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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때 먼저 떠나 미안 … 세계문학선집 작업 도전하겠다”
“어려운 때 먼저 떠나 미안 … 세계문학선집 작업 도전하겠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3.03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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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맞춰 ‘저작선집’ 남기고 강단 떠난 정정호 중앙대 교수


이제 홀가분하게 떠나는 마당에서,이론보다는 텍스트 원천에 눈을 돌리고 싶다.
뭘 할 계획이냐고요?세계문학앤솔로지, 그거 도전하고 싶다.

아카데미의 신학기에는 두 가지 광경이 겹쳐지게 마련이다. 하나는 새로 입직한 신임 교수들의 행보. 다른 하나는 다 정리하고 연구실마저 빼주고 떠나는 퇴임 교수들의 떠나가는 뒷모습이다. 이형기 시인은 「낙화」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썼다. 그렇다. 퇴임 교수가 아름다운 것은,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홍익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강단에 선 정정호 교수는 중앙대에서 35여 년 동안 영미비평이론과 그 실제를 가르치다 지난 2월 퇴임했다. 서울대를 나와 미국 위스컨신대(밀워키)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영어영문학회장(제29대), 한국비교문학회장(제22대), 한국비평이론학회장(제4대), 국제비교문학회(ICIA) 부회장(2007~2010) 등을 지냈다. 특히 서울 세계비교문학대회를 유치, 진행한 공이 크다.


그간 30여 권의 저서·역서를 내놓았지만 단 한번도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았던 그가 지난달 25일 몸담았던 중앙대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물론 그와 함께 일궈온 ‘중앙이론연구회’ 이름으로 마련한 자리였다. 정 교수는 이 자리에 4권의 ‘저작선집’을 상재했다. 출판기념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24일, 연구실을 모두 비워버린 그를 중앙대 인문대학 한 곳에서 만났다.


“지금껏 한 번도 출판기념회를 한 적이 없었는데, 괜한 일을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그간의 저술활동을 정리하고 떠난다는 의미에서 지금까지 쓴 글들 가운데 솎아내 대주제별로 4권의 저작선집을 엮었다.” 1권은 『이론의 문화정치학과 비판적 페다고지』, 2권은 『영미문학비평론』, 3권은 『비교세계문학론』, 4권은 『재난의 시대를 위한 희망의 인문학』(푸른사상 刊)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작선집 4권은 그의 평생 글쓰기가 대략 정리된, 면밀한 기록의 복각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정 교수는 1980년대 영미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수용 한 가운데 있었던 영문학자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합 핫산의 문화 및 문학이론』(종로서적, 1985년)을 번역, 이후 문학권내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지대를 제공한 것도 그의 공이다. 당시 그에게 쏟아졌던 비판의 화살은, 이론 수입상, 지식 오퍼상 등 다양한 형태의 부정적 파편을 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당시는 좀 서운했다. 서구의 이론을 통해 서구 근대를 비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진행한 작업에 ‘이론장사’라는 딱지를 붙였으니 답답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내 생각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즉, 근대성 자체에 대한 그네들의 문제제기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좀 더 서구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다고 봤다. 한국사회의 지적 갈증 해소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가. 그는 이렇게 자신의 학문 전 생애를 요약했다. “Everything! Nothing! Something!” 듣고 보니 재밌는 표현이었다. 걸어온 길을 돌아봤더니 무서울 게 없는 40대까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과다했지만, 퇴임을 앞둔 60대에 보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그래서 이제 퇴임과 함께 남은 인생은 뭔가 의미 있는 것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절절이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그는 의외의 말을 들려줬다. 그의 이력을 보면 ‘이론과 비평’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이론보다 텍스트 원천에 주목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우리의 주체적 이론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이론은 늘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갱신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렇게 수용한 이론에 일종의 ‘저항성’이 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이러한 내 생각을 ‘너무 나이브하다’라고 주변에서 지적했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이론 자체에 대한 짜증이랄까, 좌절 같은 걸 느꼈다. 이제 홀가분하게 떠나는 마당에서, 이론보다는 텍스트 원천에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그는 이론과 비평을 오래 연구하고 가르쳤으니, 이제부터는 ‘세계문학앤솔로지’를 만들어보겠노라고 말했다. 영미 문학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의식의 발동을 경험했던 정 교수는 많은 이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문학선집’을 이미 머릿속에 그려가고 있었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다양한 언어권의 작품까지 선별해서 한국판 ‘노턴 앤솔로지’ 같은 걸 만들고 싶다. 작품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누비며, 나와 우리,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에게 40년 영문학 연구 인생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정 교수는 영문학 연구가 ‘정체성 찾기’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어떤 뜻일까. “처음 영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할 때는 한국적인 영문학 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를 해올수록 한계를 더 느꼈다. 결국 생각을 바꾸게 됐다. 어떤 생각이냐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차이’로서의 영문학 연구라는 데 이르렀다. 즉, 서구의 타자로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됐다.” 이 때문에 정 교수는 어떤 외국(문)학이든, 한국학과 반드시 엮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다지게 됐다. 그가 한국문학의 다양한 지평에 자주 눈을 돌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정 교수는 越南 2세다. 인천에 터를 잡고 성장한 것은, 그의 말대로 다양한 글쓰기에 관심을 돌릴 수 있는 근원적 특질을 환기한다. 그는 이것을 ‘知의 유목민적 특성’이라고 명명한다. 경계의 도시 인천이 그에게 이런 생래적 기질을 부여했던 것이다. 4권의 저작선집을 이루는 다양한 주제들, 예컨대 비평이론,
탈근대론, 비교문학, 환경생태론, 문화연구 등은 그의 유목적인 지적 관심사가 그려낸 分光이다. 그가 전신으로 마주쳤던 이론 수용은 이후, 성분 조사를 끝내고 살과 피처럼 알맞게 학계로 흡수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의 공로일 수 있다.


그는 이제 ‘떠난’ 교수다. 섭섭할 텐데 내색을 않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시원해하는 지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후배 교수들이 그러더라. 좋은 때 떠난다고.” 이 말 속에는 많은 의미들이 뒤섞여 있다. 대기업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분명 좋은 성과를 냈다고 인정하는 정 교수는 조금 신중하게 덧붙였다. “지금 구조조정 같은 대학, 학과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아쉬운 것은, 대학 변화는 장기적 과제인데 이것을 군사작전처럼 단시간에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수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진정한 변화를 모색한다면, 이를 인정하지 않을 교수들이 있겠나. 아무튼, 어려운 시절을 살아야 하는 후배 교수들을 뒤에 남겨놓고 떠나게 돼 미안하다.”
1980년대 영미 비평이론 수용과 논쟁의 최전선에 섰던 정정호 교수는 털털한 웃음 하나 입가에 걸치고 그렇게 강단을 떠났다.

글·사진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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