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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헤드셋’, 불안장애도 잠재웠다
‘가상현실 헤드셋’, 불안장애도 잠재웠다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05.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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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00. 사회공포증

▲ 가운데 사람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을 안보이게끔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출처=<네이처>

보이지 않으면 불안장애가 사라질까. 지난달 23일 <네이처>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도덕적 도전(The moral challenge of invisibility)」이라는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우리 모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당황했던 순간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보고 있을 때 당신이 무언가를 어설프게 말하거나 멍청한 행동을 했다면, 당신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진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한테 도움이 될까. 명확히 말하자면, 도움이 된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신경과학자들은 ‘가상현실 헤드셋’ 등을 사용해서 지원자들로 하여금 몸이 사라진 듯한 환상을 갖게 해 봤다. 지원자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몸을 붓으로 지운다고 느껴 아래를 내려다봤고 허공에서 붓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지원자들은 이러한 경험만으로 그들의 몸이 남에게 보이지 않게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몸이 남에게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땅으로 꺼졌다고 느낀 지원자들도 많았다.


이러한 실험이 주는 효과는 뭘까. 지원자들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자신들이 느끼던 불안감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느끼던 불안감은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타인의 눈길을 받았을 때 드는 기분이었고, 실험이 진행되면서 불안감이 감소했다는 지원자들의 느낌은 이들의 심장 박동을 측정함으로써 더욱 신빙성을 보였다. 스톡홀름 연구팀 중의 한 명인 헨릭 에어손(Henrik Ehrsson)은 이 기술은 사회불안장애(다른 말로 ‘사회공포증’이라고도 한다)를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교류와 공포의 불안감
불안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조마조마하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태다. 『최의헌의 정신병리 강의』(최의헌, 시그마프레스, 2008. 이하 관련 내용 참조)에 따르면, 사회불안장애는 불안장애 중의 하나인 공포증에 포함된다. 공포증은 특정 공포증(specific phobia)과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으로 나뉜다. 거미, 벌레, 물, 번개, 피, 주사, 엘리베이터, 교량, 낙하, 구토와 같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공포를 특정 공포증이라 한다면, 사회공포증은 사회적 교류 자체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면 누구나 불안해하고 긴장한다. 그런데 이런 불안이 지나치면 꼭 들어야 할 과목을 발표 때문에 듣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과 접촉이 잦아진다는 생각에 승진을 사양하는 등 생활의 많은 부분이 제약을 받는다. 사회공포증 환자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해야 될 때 △낯선 사람들과 얘기할 때 △이성과 얘기할 때 △권위자와 얘기할 때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 얘기할 때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결혼식 방명록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글씨를 쓸 때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공포증이 유발된다.
심리학자들은 사회공포증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즉 환자가 살아오면서 중요한 인물로부터 창피와 비난, 그리고 놀림을 받았거나 모욕을 당하고 버림을 받았을 때, 그 인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내면화한 뒤 주변 인물에게 투영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주변 인물들이 자신을 질타하거나 비웃을 것이라는 생각에 공포가 촉발된 것이라 보고 있다.


『사회공포증』(김은정, 학지사, 2000. 이하 관련 내용 참조)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회공포증에 걸릴 확률은 3~13%라고 한다. 물론 나라마다 확률은 다르다. 사회공포증은 미국 같은 서구 문화권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장애다.
사회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예를 들어,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해야 할 상황에서 쉽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공포상황에 노출되면 예외 없이 즉각 불안반응이 나타난다. 주로 진땀이 나고, 몸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세차게 뛴다. 또 몸이 얼어붙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땐 자신이 말을 똑똑히 하지 못하거나 목소리가 떨린다고 생각한 나머지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말을 할 경우 필요 이상으로 짧게 말하거나 빨리 내뱉어 버린다. 그래서 대인관계 상황을 아예 피해버리는데, 만약 두려운 상황을 피하지 못할 경우 극도의 두려움이나 불안을 참으면서 그 상황을 견뎌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포감은 약물이나, 인지 행동 치료(cognitive behavior Therapy, 이하 CBT)를 이용해 치료해왔다. 약물 치료는 다른 심리 치료와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노력이 적게 들고 구하기 쉽다. 그러나 약물이 대인관계 기술을 가르치거나 자신감을 심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CBT를 통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올바르게 환자의 생각을 변화시킴으로써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사회 속에서 스트레스가 되는 다양한 상태를 정도에 따라 측정해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힌다는 취지다. 이미 가상현실에는 CBT의 가치가 드러나 있다. 스톡홀름 팀은 환자들에게 자신들의 몸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에 서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점차 보이게 했다. 그 결과 자신에 대한 인식과 지각의 깊이는 상황에 따라 사람들에게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연구는 또한 ‘몸 소유권’ 즉 몸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어떠한지를 보여줬다. 1998년에 연구원들은 환자들에게 자신들의 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이어서 고무손 하나가 붓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자 환자들은 그 고무손이 그들 몸의 일부분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감각을 변화시키거나 환상 속으로 감각을 대체한다는 것이 밝혀져 이후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2013년 에어손은 연구를 통해 환상이 ‘보이지 않는 손’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때 환자들은 비어있는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몸이 사라지고 싶은 사회공포증 환자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소재로 하는 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알고 있다. 이야기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도덕의 다른 측면을 생각하게 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국가』 2권에서 마법의 투명 반지 신화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로, 양치기였던 기게스가 어느 날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해주는 신비한 반지를 발견한 뒤 자신을 숨기고 궁궐에 들어가 왕비를 겁탈하고 왕을 죽인다는 내용이다.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는 ‘기게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 『투명 인간(The Invisible Man)』을 썼다. 소설을 통해 남에게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이 벌이는 부패한 행위들을 드러냈고, 우리의 행동에 대한 우리 개인들의 책임감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질책하며 교훈을 남겼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우리의 도덕이 정말로 혼란에 빠질까. 때문에 연구원들은 새로운 연구를 시도해 ‘기게스 효과’를 시험하고 싶어 한다. 에어손의 연구 동료인 아비드 거터스탐(Arvid Guterstam)은 보이지 않는 환상에 환자들을 노출시켜 다수의 도덕적 딜레마를 발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덧붙여서 환자들이 정상적으로 노출된 자신들의 육체를 갖고 있을 때와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이번 연구와 더불어 연구가 더 진행될수록 척수 부상 때문에 몸이 마비된 사람과 여러 사람들에게 ‘환영의 몸(phantom body)’이라는 환상을 경험시킬 수 있게 됐다. 이로서 이들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 정말로 그들이 몸을 갖고 있다고 느끼며 행복해 할 것이다. 한 소설가는 일찍이 「시선고」를 통해 타인의 시선이 주는 끔찍함에 대해 고백한 바 있다. 이번 연구 결과로 과연 불안감이 사라지게 될지 주목된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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