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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한 서양사학자의 ‘흔적의 사유’
역사연구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한 서양사학자의 ‘흔적의 사유’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06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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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 이영석 지음|푸른역사|476쪽|28,000원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은 독서의 즐거움에서 나온 소산이긴 하지만, 여전히 선배 역사가들로부터 물려받은 지적 유산 위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려는 고군분투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것을 이 나라 역사학의 어떤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는 고민에서 나온 ‘흔적의 사유’라고 부르면 어떨까.



작가들은 자기 앞의 선배의 그늘에서 벗어나 우뚝 서고자 하는 깊은 욕망이 있다는 ‘영향에 대한 불안(anxiety of influence)’을 일찍이 간파해낸 이는 문학이론가 헤롤드 블룸(Harold Bloom)이었다. 선배 작가를 넘어서고자 하는 창조적 해석이 없다면 언제나 문학사의 뒷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후배 작가들의 한계를 지적한 이론이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나 결국은 그의 앞으로 나가야 하는 숙명, 이것은 비단 문학 분야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2006년 『나를 사로잡은 역사가들: 사회사의 유혹1』을 발표했던 이영석 광주대 교수(서양사)가 다시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을 발표했다. 9년의 발표 격차가 있긴 하지만, 두 책은 동일선상에 놓이는 책이다. 한 서양사학자의 ‘歷史家 읽기’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나를 사로잡은’ 혹은 ‘역사가를 사로잡은’과 같은 호명 속에는 분명 헤롤드 블룸이 지적했던 ‘영향에 대한 불안’을 사유해볼 수 있는 흔적들도 엿보인다. 이 흔적들은 이 땅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행위의 의미를 따져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역사가들에 대한 일종의 인상기다. 한 역사가의 여러 저술을 피상적으로 훑어본 글도 있고, 한 권의 책을 좀 더 깊이 음미하면서 정독한 독후감도 있다.” 그러니까 저자는 이 책이 ‘역사가들에 대한 인상기’라고 말한다. 그 인상기는 해당 역사가들의 저술에 대한 피상적인, 또는 정독을 통해 구성된 것이다. 역사가들의 역사를 보는 시선과 사상의 형성 과정을 추적했다기보다 그들의 발언을 ‘저술’의 형태로 수용해나간, ‘한국 서양사학자’의 한 내면적 독해로 구성된, 앞선 역사가들과의 대화록이다.
2006년의 책은 윌리엄 호스킨스, 로렌스 스톤, 시오도어 젤딘, 로이 포터, 에릭 홉스봄 등 다섯 명의 역사가를 다뤘다. 분량은 255쪽. 이번 책은 여기에다 에드워드 톰슨, 니얼 퍼거슨, 데이비드 캐너다인, 사이먼 샤마, 아놀드 토인비, 이순탁과 노명식 등 일곱 명의 역사가를 추가해 476쪽 분량을 만들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인정한 그대로, 이들 역사가들의 목록을 일관하는 어떤 질서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 명에 이르는 서구 역사가들 가운데 토인비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공통점도 없다. 대부분 사회사가로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 말고는, 굳이 관심을 둔 이유를 찾는다면 이들의 저술이 독자의 큰 호응을 얻었다는 점, 그러니까 전문역사가의 저술로는 보기 드물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노동정책』(1994),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2003), 『사회사의 유혹』(전2권, 2006), 『영국 제국의 초상』(2009), 『공장의 역사: 근대 영국사회와 생산, 언어, 정치』(2012), 『지식인과 사회: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역사』(2014) 등 굵직한 책을 발표해왔던 저자의 이 말은 액면 그대로 읽기 어렵다. 아무리 전문서적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내놓는 게 추세일지라도, 그리고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들고 싶다 해도, 이것만으로는 이들 역사가를 호명해낼 수는 없다. 서양사학자 이영석 역시 ‘영향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각 ‘역사가들의 경험과 섬세한 연구 태도’를 느껴보려는 자세로 그들의 저작을 탐구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저자가 호명해낸 열두 명의 역사가들 가운데는 낯선 이름들이 있다. 호스킨스(풍경의 역사), 스톤(가족과 결혼의 역사), 젤딘(감성의 역사), 포터(런던의 역사), 샤마(영상의 역사) 등은 전통 역사서술에서 친숙한 이들(주제)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이름들은 저자가 출간한 책들과 쉽게 겹쳐지고 있다. 도대체 이 낯선 이름들은 어떻게 한국의 한 서양사학자를 사로잡았을까. 저자는 어떻게 이들에게 사로잡힌 것일까.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Landscape)』를 쓴 호스킨스는, 시간의 흐름 위에 형성된 공간의 의미지형을 읽어낸 역사가다.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은 영국 농촌 풍경에 남아 있는 ‘역사적 지층’의 의미와 비밀을 해독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스킨스는 하나의 풍경에는 역사적 시간이 중층적으로 담겨 있다는 관점 하에 낯익은 풍경들―정주지, 버려진 경지, 인클로저, 둑, 울타리, 마을 등에 대한 해독을 넘어 역사 속 사람들의 삶을 재현하는 데 공을 쏟았다. 저자는 ‘변화하는 것 가운데에서 지속되는 것, 지속되는 것 속에서 변화하는 것’을 찾아내려했던 호스킨스의 작업에서 잃어버린 대상과 그 변화의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읽어낸다. 그리고 여기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산업화라는 이름 아래 급속하게 뒤바꾼 우리 풍경에 관해 과연 호스킨스와 같은 연구와 탐사가 가능할 것인가.”


시어도어 젤딘도 저자를 사로잡은 역사가다. 젤딘은 ‘감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역사학이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인간 내면의 세계를 거침없이 탐사한 역사가다. 전5권의 『프랑스 1848~1945』는 기존의 역사가들이 중시해온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구조 대신 근대 프랑스의 갖가지 감성이나 정감을 주제로 삼아, 프랑스인 특유의 정감과 습속을 소개 해석한 大作이다. 이후 출간한 『프랑스인』에서는 과거보다 현재 살아있는 개인의 생애사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역사서술의 형식을 파괴하고자 했다. 이 같은 시도는 현재로부터 과거로 소급해 올라가는 방법을 취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에서도 이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젤딘은 이 일련의 저작에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저술에서 역사 지식이 다시금 생명을 얻는 것은 그가 바로 이러한 역사관을 가진 ‘미래의 삶을 위한 역사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텔레비전의 영상역사물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결과물을 다시 책으로 출판해온 사이먼 샤마 역시 낯선 이름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샤마가 저명한 역사가의 경계를 넘어 이른바 텔레비전 역사가라는 새로운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감으로써 광범위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샤마는 BBC의 대형 역사 다큐멘터리 「브리튼의 역사」(총 15부)를 통해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역사가다. 저자는, 비록 샤마가 ‘(영국에 대한) 하나의 역사’ 이상의 형상화를 이룩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과거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투사해 새롭게 청중에게 다가섰다는 점은 인정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외에도 ‘계급’의 의미를 환기한 에드워드 파머 톰슨, 영국 제국의 세계 지배 역사를 살핀 니얼 퍼거슨, 영국 귀족과 영제국의 성격을 규명하려 한 데이비드 캐너다인 등은 역사가가 ‘세계화’ 문제를 어떻게 내면화하고 이와 대결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도 손색없다.


그렇다고 저자가 영국 역사가들에만 눈길을 준 것은 아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최근세계일주기』(1934)를 쓴 경제학자 이순탁의 세계정세 인식을 ‘역사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으며, 비록 추도사의 형태이긴 하지만, 한국 서양사학계의 제1세대 원로학자인 노명식 교수를 언급했다. 특히 노명식 교수를 환기한 부분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 사회가 자생적인 근대를 이룩하지 못했다는 ‘근대 콤플렉스’는 한국 서양사학계 제1세대가 공유한 역사인식이기 때문.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근대 콤플렉스의 극복, 더 나아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역사상을 정립하는 일은 후대 역사가들이 짊어진 과제다.” 저자 이영석 교수 역시 이 ‘후대 역사가들’에 위치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은 독서의 즐거움에서 나온 소산이긴 하지만, 여전히 선배 역사가들로부터 물려받은 지적 유산 위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려는 고군분투의 산물인 셈이다. 이것을 이 나라 역사학의 어떤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는 고민에서 나온 ‘흔적의 사유’라고 부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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