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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단과대 특성 살려 … “인문학자는 野蠻의 場 제공한 주범 아니다”
독특한 단과대 특성 살려 … “인문학자는 野蠻의 場 제공한 주범 아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4.28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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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고려대 인문대학 춘계포럼 ‘나의 인문학’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충남 대천에서 고려대 인문대학 춘계포럼 ‘나의 인문학’이 눈길을 끈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고려대 인문대학’이라는 독특한 구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 위에서 ‘경험적 인문학’ 모색이 시도됐다는 것이다. 고려대 인문대학(세종캠퍼스)은 ‘인문대학’ 안에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학 분야가 혼재돼 있는 독특한 단과대학 특성을 갖고 있다. 이번 포럼은 이러한 특성을 살려 각 학문 분야를 전공하는 3명의 교수가 최근 연구주제와 경향을 설명하는 발표자로 나섰고, 이들 발표에 대해 학문 분야를 가로지른 대화와 토론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발표자로 나선 이는 북한학과의 가브로센코 교수였다. 가브로센코 교수는 ‘한국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이점을 살려 북한의 문화정책, 예술가, 사랑, 결혼 문제 등 ‘북한인’의 삶에 관한 미시사적 연구를 진행해 온 중견학자다. 러시아 억양을 섞은 유창한 한국어로 북한-소련의 국제결혼과 그 추이를 다룬 「1950년대 북한·소련 가족의 운명: 알려지지 않은 비극」을 발표했다.

‘북한인’의 맨 얼굴 조명한 러시아 학자
가브로센코 교수는 1950년대 유학 등으로 우연한 기회에 만나 운명적 사랑을 나눈 북한의 엘리트 남성과 러시아 여성 사이의 국제결혼과 그 사이에 태어난 2세들의 삶과 운명, 1960년대 이후 강제 이별과 본국 송환, 북한 내에서의 차별 등 지금까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부분을 짚어냈다. 특히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조선인 남편과 감옥생활을 같이 했던 김 철의 아내 엘레나 킴의 증언 녹취는 그가 수년간 공을 들여 성사시킨 결과여서 청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브로센코 교수의 이번 발표에 대해 같은 학과 남성욱 교수는 “1960년대 북한의 국제결혼에 대한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북한 최고위층의 의중을 반영하는 정책 변화로 보인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그는 “10여 년간 감옥생활을 같이 하며 4명의 자녀까지 둔 김 철-엘레나 킴 두 사람의 사랑이 다시 북한 당국에 의해 찬양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진 발표는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의 박유희 교수의 「박정희 정권기 영화검열과 감성 재현의역학」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정치구조에서 진행된 영화 검열을 제도와 권력의 산물로 이해한 박 교수의 발표는 1960~70년대 영화겸열과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영화감독 이만희의 죽음을 초점에 맞춰 진행됐다. 당대의 삶과 역사의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는 영화감독이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어떻게 억압당하고 아까운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환기한 박 교수는, 박정희 정권기 영화통제와 반공·국책영화 중심의 한국영화 판도를 ‘불황과 저질’로 규정하면서, 영화통제의 기조와 추이 등에서 사실주의를 표방하거나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었던 감독들의 고충을 기록과 증언 자료를 통해 분석해냈다.
이 같은 발표에 대해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당시 경제난으로 外貨 사용에 어려움이 많던 정부로서는 영화 수입에 국가적 통제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남성욱 교수 역시 “외화 부족으로 인해 外畵는 동시기 작품이 아닌 지난 시기의 가격이 싼 영화를 불가피하게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을 보탰다.

다시 던진 질문, 인문학은 무엇인가?
이번 포럼의 가장 주목할 대목은 ‘인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제기한 독일문화학과 서장원 교수의 「인문학과 Liberal Arts」였다. 서 교수는 인문학마저 학문산업화를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인문학의 상품화 심화와 이를 주도하거나 방관한 인문학자들이 야만의 장을 마련한 주범으로 전락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인문학의 개념 정의를 인문대학의 영어 명칭 ‘College of Humanities’와, 문과대학의 ‘College of Liberal Arts’에서 중요한 단초로 읽어내면서, 인문학은 라틴어 어원 ‘studia humanitas’에서 유래하고 인문대학(문과대학)의 학과는 ‘artes liberales’, 즉 ‘자유 기술들(Liberal Arts)’에서 유래한다고 지적했다. ‘스투디아’는 라틴어의 ‘배움’이고 ‘후마니타스’는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적인 배움’, ‘인간다움에 대한 배움’, ‘인본주의에 대한 배움’이 고전적 의미의 인문학이라는 게 서 교수의 주장이었다.

‘인간적인’과 ‘인간다움’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서양 고대와 중세의 교육제도는 ‘7개 자유 기술’, 즉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을 교과목의 표준 원칙으로 삼았으며 이 중에서 문과의 교양 필수과목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으로 인문학자란 문법, 수사학, 논리학을 배우고 터득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자유기술’이란 로마적 사고로 볼 때 ‘자유로운 인간’ 양성이 곧 그들의 교육 목표라는 파악 때문이었다. 여기서 자유로운 인간양성은 인문학이나 대학의 근본 목표가 되고, 학문의 자유와 자유로운 인간 창조가 대학의 이념이 돼야 한다는 중요한 원리를 제공했다.


르네상스 시기 인문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짚어낸 부분도 흥미롭다. 중세시대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은 물론 인간성까지도 말살한 야만적인 시대로 인식됐기 때문에 인문학자들은 고대문화와 사유의 재생을 통해 이 야만적인 시대를 극복하려 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스투디아 후마니타스’이고, 직접적인 교량 역할을 한 것은 고전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었다. 르네상스 인문학자들은 이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로마의 원전을 속속들이 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서 교수는 서양적 의미의 인문학을 ‘인간적 배움’과 ‘기술’이라는 측면, 그리고 고전고대에 대한 열정적인 공부로 요약했다. 그는 “유럽의 인문학 변천사를 보면 단순히 ‘인문정신’ 강조와 ‘기술’이라는 특성이 지니는 ‘가르치고 배우는’ 수동적인 사고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는 비판적·능동적인 학문으로 변모한 역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모호하고 패배주의적인 인문학적 틀에서 벗어나 대안을 제시하고 인간과 시대를 선도하는 인문학을 창출할 때가 됐으며 인문학이야 말로 상아탑에 안주하는 학문성 이외에도 시대가 요구하는 해답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포럼 끝자리에서 방병선 고려대 인문학대학장은 “인문학 포럼을 통해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 분야의 융·복합적 견지에서 학문적 특성을 공유하고 다양한 질문과 응답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학문 발전을 꾀하고 향후에도 다양한 토의와 자기 성찰을 위해 지속적으로 매 학기 포럼을 개최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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