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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방행
시선의 방행
  • 한필원 편집기획위원/ 한남대·건축학
  • 승인 2015.04.1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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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한필원 편집기획위원/ 한남대·건축학

우리 사회에서 집을 지을 때는 무엇에 기대느냐, 그리고 무엇을 바라보느냐를 따졌다. 전자를 坐, 후자를 向, 합해서 좌향이라 한다. 좌향은 바라보이는 요소, 곧 案帶의 선택에 따랐다. 한옥은 빼어난 모양의 산봉우리를 안대로 삼아 그것을 바라보고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바라보고 싶은 것이 흠모하는 조상의 사당일 경우 그것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집을 앉히기도 했다. 아무튼 집에서 앞으로 바라보이는 대상은 그 집에 사는 이의 지향점을 말해줬다.

이런 전통은 집이 밖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밖을 바라보는 장소임을 알려준다. 집은 관광의 대상이 아니라 바깥세상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편안한 곳, 곧 홈(home)인 것이다.

농촌에서 바깥세상은 경작지이고 어촌에서는 그것이 바다다. 농가들은 집 앞의 문전옥답, 그리고 그 너머의 농경지를 바라본다. 어촌마을에서 집들이 높은 곳이 자리하는 것은 해일을 피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생업의 터전인 바다를 늘 바라보려 하기 때문이다.

따스한 남쪽 바닷가의 아름다운 도시 통영은 동쪽과 서쪽의 언덕에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 어촌이었다. 벽들은 한결같이 흰색이었다. 오전에는 동쪽, 점심때는 남쪽, 오후에는 서쪽의 흰 벽들이 햇살을 반사해 도시가 명랑했다. 집들이 앞뒤로 바짝 붙어 있었지만 경사가 급해 앞의 초가지붕 위로 모두들 바다를 볼 수 있었다.

해질녘이면 통통배들이 쇠붙이가 자석에 이끌리듯 얌전하게 부두로 들어오곤 했다. 배들을 이끄는 것은 등대라기보다 바다로 향했던 그 따스하고 때로는 초조한 시선들이었다. 시선의 이끌림을 받지 못한 늦은 배들만 북포루의 불빛에 의지했다.

근래에 통영시는 동피랑 꼭대기에 있던 동포루를 복원하고 그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 따라 집들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뜻있는 사람들이 공공미술 작업으로 집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이로써 그 황당한 계획은 연기되고 동피랑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벽화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동피랑에는 점점 더 많은 벽화가 그려지고 조용했던 어촌이 시끌벅적한 벽화마을이 돼버렸다.

울긋불긋한 벽화들이 흰 벽을 감추고 있는 동피랑은 더 이상 햇살이 빛나는 명랑한 마을이 아니다. 이제 남쪽의 파란 바다를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 쪽 담벼락을 바라본다. 그 벽안에서는 가족의 내밀한 생활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반대로 돌려진 시선의 방향은 그곳이 바다에서 들어와 휴식하고 다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는 삶터가 아니라 관광지가 됐음을 말해준다. 시선의 방향과 함께 마을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이제 역할을 다한 벽화는 지워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흰 벽들이 햇살을 반사해 도시를 밝혀야 한다. 동피랑은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외부자의 그리기를 위한 바탕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바다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일 때뿐이다.

예술은 때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도구로 사용된 예술이 주어진 수명을 연장하려 할 때 그것은 곧 추해지고 삶은 교란된다. 마을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방문자는 겸손한 자세로 돌아가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그들의 삶에서 배워야 한다.

한필원 편집기획위원/ 한남대·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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