표자 가운데 철학 전공자가 두 명에 불과했다. 둘째, 발표자에 동반되기 마련인 논평자가 지정되지 않고 발표자들과 청중들이 질의와 토론에 참여했다. 내적으로는 사업단의 명칭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횡단적 사유’를 지향한다는 목적에 충실했다. 최근 들어 급속한 진전을 이루고 있는 인지과학과 인문학과의 융합적 탐구의 실제를 한 자리에서 체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발표에서 몸의 중심성과 ‘신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논점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영상도식(Image Schema)’, ‘개념적 은유’, ‘개념혼성(Conceptual Blending)’과 같은 낱말들은 반복과 차이를 통해 각 발표자들의 글을 종횡으로 엮는 씨실과 날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착종 관계는 발표자들의 글이 발표될 때마나 그 독자적 양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이 행사의 내적 의의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횡단적 세미나의 내적 의의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김동환은 인지언어학의 최근 성과에 속하는 포코니에(G. Fauconnier)와 터너(M.Turner)의 개념혼성 이론의 개요를 소개했다. 나는 주로 개념적 은유라는 관점에서 동양철학의 핵심 개념인 道 개념의 의미론적 확장 양상을 묘사했다. 나는 되도록 익숙한 사례들과 함께 ‘경로도식’, ‘인생은 여행’, ‘X는 인간’이라는 은유적 기초 위에서 형성된 도의 개념체계가 어떻게 ‘되돌아오는 여행’ 이미지, ‘도의 의인화’, ‘길 없는 길 가기’라는 특징적 양상들을 포함하는지를 설명했다. 정혜윤의 발표가 시선을 끈 이유는 음악적 제스츄어라는 독특한 현상이 인지언어학의 「영상도식」을 통해 해명될 수 있다고 제안한 때문이었다. 비언어적 텍스트에 대한 영상도식적 접근이라는 특징이 명료하게 드러난 것이다. ‘경로도식’과 ‘수직도식’, ‘주기도식’을 포함한 영상도식들이 쇼팽과 슈베르트의 작품 분석에 적용됐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음악적 제스츄어가 우리의 신체적 경험을 통해 창발한 영상도식이 음악에 적용된 결과”라는 일반화된 결론을 이끌어냈다.


누구나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질문을 선보인 이상욱은 기본적으로 신체화된 인지이론이 영화 언어를 해석하는 방법론적 통로임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는 ‘신체적 정서’와 ‘인지적 정서’의 차이, 서사의 중요성 등이 영화를 인간지향적인 매체로 만들고 있다고 간주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방향으로의 기술적 형식적 발전이 고양이와 개가 감상하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최적화된 영화적 발전을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개와 고양이를 위한 영화를 원한다면 “인지적 정서보다 신체적 정서를 유발하는, 이야기보다는 더 원초적인 정보처리에 집중하도록 새로운 영상문법”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영화서사가 개념혼성과 모방의 이중 기제를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 영화의 보편적 향유 가능성을 담보하는 인지적 기제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처럼 앞에서 소개된 개요가 몇 십분, 혹은 몇 시간 뒤에 동양철학, 음악 및 영화의 분야에서 구체적 분석과 주장에 사용되는 현상을 누구나 목격할 수 있었다. 유사한 학문적 통찰들이 또 다른 영역에서도 불가능할 리가 없다는 추론은 참석했던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이 학술 세미나는 이런 식으로 참가자들을 설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발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태경은 제2세대 인지과학에 기초한 인지이론을 법학연구에 도입함으로써, 인간 사유의 은유적 특징이 법학의 이해에 끼칠 수 있는 이론 실천적 가능성을 논구하고 있었다. 박병기는 ‘신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을 전제로 최근의 자연주의적 윤리학의 요점을 ‘몸의 습관화를 중심으로 하는 마음의 확장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하고 그것의 윤리학적 의미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심지어 강신익은 몸의 은유적 개념체계의 계보를 고찰한 후, ‘몸은 기계/전장/시장’이라는 낡은 은유를 대신해서 ‘몸은 정원/창/이야기꾼’이란 참신한 은유로의 이행을 제안하기도 했다. 신체화된 인지를 중심으로 ‘체화주의’라고 명명된 이론적 흐름을 네 가지 갈래―즉, 체화된 인지 이론, 확장된 인지 이론, 구현된 인지 이론, 행화적 인지 이론―로 구분해서 소개한 이영의의 발표가 오히려 전통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대화와 토론들이 도달한 곳
이 모든 발표를 둘러싸고 오고간 대화와 토론들은 단 한 가지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인지과학이라고 불리는 경험 과학적 탐구가 인간 자신에 대해 알려준 사실들이 인문학적―슬링거랜드(E. Slingerland)의 주장을 따르자면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탐구를 위한 조명이자 메스로 사용된다는 말이다. 탐구 영역이 다르고 주장하는 내용이 달랐지만, 누구나 내포된 공통성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발표자의 한 사람으로 참석한 나에게 이 방향성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지만,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구체적 양상을 목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통섭의 선언적 효과가 아니라 그 귀결의 구체성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이 학술 세미나는 그 의미심장함이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이향준 전남대 철학과 BK21플러스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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