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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주머니에 담긴 슬픈 사연
며느리주머니에 담긴 슬픈 사연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3.30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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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27. 금낭화

 

▲ 금낭화. 사진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늦은 봄 한적한 산 중턱이나 개울물이 쫄쫄 흐르는 한갓진 골짜기를 지나다가 보면 화사한 錦囊花(비단 錦, 주머니 囊, 꽃 花)가 소복소복 지천으로 널려있는 꽃 대궐을 만난다. 예쁜 금낭화의 맵시가 옛 여인네들이 치마 속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던 두루주머니(염낭)와 비슷하다 해‘며느리 주머니’라 부른다. 그리고 서양 사람들은 그 모양이 심장 흡사한 것이, 붉되 붉은 피를 흘리는 것 같다 해‘피 흘리는 염통(bleeding heart)’이라 부른다.

 

금낭화(Dicentra spectabilis)는 양귀비목, 현호색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40~50㎝ 정도로 훤칠하게 자란다. 보통 겨울 동안 식물체의 지상부가 말라죽고 뿌리만 남아 있다가 다음 해에도 생장을 이어가는 宿根草로, 줄기는 연약한 것이 곧추서며 가지를 친다. 잎은 어긋나고 손바닥 모양이며, 3장의 잔잎(小곸)이 달리는 겹잎(複곸)이다.

학명 중 속명‘Dicentra’는 희랍어로 dis(둘)와 centron(꽃뿔, spur)의 합성어로‘두 개의 꽃뿔’이 있다는 뜻이다. 금낭화의‘꽃뿔’이란 두 장의 겉꽃 끝부분이 위로 젖혀져 수탉의 며느리발톱(距)처럼 툭 튀어나온 부분을 말하고, 속이 비어 있거나 꿀샘이 들어있어‘꿀주머니’라고도 한다. 그리고 종소명‘spectabilis’는 화려하고 장관이다(spectacle)란 뜻으로 天衣無縫한‘붉은비단주머니꽃’의 탐스러움을 이른다.

금낭화의 꽃말은‘당신을 따르겠습니다’이란다. 20~30㎝ 남짓의 활처럼 휘어진 긴 꽃대에 주머니 모양의 꽃들이 많게는 20여개가 줄지어 대롱대롱 매달렸고, 꽃망울은 연한 홍자색의 염통꼴로 그 모양새가 너무 현란하다. 그런데 넘실넘실 꽃들이 주렁주렁 땅바닥을 향해 고개 숙인 것이 마치 언제나 순종하겠다는 겸손한 모습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꽃잎은 4장이 모여서 편평한 심장형의 볼록한 주머니 모양을 한다. 꽃을 자세히 뜯어보면 네 장의 꽃잎 중 2장은 분홍색을 띤 겉꽃(外花皮)이고, 나머지 2장은 겉꽃이 감싼 흰 속꽃(內花皮)인데 그 일부가 아래로 뾰족 튀어나와 혀(舌)처럼 보인다. 겉꽃잎을 양쪽으로 벌려 떼 내고, 속꽃잎을 열어보면 양편에 각각 3개씩, 6개의 수술과 가운데 암술 1개가 혀같이 생긴 곳(속꽃잎)에 들어있다. 열매는 6~7월경 긴 타원형으로 달리고, 한 개의 꼬투리엔 검고 윤기 나는 종자가 여남은 개씩 들었다.

시베리아, 중국 북부, 한국, 일본 등지를 원산지로 보는데, 금낭화 속에 금낭화 1종만 있는 單形(monotypic)인 종자식물(꽃식물, flowering plant)이다. 우리나라에는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분포하고, 산지의 돌무덤이나 계곡에 자생하며, 돌연변이로 꽃 색이 흰 것도 있다 한다. 옛날 옛적부터 집안에 심어온 원예종이라 하겠는데 지리산 자락인 시골 우리 동네에도 집집마다 이 꽃을 심었으니 유례없이‘우리 토종꽃’이 고샅길에까지 벙싯벙싯 자태를 뽐낸다. 심는 꽃들이 거의 다 외래종이라 하는 말이다.

번식법이 그리 어렵지 않다. 7~8월경에 익은 종자를 받아 뿌리는 것이 가장 좋다. 또 늦가을에 괴근(덩이뿌리, tuberous root)을 최소 3~4㎝ 정도의 크기로 잘라 모래에 심으면 다음 해 봄에 싹이 나온다. 또한 배수가 잘 되는 큰 화분에 심어 반그늘에 둬도 되며, 달팽이나 민달팽이가 잎에 달라 드는 수가 있으나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봄에 어린잎을 삶아서 나물이나 나물밥을 해 먹는다고 하는데, 독성이 있으므로 삶아 물에 담가 독물을 빼고 먹어야 한다. 한방에서 식물 전체(全草)를 채취해 말려 消腫(부은 종기나 상처를 치료함) 등의 치료에 쓴다. 사람에 따라 금낭화를 만지면 가벼운 염증이 생기는 수가 있으니 이소퀴놀린(isoquinoline)이라는 알칼로이드(alkaloid) 물질 탓이다. 만진 다음에는 반드시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이 좋다. 나름대로 모든 생물이 자기방어 물질을 갖는 것.제비꽃과 개미가 아름다운 공생을 하듯이 금낭화도 씨앗 퍼뜨림에 개미의 도움을 받는다. 제비꽃은 자가수분, 수정해 씨앗을 맺은 후 껍데기를 툭툭 터트린다. 이때 좁쌀보다 작은 제비꽃 씨앗이 무려 2~5m를 튄다니 참 놀랍다. 그런데 제비꽃 씨앗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씨앗마다 조그마한 하얀 알갱이가 씨 한구석에 붙어 있다. 이것이 개미가 즐겨먹는 지방산과 단백질덩어리인‘엘라이오솜(elaiosome)’이다. 개미는 제비꽃 씨앗을 제집으로 물고가 엘라이오솜만 떼어먹고 집 주위에 버려버리니 이렇게 씨앗을 퍼뜨린다. 그런데 금낭화의 씨에도 제비꽃처럼 달콤한 엘라이오좀(種枕)이 붙어 있어 개미가 물고 가게끔 꾐 장치를 해 놨다. 곤충과 식물의 공생의 일례다.

마지막으로, 금낭화에 붙은‘bleeding heart’란 이름은 일본의 전설로 만든 말이긴 하지만 금낭화의 구조를 속속들이 잘 설명하고 있다. “한 싹싹한 젊은이가 귀여운 한 소녀를 죽도록 사랑하게 됐다. 그는 소녀에게 금낭화의 겉꽃잎 닮은 토끼를 선물했으나 박절하게 거절당한다. 그래서 다음엔 속꽃잎 비슷한 실내화(slipper)를 선물했으나 역시 매정하고 쌀쌀맞게 퇴자를 맞는다. 마지막으로 꽃뿔 닮은 한 쌍의 귀고리를 선물했으나 또다시 물리침을 당한다. 거듭 失戀해 무척 상심한 청년은 꽃 아래 중간에 불쑥 내민 혓바닥꼴의 칼로 심장을 찔러 피를 흘렸다.”

상그레 웃는 저 며느리주머니에 이런 슬프고 쓰라린 사연이 들었다니!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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