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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장사다.
대학은 장사다.
  • 장유승 서평위원/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고전산문
  • 승인 2015.04.0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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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장유승 서평위원/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고전산문

▲ 장유승 서평위원
세상에는 어느 모로 보나 장사가 분명한데 장사가 아닌 척하는 것들이 있다. 결혼, 종교, 그리고 대학 따위가 그것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이 세 가지 제도는 장사라는 용어 외에는 달리 규정할 길이 없다. 반발을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아마 전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결혼과 종교, 대학은 대체로 최소비용 대비 최대효과를 추구하는 장사에 충실한 듯하다. 그러면서도 가급적 장사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행여 누군가 장사라고 지적하면 발끈한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는 장사라는 사실을 숨겨야만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경제적 속성이 있다. 결혼은 사랑을 말하고 종교는 구원을 말하고 대학은 학문을 말한다. 아무도 돈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아무리 숭고한 명분을 내세워도 돈이 없으면 명분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명분의 존립을 위한 경제적 행위를 장사라고 한다면, 장사를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다만 목적과 수단이 바뀌면 문제가 된다. 목적과 수단이 바뀌면 결혼이 말하는 사랑과 종교가 말하는 구원과 대학이 말하는 학문은 상품을 팔아먹기 위한 수사로 전락한다.

결혼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돈이 많으면 결혼생활이 편리해지기는 하지만, 돈이 없다고 결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한동안 고생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면, 돈이 없어도 결혼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만약 과시욕과 허영심을 채우려고 결혼을 한다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혼이 아니라 장사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신앙을 지키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 쓰러져가는 천막에서도 신앙은 지킬 수 있다. 신앙공동체를 유지하는 것도 신도들이 한푼 두푼 기부한 돈이면 충분하다. 남는 것이 있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이 종교다운 자세다. 신도들의 기부금을 저축해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고 사람들을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에 바쁘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장사다.

대학은 어떨까. 지금 대학들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적립금이 수천억 원씩 쌓여 있고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대학은 돈이 없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돈이 없다는 말은 정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본의 속성은 증식이다. 증식하지 않는 자본은 소멸한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대학이 자본의 속성을 충실히 따라 돈을 쓰기보다 지키고 늘리기에 바쁘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니라 장사다.

지금은 대학이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추세다. 장사를 하지 않으면 존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사와 거리가 멀었던 조선의 유일한 국립대학 成均館은 어떻게 존립할 수 있었을까.

『經國大典』에 따르면 성균관의 설립 목적은 儒學의 교육에 있다. 국가 통치 이념의 심화와 전파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운영을 책임진다. 물론 학생들이 성균관을 다니는 실질적인 이유는 과거 급제를 통한 일신의 영달에 있다. 그럼에도 국가가 성균관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하지 않은 이유는, 과거 제도의 운영 자체가 국가 통치 이념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성균관의 경비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담당하지만, 통상적인 운영 경비만으로는 항상 재정이 부족했다. 부족한 재정은 특별 회계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성균관이 재정 지원을 호소하면 그때마다 국왕은 왕실 재산의 일부를 떼어줬다.

독지가들의 지원도 이어졌다. 고려 때 安裕가 기부한 노비 3백 명은 성균관 재정의 바탕이 됐으며, 이후로도 개인 자격으로 성균관에 토지와 노비를 기부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그마저 원활하지 않으면 대신들이 주머니를 털어 각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늘 재정 부족에 시달렸지만, 학생들에게 돈을 내라고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균관의 존재와 운영 목적이 공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학은 공공성을 상실하고 장사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대학이 벌이는 장사가 지식을 사고파는 장사라면 그나마 다행이리라. 하지만 지금의 대학은 그런 장사를 할 깜냥조차 못 된다. 대학은 돈이 되지 않는 기초 학문을 포기하고, 학생도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를 외면한다. 지금 대학이 하고 있는 장사는 학생에게 등록금을 받고서 졸업장과 성적표를 파는 장사에 불과하다.

대학을 운영하려면 수익이 있어야 하고 학생이 사회에 진출하려면 취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돼서는 곤란하다. 대학이 오로지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학생이 오로지 취업을 목표로 대학을 다닌다면 국가와 사회가 대학과 학생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 장사의 룰에 따라 위험도 수익도 모두 당사자가 떠안도록 내버려 두면 그만이다.

국가와 사회가 대학을 지원하는 이유는 대학이 보호하고 육성하는 학문과 인재가 당장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유무형적 기여를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학이 이러한 믿음에 바탕한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장사라는 오명은 끝내 벗을 수 없을 것이다.

장유승 서평위원/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고전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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