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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나침반
봄의 나침반
  • 정주영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15.04.2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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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정주영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복학생 C군. 지난 겨울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시간과 수강 시간표가 겹쳐 계속 저울질이다. 수강 희망 과목은 아르바이트 시간과 겹치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아르바이트를 놓을 수도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복학한 첫 학기 학점이 좋지 않았기에 이번 학기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만회해야 한다. C군은 도서관에 있을 수 있는 친구들이 참으로 부럽다.

#교원 임용고사 준비생 A양 역시 정체모를 답답함에 오늘도 힘들다. 부모님의 압박성 권유에 교원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꼭 교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원래 없었다. 살인적인 경쟁률의 시험을 통과할 자신도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직업을 고려해 보기도 쉽지 않고,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자니 그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A양은 이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두 학생은 실제 사례다. 필자는 박사학위 취득 후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 학기 사례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박사후과정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현재 수행하는 연구를 위해 집단을 특정해 모집하기도 하고, 필자가 진행하는 강좌의 수강생들이 상담신청을 해 오기도 한다. 상담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진로와 취업 문제다.

내담자인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대학 입학 이후 미래에 대한 불안, 특히 진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이라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진로에 대한 탐색의 기회를 가져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진로와 직업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소질, 성향, 미래 지향점을 성찰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의 시작점에는 가정의 사회경제적·문화적 배경, 부모·형제·자매들과의 관계라는 결정적 요인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학생들은 가정과 가족에게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그것은 비단 성격이나 가치관 형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로와 직업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희망진로와 직업이해는 부모나 일가친척들의 범주 내에서 보고 들은 바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짙다. 많은 대학생이 부모와 친척들의 직업세계 및 이와 관련된 직업문화에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불만족감과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불만족스러워하는 바로 그 직업군 주위를 무의식적으로 맴돌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진로의 선택 및 취직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직업 활동은 단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활동의 일부라는 점 역시 명백하다. 건강한 개인이 없다면, 유기적으로 건강한 사회도 존속 불가능하다. 사회라는 울타리는 사회적 실존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가능성들을 실현하면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사회적 가치들을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길라잡이가 돼 줄 수 있어야 한다. 일류대학이 진로의 최종 목적지라는 묵시적 메시지에 익숙해져 있을 대학생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얼마나 허망하고 막막할까. 또‘4+α’라는 제한된 시간은 더욱 결정적일 다음 선택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얼마나 빠듯하게 느껴질까.

이런 의미에서 대학은 대학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온 이들에게 진로의 나침반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친절한 목소리와 체계적인 확성기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각자가 품고 있는 봄의 기운이라면 현재의 사방만이 아니라 미래의 팔방 십육방으로라도 나가서 원하는 양질의 씨를 뿌리고 그들이 꿈꾸는 행복을 충분히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정주영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고려대에서 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주제는 대학생의 진로탐색과 결정, 직업 가치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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