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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된 4월을 겹으로 견뎌내는 지적 긴장감 어디에?
역사가 된 4월을 겹으로 견뎌내는 지적 긴장감 어디에?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3.25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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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계간지 리뷰

 

<역사비평> 110호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의 쇄신을 직접 요청
<문화/과학>은 ‘문화연구의 종말’을 특집으로 내걸고 외연 확장 모색
<오늘의 문예비평>은 ‘노동의 정치’ 진단했지만, 더 정치한 논의들 필요
인천의 자부심인 <황해문화>는 ‘도시’와 도시연구의 현단계를 고민


2015년 봄 계간지들은 역사가 된 4월을 이중으로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견뎌낼 수 있는 지적 긴장감도 중요하지만, 苦海 속으로 사라진 생명의 무게에 더더욱 겸허할 수밖에 없는 내적 성찰의 밀도도 더 무거워졌다.

세월호 참사를 정면에서 응시하기
세월호 참사 1년을 정면에서 다룬 계간지는 <역사비평>110호뿐이다. <역사비평>의 전문성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정면 응시가 의외의 것임을 알 수 있지만, 이들이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쇄신’을 겨냥한 것을 보면, 어떤 일관성을 읽을 수 있다. 「‘세월호 정치’의 표층과 심부―인간, 사회, 제도」(박명림), 「세월호 보도 참사와 근본 원인」(김서중), 「4·16 이후 안산 지역의 촛불행동―애도와 민주주의」(정원옥) 세 편의 글이 묶였다. 지난 109호의 ‘진상규명’ 특집에 이어지는 접근이다.


<역사비평>의 이번 세월호 특집은 참사로 드러난 여러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 쇄신의 방향을 찾는데 무게를 실었다. 박명림은 세월호 참사에 나타난 구조적 문제, 정치적 파행을 검토했다. 김서중은 당시 언론 보도의 실상을 사실 미확인, 비윤리, 권력편향, 본질 희석, 누락·축소로 나눠 살펴보고 그 근본 원인을 이명박 정부 이래 강화된 권력 우호적인 언론 구조에서 찾았다. 정원옥은 4·16 이후 안산 지역의 촛불집회를 관찰하고 그 참여자를 인터뷰해 안산 지역이 우리 사회에 제기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한다. 정병욱 편집주간은 “그에 따르면 이 지역 촛불행동은 피해자만이 아니라 참여자 자신을 위한 ‘애도의 정치’이며, 무엇보다 이웃과 공동체의 가치회복이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조금 우회적이지만 <문학동네> 82호는 ‘위험사회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을 특집으로 조명했다. 「21세기 한국의 ‘움츠러든’ 십대」(전상진), 「아이들은 삶을 배우고 싶은데, 학교는 학교만 얘기한다」(이승욱), 「풀의 경계」(이영훈), 「새해가 오게 하려면―지금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의 윤리적 태도에 대한 성찰」(양재훈), 「마이 리얼리티 베이비」(금정연)등을 묶었다. 필자들도 대부분 젊은 신예로 꾸렸다.


<문화/과학>81호는 특집으로 「문화연구의 종말」을 앞세웠다. 문화연구의 종말이라니? 이 도발적인 발언의 근저에는 ‘외면으로 인한 위기’라는 긴장감이 도사려있다. 이런 긴장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경제 개입과 원조를 시발점으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200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의 잇따른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위축 속에서 문화와 정치가 보수화되고, 대중들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지며, 문화의 비판적 현실개입이 위축되고, 대학의 지식생산도 신자유주의 경제지배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종속되면서 문화연구는 문화자본을 찬양하는 문화경제주의와, 문화적 자율적 심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치경제학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듯 보인다”라는 이윤종 편집위원의 말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연구의 종말과 생성: 비판이론과 담론의 재구성을 위하여1」(이동연), 「이론적 실천과 현실 개입의 추이를 통해 본 한국 문화연구의 궤적」(김성일), 「학제 간 연구를 통한 ‘문화연구자’ 양성 기획의 현주소」(정원옥), 「급진적 문화연구의 기획은 실패했는가?: 제도화된 위기와 제도의 위기 사이에서」(최진석) 등으로 꾸며진 <문화/과학>의 ‘문화연구의 종말’ 특집은, 각 논문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국 문화연구의 현주소에 대한 섬세한 점검이자 復棋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목소리가 ‘문화연구의 폐기’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문화연구의 비판적 현실개입의 외연 확장을 위한 발언으로 읽혀질 때, 이들 논의가 한층 선명해진다는 점이다.


특집 「노동의 종언에서 노동의 정치로」를 들고 나온 곳은 부산의 문화적 자긍심을 바탕에 둔 <오늘의 문예비평> 96호다. 1970년 분신한 전태일의 유서, 2003년 농성 중이던 크레인에 목을 맨 김주익의 유서, 그리고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사람들이 ‘아직도 죽음으로’ 저항해야만 하는 나라에서 <오늘의 문예비평>은 우리시대 ‘노동’을 화두로 내걸었다. 「산업노동자의 분열화 양상과 노동의 가치회복을 위한 사유들」(이성철), 「호로 루덴스를 변호함」(손남훈), 「정치적인 것의 만회」(박형준) 등을 모았는데, ‘노동의 정치’를 좀 더 파고들어가는 논의들이 덧붙여졌다면 더 좋았을 특집이다. <창작과 비평> 통권 167호는 특집으로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기」를 들고 나왔다.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의 중국 ‘사회주의’, 수사인가 가능성인가」(이남주), 「자본주의 위기 이후, 무엇이 오는가」(백승욱), 「이매뉴얼 월러스틴과의 대담」(이강국) 세 편의 글이 이에 해당한다. 월러스틴과의 대담은 아마도 그의 책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에 담긴 질문 때문인 것으로 비쳐진다. 이남주는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 수행이라는 틀로 현대 중국 역사를 읽어낸다. 백승욱은 최근 대두되는 ‘자본주의 위기’ 담론의 주요 쟁점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면서 위기와 이행을 적절히 사유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위기’를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와 구분하고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그것의 역사·제도적 조건을 구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월러스틴과 대담한 이강국은 현 상황을 체제 내의 변화와 혁신으로 무마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로 일관되게 정의하는 월러스틴의 입장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자본주의 이후 또는 도시의 함의
세월호, 문화연구, 노동의 정치, 자본주의 위기 대신 인천의 문화적 푯대인 <황해문화> 86호가 선택한 특집은 「‘삶의 공간’ 도시: 개발과 저항, 죽음과 재생의 드라마」다. 백원담 편집위원은 “<황해문화>는 2015년의 시작을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살아가는 도시적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자본과 도시의 관계를 문제 삼기로 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는 최근 학계에서 가장 ‘핫한’ 동네 중 하나가 도시연구 분야인 것과 무관치 않은 기획이다. 그래서 <황해문화>의 특집기획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압축적 근대화의 궤적을 내재화한 장본인들답게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는 우리 학계 도시연구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탈산업 자본주의의 발전과 도시공간의 재편」(최병두), 「신개발주의와 젠트리피케이션」(김수아), 「계급과 도시재생의 문화지리」(박영균), 「‘도시인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도시인문학 담론의 계보학」(허경), 「새로운 삶의 경계와 주체 형성―사회변역운동의 공간적·문화적 전환」(이상봉) 등을 수록했다. 이외에도 최근 ‘방산비리’가 뜨거운 이슈가 된 것을 놓치지 않고 기획 「대한민국 군대는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을까」를 마련, 방위산업 비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군사주의 문제 등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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