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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비환원율 높이려 1~2월이면 보도블럭 교체
교육비환원율 높이려 1~2월이면 보도블럭 교체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5.03.30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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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조조정 폐해를 고발합니다_ 특성화 한다더니 하루아침에 폐과한 대학도

지방 A전문대학 식품생명공학과는 이 대학이 2001년부터 키우던 특성화 학과다. 교육부 누리사업을 비롯해 노동부, 중소기업청 등 정부 재정지원사업에도 여러 번 선정됐다. 식품생명공학과가 8년 동안 지원받은 국고는 80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A대학은 2010년 돌연 이 학과를 없앴다. 문화전통과의 사정도 비슷하다. 2004년부터 5년 동안 19억원의 국고를 지원받은 특성화 학과지만 2011년 폐과됐다.

A대학의 한 교수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총 170억원이라는 국고 지원금을 받으며 특성화한다고 했던 거의 모든 학과가 재정지원사업이 끝난 이후 폐과됐다”라고 주장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교수는 “학교 문제를 지적하는 교수가 있는 학과는 이유를 불문하고 구조조정 우선 학과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충남의 B전문대학은 2013년 구성원 의견수렴도 없이 ‘학과 구조조정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다. 구조조정 대상 후보군 가운데 신입생 충원율이 80%가 안 되는 학과는 즉시 폐지한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학과 신설이나 통합, 변경, 폐지를 담당하는 이 대학 구조조정위원회는 사실상 총장 뜻에 좌지우지되는 구조다. 교무·입학처장이 위원장을 맡고 나머지 위원도 총장이 지명한다. 영남지역의 C전문대학은 아예 교수마다 학생 모집인원을 할당해 이 기준에 미달하면 학생 1명당 일정금액을 급여에서 삭감하기도 한다.

학생 모집인원 할당해 못 채우면 급여 삭감

학령인구 감소는 내년부터 시작되지만 구조조정은 이미 우리 앞에 다가온 현실이다. 노중기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한신대, 이하 교수노조)은 “사회적으로 괜찮은 대학이라고 하는 곳에서도 학교가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개별 대학의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철도 민영화나 공무원 연금 개정보다 대학 구조조정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큰 데도 대학 내부에서조차 그런 인식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교수노조를 비롯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 교육·시민단체로 구성된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7일 국회에서 정책토론회가 아닌 ‘대학 구조조정 폐해 고발대회’를 연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학의 존폐에만 시선이 몰려있지 구조조정과 학과 통폐합 등으로 구성원들이 받는 고통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 식에서 출발했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을 어떻게 황폐화시키고 있나’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날 고발대회는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고통 받고 있는 교수, 학생, 비정규직 교수, 직원들의 사례와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기조발제에 나선 홍성학 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충북보건과학대)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고등교육 전반에 미치는 폐해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피해 현상을 분명히 직시하고, 고등교육의 본원적 미래 비전을 설정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교수·시민단체로 구성된 대학 구조조정 공대위는 지난 27일 국회에서‘교육부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을 어떻게 황폐화시키고 있나’라는 주제로 대학 구조조정 폐해 고발대회를 열었다. 사진제공=교수노조

구조조정이 대학현장에 미치는 폐해는 정부와 대학당국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과 학과 통폐합을 진행하면서 교수·학생이 당하는 피해만이 아니다. 수도권 대학조차 전임교원 확보율과 강의담당 비율을 높이기 위해 저임금, 단기계약의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을 대거 임용한다. 김병국 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국장에 따르면, 경기·인천지역의 D대학은 해마다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임용을 늘리고 있다. 이 대학은 연구실적 높이기에만 치중하는 ‘연구전담교수’, 강의만 전담하는 ‘강의전담교수’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년트랙을 뽑는다. 서울지역 E대학도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지정된 이후 재정 부담이 적은 비정년트랙 전임교수를 임용해 교원확보율 높이기에 나섰다.

평가지표 맞추기 위해 온갖 꼼수 동원하기도

비정년트랙 양산은 시간강사 해고라는 풍선효과를 낳는다. 호남지역 4년제 사립대인 F대학은 지난해 강의전담교수 48명을 2년 계약, 연봉 3천만원 조건으로 임용한 후 ‘대학영어’, ‘사고와 표현’ 등을 담당하던 시간강사들을 해고했다. 강의전담교수의 책임시수는 원래 12시간이었지만 2015년 1학기 현재 이들이 담당하는 강의시수는 대부분 18시간에 달한다고 이 대학 강사는 전했다. 같은 지역의 G대는 2013년 1학기 800여명이었던 시간강사 수가 2학기에 730여명으로 줄었다. 2014년 1학기에는 다시 50여명을 더 줄였다. 지방 4년제 대학인 H대는 교수 1인당 수업시수를 9시간에서 10.5시간으로 늘리는 등 기존 정년트랙 전임교수의 교육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 앞에서 더 나약한 존재다. 지방 I대는 지난해 1월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직원 42명 가운데 12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직원이 주요 타깃이었다. 지방 J대는 2014년과 2015년 직원을 신규 채용하면서 모두 비정규직으로만 뽑았다. 남아 있는 정규직원에게는 명예퇴직을 종용하고 있다. 지난해 1명이 명예 퇴직했다. 올해도 3명에게 명예 퇴직을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소재 K대는 2년 사이에 100여명의 직원 가운데 20여명이 명예 퇴직했지만 신규 채용을 억제하고 있다. 수도권의 L대도 대학 재정이 어려워 수년에 걸쳐 직원 10%를 내보냈지만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학평가지표를 맞추는 과정에서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도 일어난다. 서울지역 M대학은 1~2월이면 LED 조명을 새로 설치하고 보도블럭을 까는 등의 공사를 집중적으로 벌인다. 지표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회계연도 마감 시점에 맞춰 교육비 환원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장학금 지급률을 높이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린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수도권의 또 다른 4년제 대학은 학생들의 건강 진단 비용을 ‘건강장학금’ 명목으로 지급한 일도 있다.

김병국 국장은 “정부의 정원감축 중심 구조조정은 등록금에 의존하는 대학의 재정과 경영을 어렵게 만들고 있고, 이런 어려움 속에서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되고 구조개혁 평가지표를 달성하려다 보니 대학 현장에서 여러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며 “어느 특정 대학만의 문제라기보다 전국의 대다수 대학이 겪고 있는 대동소이한 문제들이다”라고 지적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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