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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교수도 45%가 신분 불안 … 76%는 “학문생태계 붕괴될 것”
‘서울’ 교수도 45%가 신분 불안 … 76%는 “학문생태계 붕괴될 것”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5.04.16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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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3주년 기념 설문조사_ 지금, 대학교수로 살아간다는 것

‘이대로 가면 누가 대학교수를 하려 하겠나.’ 요즘 구조조정 토론회나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얘기다. 신입생 감소와 정원 감축, 재정 악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구조조정은 대학과 교수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사회적 시선은 또 어떤가. 한교수의말마따나, “성추행 사건이나 연구비 유용 등 대학교수에 대한 언론의 무분별한 비판으로 전체 교수들의 이미지가 추락해 자긍심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지금, 대학교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교수신문>은 창간 23주년을 맞아 교수사회의 정체성을 진단해 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학교수 생활에 대한 만족도와 신분 불안, 교수 위상을 확인하고 사회적 비판에 대한 생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대학교수의 미래 전망 등을 물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환경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오늘을 살아가는 대학교수의 삶과 고민, 미래 전망을 공유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수신문>은 2013년에도 같은 주제와 문항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 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에 인식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부분 문항을 그대로 가져왔다. 2013년 설문 문항은 <교수신문>이 2001년 실시했던 ‘한국 지식인 사회의 자기 성찰’ 조사와 손준종 한국교원대 교수가 2005년 했던 ‘한국 대학교수의 생활과 의식에 관한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조사개요
·조사대상: 전국 4년제 대학 조교수 이상 전임교수 785명(명예교수 포함)
·조사방법: 이메일 온라인 설문조사
·조사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
·진행·분석: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교수의 역할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연구와 교육의 자율성이 없어지고, 신분 보장에 대한 전망 역시 어둡다. 대학이 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대학의 본질, 학문의 본질이 위협받고 있다.”

대학과 교수사회가 이미 구조조정이라는 긴 어둠의 터널에 들어선 것일까. 대학교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인식이 늘면서 신분에 불안을 느끼는 심리도 커지고 있다. 젊은 교수일수록 이런 불안 심리가 뚜렷하다. 수도권 대학 교수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심각한 건 미래다. 지금처럼 대학 구조조정이 계속된다면 학문후속세대가 단절돼 학문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70%를 넘었다.

10년 이하, 조교수일수록 ‘고용조건’ 탓에 ‘신분 불안’

<교수신문> 설문조사에서 45.5%의 교수는 최근 2년 동안 교수 신분에 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13년 조사 때의 43.3%보다 약간 늘었다. 남교수(43.9%)보다 여교수(53.5%)의 불안심리가 커졌다. 남교수는 2013년(42.7%)과 비슷했지만 여교수는 2013년(46.5%)보다 불안해하는 경향이 확연하다.

젊은 교수들은 더 불안하다. 신분 불안을 느낀 40대 교수가 2013년 54.7%에서 68.4%로 늘었다. 재직기간이 5~10년 된 교수(67.7%)의 불안감이 가장 컸다. 5년 미만 교수(58.1%)와 11~15년 된 교수(57.1%)가 느끼는 불안감도 그에 못지않았다.

비수도권(45.5%)과 수도권(45.4%)의 차이는 없었다. 심지어 서울지역 교수 가운데도 45.1%가 신분 불안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의약계열 교수(33.3%)를 제외하고는 다 불안하다. 신분 불안을 느낀 경우는 예체능계열 교수가 56.9%로 가장 많았지만 공학계열 교수도 50.0%였다. 인문(47.4%)이나 사회(41.9%)계열보다 오히려 높았다.

 

 

신분 불안을 느낀 이유를 보면 대학 구조조정이 2년 전보다 더 가속화한 현실을 체감할 수 있다. 2013년이나 올해나 신분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학생 수 감소(40.1%)였지만 비율은 1.9% 포인트 늘었다. 고용조건을 신분 불안의 원인으로 댄 비율도 2013년 17.2%에서 올해는 19.9%로 2.7% 포인트 증가했다. 학교와의 갈등(14.6%)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연구부담을 꼽은 비율은 2013년 14.1%에서 올해 10.9%로 약간 줄었다.

직위별로 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정교수는 학생 수 감소(43.4%)가 가장 큰 이유였고, 학교와의 갈등(17.7%), 연구부담(12.6%)이 뒤를 이었다. 부교수도 학생 수 감소(42.0%)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고용조건(18.8%)이 다음으로 많았다. 반면 조교수는 고용조건(44.3%)을 1순위로 꼽은 비율이 가장 많았다. 학생 수 감소 28.6%, 학교와의 갈등 12.9% 순이었다.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나 구조개혁 평가에서 전임교원 확보율과 같은 지표를 맞추기 위해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은 비정년트랙을 많이 뽑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재직기간이 5년 미만인 교수들이 신분 불안의 1순위로 고용조건(55.6%)을 꼽은 비율이 다른 교수보다 월등히 높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재직기간이 5~10년 된 교수들도 신분 불안을 느끼는 1순위는 고용조건(30.7%)이었다. 10년이 넘은 교수들은 학생 수 감소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2명 중 1명은 “다른 대학으로 이동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설문조사에 응한 교수 2명 가운데 1명은 다른 대학으로의 이직을 꿈꾼다. 49.2%가 최근 2년 동안 다른 대학으로 이동하고 싶은 생각을 한 적 있다. 2013년 42.5%보다 늘었다. 비수도권 대학 교수는 절반이 넘는 52.2%가 있다고 답했다. 수도권 대학 교수도 44.4%는 다른 대학으로 옮길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는 70.0%, 40대는 68.4%가 이직을 생각했다. 부교수 63.8%, 조교수 77.7% 역시 마찬가지다.

이직을 생각한 이유는 2013년과 마찬가지로 ‘신분 불안 해소’(22.3%)보다는 ‘보다 나은 연구환경’(32.1%)을 꼽은 교수가 가장 많았다. 2013년에 비해 신분 불안 해소(25.1%)를 꼽은 비율은 낮아졌고, 연구환경(27.0%)을 꼽은 비율은 높아졌다. 재직기간이 4년 이하인 교수(61.1%)일수록, 조교수(52.1%)일수록 신분 불안 해소를 가장 큰 원인으로 생각했다. 비수도권 대학 교수(23.5%)는 수도권 대학 교수(20.0%)보다 신분 불안 해소를 꼽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금 당장의 신분만 불안한 게 아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대학 구조조정이 계속된다면 학문후속세대가 단절돼 학문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75.8%의 교수들이 이런 우려에 동의했다. 직위가 낮을수록 더 우려했다(교수 73.0%, 부교수 79.8%, 조교수 84.1%). 인문학 교수(83.0%)와 예체능계열 교수(81.5%)는 다른 어느 계열보다 위기감이 높았다. 자연계열(75.5%)과 사회계열(74.4%) 교수도 70% 넘게 이런 우려에 동의했고, 공학계열(68.8%) 교수도 70% 가까웠다. 수도권 대학 교수(70.4%)가 비수도권 대학 교수(52.4%)보다 학문후속세대 단절과 학문 생태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큰 점도 눈에 띈다.

한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구조개혁이 학문적 필요성이나 자율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 관계와 경제 논리에 의해 타율적으로 이뤄지면서 대학이 기초학문의 토대 역할을 못하고 있다. 특히 인문, 예술 분야 등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이 분야의 학문후속세대가 거의 단절돼 가고 있다.” 다른 교수는 “학생 수 감소로 촉발된 대학 구조조정이 학과 통폐합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잉여인력이 발생해 퇴직해야 하는 시대에 교수가 되고자 하는 대학원생들까지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교수는 “대학이 오로지 시장원리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대학사회 구성원들 또한 반성 없이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만 급급한 상태다. 철저한 변화와 혁신이 없다면 우리 대학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방대 교수 42%만 소속대학에 자부심 느껴

다시 직업을 선택해도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응답이 74.9%에 이를 만큼 한국의 대학교수는 교수로서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교수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2013년 44.3%에서 31.3%로 떨어졌다. 정교수도 마찬가지다. 49.1%였던 만족도가 34.8%로 내려갔다. 2013년과 달리 보통(44.3%)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조교수도 불만족이라는 응답이 40.4%에서 46.8%로 많아졌다.

현재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비율도 감소했다. 2013년(51.6%)에는 절반이 넘었지만 올해는 47.2%로 떨어졌다. 수도권(55.9%)은 절반 넘는 교수가 자부심을 느끼지만 비수도권 대학 교수는 41.8%만 현재 재직하는 대학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한 교수는 “현재의 지방대는 오직 학생 모집, 취업률, 대학평가에 맞춰 행정이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교수가 자존심이 없는 직업이 돼 버렸다. 영업사업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올해 조사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교육자’(45.5%)라고 생각하는 교수가 ‘연구자’(23.3%)보다 많았다. 전문가 13.8%, 지식인 13.0%였다. 조교수에서 정교수로 직위가 올라갈수록 교육자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반대로 연구자로 인식하는 비율은 낮아졌다. 2013년과 비교해 전문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9.8%에서 4% 포인트 올랐는데, 대체로 나이가 어리거나 직위가 낮아질수록 이런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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