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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은 왜 '파격 실험' 불신했을까?
교수들은 왜 '파격 실험' 불신했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3.19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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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제 폐지'로 내홍 앓는 중앙대

2008년 두산그룹이 학교법인으로 참여하면서 중앙대의 변화는 더욱 눈에 띄게, 그리고 가파르게 진행됐다. 2011년‘18개 단과대학 77개 학부(과)’에서‘11개 단과대학 47개 학부(과)’로 개편했으며, 2013년에는 학생들의 전공선택 비율이 낮은 인문사회계열 4개 학과를 폐지했다. 그러나 중앙대의 파격 실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 26일‘학과제 폐지’라는‘한국 대학사상 초유’의 방안을 내놓았다.

중앙대가 내놓은‘중앙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하 계획안)의 골자는 복수전공확대와 모집단위 광역화 두 가지다. 이를 바탕으로 2016학년도부터 학과제를 폐지하고 단과대별로 신입생을 모집하겠다는 게 대학측의 복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내용이다. △사회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학사구조 구축 △학문적 다양성 증진과 학생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시스템 구성 △학문단위 구조 변화를 통한 대학 특성화 강화. 여기서 눈에 띄는 게 바로‘유연한 학사구조 구축’이다.

중앙대가 내놓은 계획안에는 유연한 학사구조구축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기존 학과별 입학정원제 하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는 데 제약이 있으며 또한 학과 간 높은 장벽으로 인해 미래 유망한 신규 및 융·복합학문단위의 신설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단일 전공 이수형 교육 방식의 틀을 깨고 인문학, 사회과학, 기초과학, 공학, SW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포괄적으로 섭렵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체계와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대학측은 이를 위해“사회적 수요와 대학 교육의 미스매치 현상을 타개하고 융복합전공의 신설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계열별 총 정원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2016학년도 입시에서는‘대학 단위로 모집’하고 이를 고등교육과정의 변화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용구 총장은“사회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학사구조를 구축하고 학문적 다양성과 학생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시스템을 구성하고자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추진하게 됐다”라고 계획안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대학 단위’모집는 기존 학과제를 무력화할 수밖에 없다. 학과 중심의 현 대학구조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방안이다. 기업이 대학운영에 참여한 이후 피로감이 상대적으로 누적돼 왔던 중앙대 교수들은 학과 미래와 신분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이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신경이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중앙대 교수 공동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만들어지고, 전체 교수들을 대상으로 대학측의‘계획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것도 이‘파격 실험’에 도사린 ‘불신’의 강도 때문이었다.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비공개적인 방식, ‘밀실논의’로 일부 보직자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비판도 일었다. 전직 대학원장, 단과대학장 등도 나서서 총장에게 계획안 재고를 직접 요청까지 했다.

구조조정 물살에 휩쓸린 한국 대학들이 중앙대가 내놓은 이 카드를 주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학내 정치 지형의 함수관계가 작용한다. 생존을 모색할 수 있는 유효한‘벤치마킹’방안이 될지, 아니면 결국 기업 입김이 강한 대학 특성에서 비롯된 졸속 해프닝으로 정리될지 대학들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중앙대 비대위는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진행했고, ‘반대 84.6%’라는 예상 밖 결과를 이끌어냈다.

김누리 비대위 위원장(독어독문학과)과 김병기 기획처장의 말을 들어봤다.

■ 김누리 교수대표 비대위원장

△ 계획안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많았다.
“그렇다. 사실 찬반 투표 전에는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직접적인 학과제 폐지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인문대, 자연대, 사회과학대 교수를 합쳐도 270여 명(2014년 대학알리미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513명의 교수가‘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렇다면 결국 타 단과대 교수들도 이번 계획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단 말 아닌가. 투표 결과 반대표가 50%이하였다면 학교측 의견을 수용하려고 했다. 대학측의 계획안은 폐기됐다고 선언한다.”

△ 2011년, 2013년에 이어 다시 올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이 나왔는데.
“중앙대의 구조조정 방향은 일관된다. ‘대학의 기업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계획안은 학과제 폐지를 골자로 했다. 이렇게까지 학과를 폐지하는 일은 해방 이후 한국 대학 역사에서 초유의 일이다. 최근 교육부가 밝힌‘취업중심의 대학개편론’에 호응하는 대학의 전위적 조치인데, 이는 대학을 취업학원으로 더 빠르게 황폐화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 대학측에서는 2014년 8월부터 추진경과를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왔다고 한다.
“무슨 소린가. 계획안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5일 밤에 기자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내용이 너무 충격적인 거라 확인이 필요하다고 걸려온 전화였다. 그때 계획안에 대해 알았다. 교수들에게 알렸다고 해도 그것은 학과 단위 평가에 관한 것일 뿐이다. 그것과 학과 폐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 앞으로 계획은.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방식이 문제다. 원점에서 다시 새로운 논의를 해야 한다. 당연히 아래로부터의 민주적인 의견 수렴을 통해 안을 만들고, 이를 심의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측이 기존 계획안을 밀어붙인다면, 총장 불신임 투표를 진행하고 법적 조치도 모색할 계획이다. 학교 혼란에 대해서는 총장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 김병기 중앙대 기획처장

△ 계획안에 대해 교수들의 반대 여론이 높다.
“이번 찬반 투표는 반대하는 교수님들이 주도했다. 모수 산정에 문제가 있지만 거기에 연연하기보다 ‘반대 의견 수렴 잘해 달라’라는 뜻으로 듣겠다. 디테일을 더 잘 다듬겠다.”

△ 그 말은 반대 여론을‘참고’하겠다는 뜻인가.
“기본 원칙 안에서 구체적 실행은 결국 교수님들이 하셔야 하지 않나. 소통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솔직히 시인한다. 그러나 핵심적인 원칙 즉 복수전공제 확대와 모집단위 광역화라는 기본 구조는 유지하고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뜻이다.”

△ 2011년, 2013년에도 상당한 정도의 구조조정이 시도됐다. 그런 가운데 또 계획안이 나왔다.
“설명이 필요하다. 당시에는 학령인구 감소를 반영한 교육부 대학정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다. 지금의 계획안은 학령인구 감소라는 주요 변수를 전제했다. 공학계열 정원이 늘 수 있지만, 그렇다고 기초과학, 인문학을 없애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증유의 학령인구 감소라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좀 더 유연한 학사구조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들의 고민이고,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게 이번 계획안이다.”

△ 그렇더라도 84.6%의 교수들이 반대하는 계획안을 고수하기엔 부담스러울 것 같다.
“2008년부터 계속된 강한 압박에 많은 교수님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계실 것이다. 등록금 동결, 재단 지원 축소 등 보상체계가 효율적으로 확대되지 못한 것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누적된 피로감과 겹쳐 계획안 비판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비대위가 주장하듯‘은밀하게’계획안을 진행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올해 1월 학과단위 통해 두 가지 기본 입장을 발표했다. 학과장을 통해 학과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것으로 기대했다. 계속 교수님들과 소통하겠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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