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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학과 통폐합할 것’ 강요 … 폐과 학과 교수들 교권보호 시급하다
‘알아서 학과 통폐합할 것’ 강요 … 폐과 학과 교수들 교권보호 시급하다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5.04.2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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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맞은 대학, 어떤 선택했나

대학 구조개혁이 진행되면서 학부제, 학과제 등 학사개편의 움직임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손쉬운 학사개편 방법으로 선택되는 것은 학과통폐합이다.

취업률과 재학생충원률 등 학내 평가기준에 따라 학과를 평가하고, 비인기학과와 인기학과를 묶거나 유사학과를 묶어 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대학들이 학과통폐합을 시행하는 이유는 첫째,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대학평가를 잘 받기 위한 장치다. 재학생충원률 등 평가지표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학과를 묶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겠다는 심산이다. 둘째, 재정절감이다. 몇 년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등으로 재정난을 겪는 대학들이 재정절감을 위해 학과를 통폐합하고 학사단위를 축소하는 것이다. 모집단위를 키우면 학생수는 늘리고 학점수는 제한할 수 있어 학과 운영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학과통폐합으로 대학평가도 잘 받고 재정도 줄일 수 있어 보다 효율적이라는 대학본부의 계산이 전제돼 있다.

■ 정원 감축 내세워 알아서 학과 통합할 것 강요= 수도권 대학도 학과통폐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앙대가 모집단위 광역화로 구성원의 반발을 받고 있는 것처럼 최근 한성대도 학사개편을 둘러싸고 구성원과 대학본부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한성대는 지난 2월 16일 ‘클러스터 사업’이란 명목으로 교수들에게 학과통합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모집단위를 학부제로 광역화하면서 교수에게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한성대는 22개 학과를 평가해 A~D등급으로 나눠 C~D등급을 받은 학과를 정원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평가결과에 따라 C등급은 10%, D등급은 20% 정원 감축하고, 감축한 정원은 A~B등급의 학과에 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클러스터 사업에 신청한 학과는 등급을 한단계 올려주겠다는 조건도 걸었다. 취업률, 재학생충원률 등이 적용되는 학과평가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학과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폐과될 위기에 놓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교수들은 울며겨자먹기로 학과통합안을 제출했다. 박준철 한성대 교수협의회장은 “15개 학과가 8개 학부로 묶이는 안이 나왔다. 대학본부는 학과가 제출한 통합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일부 학과는 무리한 통합이라며 문제를 인지했지만 클러스터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30~31일 교협에서 전임교수 18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에서 ‘대학본부의 정책에 따른다’는 교수는 28.4%를 차지했다. 클러스터 사업을 전면유예하거나 수정ㆍ보완해야 한다는 교수가 71%를 넘는다.

구성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클러스터 사업은 지난 8~9일 학내 교무위원회를 거쳤다. 그 사이 학과 통합을 추진한 8개 학부 중 3개 학부가 계획을 철회할 것을 밝혀 차후가 주목되고 있다. 박 교협회장은 “애초부터 내키지 않았던 학과통폐합을 무리하게 진행한 것에 대한 구성원들의 반발도 있다. 또한 정원감축이 C등급은 6%, D등급은 12%로 다소 완화되는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한성대는 오는 17일 클러스터 사업의 이사회 최종승인을 앞두고 있다. 대학본부가 클러스터 사업을 발표한지 두 달도 안된 상황에서 학과 통폐합 안을 초고속으로 통과시키는 것에 대해 졸속적인 강행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박 교협회장은 “학부제로 묶인 과가 과연 경쟁력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랜시간이 걸려 커리큘럼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어떻게 학과를 통폐합해 운영할 것인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 비인기학과의 몰락으로 이어져= 무분별한 학과통폐합은 비인기학과의 폐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의대는 올해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의 폐과가 논의되고 있다. 학과 통폐합의 기준은 취업률, 재학생충원률, 신입생충원률 등의 정량지표라 인문계열의 축소는 피할 수 없다. 대학 발전을 꾀하기엔 단순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협회장은 “학과를 줄여야 한다는 데동의하지만 어느 학과와 통합할 것이냐 서로 의견이엇갈리고 있다. 가능하면 폐과하지 않고 통합하는 방향으로 학사를 개편해야 한다. 교수가 가르칠 수 있는교과목 영역이 확보돼야 반발이 적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문ㆍ예체능계열 등의 기초학문과 비인기학과가 통폐합 대상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목원대의 지난 2012~2014년 학사개편을 살펴보면 독어독문학과와 프랑스문학과가 국제문화학부로, 국어국문학과는 국어교육과로 통폐합됐다. 미술대학은 기초분야인 서양회화, 동양회화, 기독교미술과 등이 미술학부로 통폐합됐다. 음악대학은 성악, 작곡과 같은 기초분야가 성악·뮤지컬 학부와 작곡·재즈 학부로 통폐합됐다. 재학생충원률이 낮은 컴퓨터교육과는 컴퓨터공학과와 통폐합됐다.

순천향대도 1990년대 후반부터 학부제로 묶어 학과를 통합했는데 그 결과 비인기학과가 몰락했다. 학부제를 시행하다보니 학생들이 인기학과로만 몰렸기 때문이다. 비인기학과는 정원을 채우지 못해 일부 학과는 폐과수순을 밟았다. 순천향대의 한 교수는 “학과전체를 평가해 폐과하는 결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평가결과를 도약삼아 학과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학 특성화사업과 연계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대학도 있다. 경북대는 특성화사업 방안 제출시 일괄적으로 10% 정원을 감축하는 기준을 내세웠다. 특성화사업 방안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정원의 20%를 일괄감축한다. 특성화사업에 선정되면 5%를 추가 감축하고 학내 특성화사업에 선정되면 7.5%를 감축하기로 했다.

■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원칙없이 이랬다 저랬다=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갔다가 다시 학과를 통합하는 상태가 반복되기도 한다. 배재대는 지난 2011년 단과대학을 개편해 9개 단과대학과 1개 독립학부를 5개 단과대학으로 통합했다. 2013년에는 모집단위를 학과단위로 변경하며 56개 학과가 53개 학과로 통폐합됐다. 국어국문학과 한국어학과는 한국어문학과로, 중국학부의 중국어학과 중국통상학과는 중국학과 등으로 통합됐고, 독일어문화학과와 프랑스어문화학과는 폐지됐다. 지난해 배재대는 2015학년도부터 2017학년도까지 10%의 정원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기존의 5개 단과대학·53개 전공을 5개 단과대학·4개 학부·45개 학과로 통폐합했다. 오는 2017년까지 연차적으로 165명을 정원감축해 나갈 예정이다.

동의대도 지난 2005년 철학전공과 윤리전공을 통합해 철학ㆍ윤리문화학과로 변경하고, 지난해 심리학과까지 통합해 철학상담ㆍ심리학과를 신설했다. 지난 2001년 한국어문학부로 국어국문학전공과 문예창작학전공을 운영하다 2006년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로 변경, 올해부터 국어국문ㆍ문예창작학과로 통합했다. 법학대학은 2017학년도까지 5개 학과를 3개 학부로 묶을 예정이다. 경찰행정학과와 소방행정학과를2016학년부터 경찰행정학부로 묶고, 2017학년도에 법학과와 통합할 계획이다. 3개 학과가 1개의 학부로 묶이는 것이다. 유사학과를 통합하면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이종극 동의대 교협회장은 “A학과는 B학과와합치고 싶은데 서로 의견이 안 맞는 경우도 있다. 학과마다 생각이 다르고, 학과 내에서도 교수들 간 의견 조율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김재훈 대구대 교수협의회 의장은 “대학 구조조정에서 대학본부와 구성원 간의 합의과정이 제일 중요하다. 최대한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라며 “재학생충원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학과는 불가피하게 정리될 수밖에 없다. 다만 기초학문의 일방적인 희생은 곤란하다. 폐과 학과 교수들은 교양대학에 흡수하는 방향으로 교권보호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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