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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죽여야 한다면?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죽여야 한다면?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04.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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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99. 생명윤리와 법

▲ 로뎅의 유명한 작품 「생각하는 사람」의 옆모습에는 사유에 따르는 고뇌의 흔적이 역력하게 새겨져 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환경이기도 한 ‘생명윤리’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유의 고뇌를 요청하고 있다. 의학자와 법학자가 집필한 『생명윤리와 법』은 그러한 고뇌의 흔적을 아로새기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최근 군견 ‘반도’가 민간에 분양돼 화제였다. 2013년 1월 동물보호법 개정 이후 안락사가 금지됐다. 그래서 군 당국은 관리 비용 등을 고려해 정기적으로 무료 분양할 예정이다. 안락사와 동물보호는 동물윤리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생명윤리와 법체계 하에서 고려해야 한다.
생명의 경계는 어디부터 시작인가. 또 생명있는 모든 것들이 지닌 권리는 어떻게 행사돼야 하는가. 생명의 의미나 본질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은 생명윤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많은 이들이 기본적으로 생명윤리를 인권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동물의 권리는 어떤가. 지난해 12월에 나온 권복규(의학전문대학원)·김현철(법과대학) 이화여대 교수의 저서 『생명윤리와 법』(이화여대출판부, 3판. 이하 내용 참조)은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생명 윤리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뉘른베르크 강령과 생명윤리

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 독일의 전범과 의사들을 처벌하기 위해 뉘른베르크 강령(Nuremberg Code)이 만들어졌다. 뉘른베르크 강령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의학 연구를 규율한다. 이어 1964년 세계의사회(WMA)는 ‘인체를 활용한 생의학 연구’의 윤리 기준을 만들었다. 그 이후 1970년 미국 위스콘신대의 포터(Van Rensselaer Potter)에 의해 생명윤리(bioethics)라는 말이 쓰이게 된다. 생물학은 점점 발전해 생명의 기초를 밝히는 단계까지 갔고, 모든 생명 현상이 DNA 유전정보의 발현이라는 사실까지 드러낸다. 결국 기존의 학문상 경계가 허물어지게 된다. 오늘날 생명과학은 생물학을 포함해 의학, 수의학, 약학, 축산학, 농학, 식품공학과 같은 관련 응용 분야 모두에 적용된다. 이제 생명윤리 문제는 인간 삶의 일부가 됐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커지게 됐다. ‘생명’이 의미하는 범위는 매우 넓다. ‘윤리’ 역시 마찬가지다. 때문에 하나의 생명윤리 정의가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국가가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제시해야 할 몇 가지 개념이 있다. 생명을 가진 개개인의 의사를 중요시해야 하며, 의도는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환자의 사회적 신분이 낮고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생명을 살리는 실험이 성공할 때마다 뒤따르는 건 실험의 윤리적 측면이다. 때론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생명윤리 쟁점들에 대응하기 위해 관습이나 도덕 이외에 법규범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뇌사와 장기이식 문제를 보면, 우리나라는 1969년 생체 신장 이식에 성공했고, 1979년에는 뇌사자로부터 신장 이식에 성공했다. 그러자 많은 과학자들이 뇌사를 죽음의 또 다른 기준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가 뇌사를 죽음의 기준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장기 이식의 필요성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뇌사를 완전한 죽음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에, 뇌사로 인한 장기 적출은 한 생명을 죽이고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과 다름없다.


뇌사 문제를 넘어간다 하더라도 장기이식의 윤리적 쟁점이 남는다. 인체 조직의 채취, 가공, 분배 과정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생겼고, 인체 조직이 마치 상품처럼 거래되는 오늘날을 비판하는 시각이 많다. 한편에서는 장기이식은 생명을 살리는 옳은 일이며, 거래의 개념이 사물에서 먼저 쓰였기에 사람의 장기를 옮기는 행위도 이와 같이 본 것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자신의 생명이 아닌 다른 생명을 다루는 권한은 어떨까. 인공 임신중절수술 문제는 여러 사회의 논란 중 하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강간으로 임신됐거나, 임신으로 모체의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와 같이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부분적으로 인공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사람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태아를 죽이는 것은 치매에 걸린 노인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반론이 있다. 삶의 질 추구가 생명을 죽여서라도 확보돼야 하는 중요한 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이유로 임신된 모든 태아를 출산하고 아픈 인간을 살리고 난 후는 어떤가. 새로운 생명으로 한 가정이 빈곤해지고 인구 문제가 촉발된다 해도, 생명이기에 우선 살리고 봐야 한다는 것인가. 개인으로 인해 더 큰 단체가 위협을 받아도 여전히 개인의 생명에 초점을 맞춘 논란이 우세한 것은 왜일까.


현재 존재하는 생명과 태어나는 생명을 지구라는 별에 살아가게 할 것인지, 지구의 자원으로 돌려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생명을 만들기 위해 생명을 죽이는 일이다. 아픈 가족을 치료하기 위해 체외 수정으로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을 만드는 배아 복제나 줄기세포 연구를 예로 들 수 있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배아의 죽음을 전제로 한다. 낙태와 달리 어떤 존재를 연구나 질병 치료의 목적에 쓰기 때문에 더 심각한 윤리 문제를 갖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아의 지위를 인간의 다른 세포나 조직과 다를 바 없다고 보는 사람들 중 낙태로 배아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가 있다. 이들의 주장이 앞뒤가 맞는가. 생명의 윤리 문제는 이렇게나 복잡하고, 모든 생명 문제와 연결되기에 하나로 판단할 수 없다.
인간의 죽음으로 인간이 이득을 보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면, 동물의 죽음으로 인간이 생명 연장의 이득을 얻는 건 어떤가. 오늘날 인간이 받는 삶의 혜택은 수많은 여러 종들의 죽음에서 왔다. 『생명윤리와 법』에 따르면, 세계에서 한 해 동안 동물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의 수는 1억1천500만 마리다. 여러 기관이나 학교에서 시행하는 자잘한 실험까지 포함하면 수는 엄청날 것이다.


다른 종들의 죽음에서 얻은 삶의 혜택

실험동물들은 물과 사료가 제한되고, 약물을 투여 받고, 병원균에 감염되거나 암세포가 주입된다. 어떤 동물들은 생체 해부를 당하거나 즉각 안락사 되기도 한다. 생명이 삶의 주체를 경험하는 존재라면 동물도 인간처럼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증진하려는 목적은 인간의 관점에선 선한 일이다. 수많은 인간을 살려서 우리는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가. 『생명윤리와 법』은 생명윤리의 논쟁거리에 답은 없다고 했다. 책은 지난 10년간 이어온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생명과 생명윤리, 인간에 대한 물음부터 동물실험과 이종이식까지 저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부록인 ‘생명윤리와 인권에 관한 보편 선언’, ‘세계의사회 헬싱키 선언’ 등은 두고두고 참고할 만하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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