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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하나 허투루 버릴 게 없구나!
무엇 하나 허투루 버릴 게 없구나!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생물학
  • 승인 2015.03.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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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26. 연근

▲ 사진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연꽃(蓮─, Indian lotus)은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水草로 인도가 원산지일 것으로 추정한다. 진흙연못에서 저절로 자라고, 논에서 일부러 재배하기도 하는 연꽃(Nelumbo nucifera)의 줄기는 뿌리처럼 땅속으로 뻗어서 자라나는 땅속줄기로 이를 蓮根(lotus root)이라 한다. 땅속줄기를 뿌리줄기 또는 根莖(rhizome)이라 부르며, 마디마다 뿌리가 돋고, 지상으로 잎을 뻗어낸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먹는 연근은 연근이라기보다 ‘蓮莖(lotus stem)’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하겠다. 연근은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인들이 즐겨 먹는다.


중국 북송시대의 유학자 周敦는 「愛蓮說」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서 소담스럽고 깨끗한 꽃을 피워 속세에 물들지 않는 ‘꽃 중의 군자’라고 읊었다. “내가 오직 연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은 곧고,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음이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깨끗이 우뚝 서 있는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예부터 연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여겨 문필가들이 즐거이 詩題로 삼았다. ‘蓮’은 ‘憐’ 또는 ‘戀’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사무치는 그리움이나 살가운 사랑을 상징했다. 또 종자가 많이 달리기에 多産의 징표로 삼았으며, 불교에서는 신성한 연꽃이 자라는 연못을 佛土라 여겨 절 안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잎은 연근에서 나오고, 둥그런 것이 40㎝ 안팎으로 1~2m로 자라는 잎자루(葉柄) 끝에 달린다. 잎자루는 겉에 가시가 잔뜩 돋치고, 안에는 구멍이 있으며, 뿌리줄기와 소통한다. 또 연근을 가로로 잘라보면 줄잡아 가운데에 한두 개의 작은 구멍과 둘레에 일고여덟 개가 넘는 큰 구멍이 고루고루 둘러가며 뚫려있다. 물이나 진흙 속에는 산소가 모자라기 쉽다. 그래서 수생식물의 줄기에는 공기를 채워두는 通氣組織이 발달하니 그물 또는 관 모양이다.


통기조직(연근의 구멍)은 물이 닿지 않는 잎사귀 앞면 표피(보통 식물은 뒷면에 많음)의 기공(stoma, 복수는 stomata)을 통해 바깥 공기와 연결된다. 또 이것은 호흡의 결과 생긴 이산화탄소나 기공의 산소 유통에 도움을 주며, 식물체를 물 위에 뜨게 하는 역할도 한다. 좋은 예로, 물옥잠화의 줄기는 풍선처럼 부풀어서 공기를 두고두고 가득 채울 뿐더러 식물체를 떠오르게도 하고, 논에 자라는 벼의 줄기도 안이 비어 있어 짚으로 새끼줄을 짤 수 있다.


연꽃은 7∼8월에 홍색 또는 백색으로 피고, 꽃줄기 끝에 1개씩 달리며, 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꼴(倒卵形)이고, 수술은 여러 개다. 꽃받침은 크고 편평한 것이 지름 10㎝ 정도이고, 종자는 堅果(nut)로 꽃받침 구멍에 들었다. 연 열매(연밥, lotus seed)는 물뿌리개(watering can) 머리를 닮았고, 그것의 살수구(撒水口) 자리에 스무나문 개 넘게 들었으며, 연밥은 2천여 년 전의 것이 싹을 틔운 기록이 있다 한다. 그리고 연의 꽃은 사람이나 정온동물처럼 온도를 조절하는 힘이 있어서 공기가 10℃ 일 때 연꽃 온도는 무려 30~35℃까지 올라서 냉혈동물인 곤충들을 마구 끌어드린다.


연근은 큰 바나나나 소시지를 닮았고, 보통 길이 10~20㎝에 지름 6~10㎝쯤 되고, 아삭아삭 씹히는 것이 食感이 좋다. 연근은 삶거나 튀김, 초절임을 하는데, 삶을 때 식초를 조금 넣으면 빛깔이 희게 갈무리된다고 한다. 연근을 썰어두면 공기에 닿아 갈색으로 변하며(褐變), 이때 철분이 닿으면 갈변이 더욱 심하니 쇠칼이나 쇠 냄비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연근을 날걸로 먹으면 흡충(디스토마)의 일종인 肥大吸蟲(Fasciolopsis buski)에 감염될 수 있다 하니 삼가는 것이 옳다.

또 연잎으로 밥을 싸고, 잎과 꽃잎을 꾸둑꾸둑 말려 연잎차로 쓰며, 수술을 말려 차를 만드니 蓮花茶다. 蓮子肉은 연밥껍질(種皮)을 벗겨 말린 것을 이르는데 일본에서는 蓮肉, 중국에서는 蓮子라 해 식용한다. 또 연밥을 때로는 날로 먹기도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수프(soup)나 스튜(stew)에 넣는다.


타닌이 든 연근과 연밥은 부인병에 쓰고, 잎은 지혈제로 사용하며, 민간에서 오줌싸개 치료에도 이용한다. 연근 특유의 끈적임은 뮤신(mucin) 탓으로 위 점막을 보호해주고, 연근 속에 있는 비타민C,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성분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 연은 무엇 하나도 허투루 버릴 게 없구나.


물은 연잎을 적시지 않고 연잎은 물을 깨뜨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껏 연잎에 옥구슬 물방울이 방울방울 또르르 구르는 것은 단순히 잎의 밀랍(wax) 때문이라 여겼으나 실은 그것 말고도 다른 까닭이 있다. 물방울은 높은 표면장력 탓에 표면적을 줄이려고 언제나 똥그란 방울(구형)을 이룬다.
또 반들반들하고 매끄럽게 보이는 연잎 표면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높이 10~20㎛(1마이크로미터는 1/1000㎜), 너비 10~15㎛인 복잡한 나노구조(nanostructure)를 한다. 이런 울퉁불퉁한 돌기(hump)가 촘촘히 나 있어 물이 쉽사리 묻지 못하니 이를 ‘연잎효과(lotus effect)’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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