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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과학에서 벗어남으로써 근대과학 가능해졌다”
“고대 그리스 과학에서 벗어남으로써 근대과학 가능해졌다”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04.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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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98. 과학·기술의 기원

▲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과학과 기술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로부터 살펴봤다. 사진제공=카오스재단

“과학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에 있다.” 과학과 기술의 기원에 대한 강연에서 홍성욱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는 이같이 말했다. 근대과학은 17세기 과학혁명에 기인하고 과학혁명은 고대 그리스 과학에 토대를 둔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의 기원은 현대과학에 가깝다.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 베어홀에선 과학·지식·나눔 강연이 펼쳐졌다.
카오스재단(KAOS, knowledge Awakening On Stage)은 ‘기원’을 주제로 연속강연을 펼치고 있다. 우주, 물질, 지구, 과학과 기술, 생명 등 그 시작에 대한 탐구가 이어진다.
강연에 따르면, ‘과학’이라고 우리가 인식하는 개념은 18세기 중반 이후 정립됐다. 그 이전의 탐구는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에 가까웠다. 과학자(scientist)라는 용어는 1800년대에 생겨난다. 중세, 근대 초에는 메커니컬 아츠(mechanical arts)가 있었다. 이는 수공예 작업으로 하는 다방면에 걸친 일종의 기술이다. 우리가 현재 간주하는 ‘기술’은 19세기 중엽에 지금의 개념을 갖췄다. 지식, 노동과정, 결과물, 의지의 4가지 차원의 기술은 과학에 선행하기도 했다.

‘과학’ 개념은 18세기 중반 이후 정립
과학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 홍 교수는 하이데거와 라투르를 인용해 설명했다. 하이데거는 “기술 활동은 인간이 세상의 존재들을 인간을 위해 유용한 대상으로 바꾸는 어떤 ‘의지’”로 설명하며 기술의 본질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고 봤다. 라투르는 “과학과 기술 활동은 모두 인간과 비인간(nonhuman) 사이에 새로운 연관을 만드는 행위”로써 과학의 존재자와 지식을 규명했다.
인류는 달의 위상 변화나 관측 등을 통해 과학의 씨앗을 키웠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사냥을 위한 의례로서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벽화는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로 볼 수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발견된 달 관찰 기록이나 3만년 전 뼛조각에 나타난 달의 위상 변화 등은 훨씬 이전부터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가 이뤄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좀 더 정교하고 다양하다는 측면에서 바살라(Bassala)는 기술의 필요보다는 인간의 욕구에 비중을 둔다. 기술이라는 것은 “자연적 필요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 욕구, 갈망 등의 ‘여분’을 채우기 위해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심리적 설명은 새롭고 독특한 관점이다. 정말 필요에 의한 것이라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잉여물들은 설명하기 어렵다.
이어서 홍성욱 교수는 각 문명권의 출현에 주목한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기원전 5천년부터 강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문명권이 출현한다. 특히 홍 교수는 피라미드를 살펴봤다. 피라미드는 우리가 모르는 외계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실패를 거듭하며 과학적으로 세워졌다. 평균 2.5톤짜리 돌 230만개를 사용해서 건축했고 붕괴를 막기 위해 구부러진 형태로 짓기도 했다. 루이스 멈포드를 인용하면 피라미드는 인간을 동원, 표준화, 조직, 통제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원에 대한 탐구와 새로운 질문들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태어난 문명은 수학과 자연에 대한 실용적 지식을 갖췄다. 10진법의 숫자 체계나 대수학과 토지 측정을 위한 기하학은 이집트에서 비롯됐다. 메소포타미아에선 천문학, 수학, 의학 등이 초기 형태이긴 하지만 계산과 예측을 통해 실용적인 목적으로 나타났다. 이 문명들의 과학과 기술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강연은 자연스레 자연의 근본과 질서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자연의 내적 통일성과 변화 원천에 대한 탈레스나 피타고라스 등의 질문은 결국 자연의 발견 혹은 발명이다. 이는 다른 문명권엔 없었던 시도이고 모든 질문의 근저에는 ‘질서 잡힌 우주’라는 관념이 있었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홍 교수는 “이들이 던진 질문은 이후 그리스 학자들에게로 전해지고, 이들에 의해서 계속 제기되고 답해졌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대 철학자들 역시 기술을 개발한다. 아르키메데스는 부력 장치를 만들었고, 헤론은 수압, 증기를 이용한 기계를 고안했다. 하지만 이들의 목적은 실용적인 게 아니라 자연철학적이었다. 관념철학의 시초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다.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세운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낳았다. 특히 플라톤은 우주의 원운동과 행성의 역행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제자 가운데 에우독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선의 해답을 제시했다. 이후 프롤레마이오스는 원운동의 조합으로 태양계의 여러 행성운동을 거의 완벽하게 기술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코페르니쿠스는 여러 이론들을 재조합해 ‘괴물을 만드는 꼴’과 같다고 비판했다. 결국 중세과학을 넘어 근대과학, 더 나아가 현대과학이 태동한다.


홍 교수는 이러한 결론에 반문한다. “그리스 과학에서는 실험이 없었고 심지어 실험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적대적이었다. 지금 과학의 90%는 실험과학이다.”요컨대 (자연)철학과 실제적 기술은 실험과학과 합리적 기술로 나아간다. 실험과학은 베이컨, 연금술에서 확인된다. 그는 “그리스 시기에 나눠진 과학과 실용적 기술의 재결합이, 즉 그리스 과학에서의 벗어남이 근대과학을 낳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실험과학의 출범은 현대 기술과학(technoscience)의 시작”이라는 결론은 설득력을 얻는다. 과학과 기술의 기원에 대한 탐구는 이제 시작됐지만 더 많은 질문과 관심이 지적 탐험자 앞에 기다리고 있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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