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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 타는 세대
'썸' 타는 세대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5.03.0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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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나훈아가 부르던 유행가 가사처럼 70년대 사랑은 슬펐다. 고향을 떠나오며 이별했고,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고, 출세를 위해 배신했다. 기다림에 지쳐 눈물짓고, 떠난 님 못 잊어져서 눈물짓고, 배신이 억울해서 눈물짓고. 그래도 사랑하는 순간만은 뜨거웠다. 남진의 노래처럼, “이 생명 다 받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받쳐서 믿고 또 믿었기”때문이다.

지금도 그럴까. 요즘 젊은이들은 썸만 탄다는 말이 있다. 썸만 탄다고? 무슨 뜻일까. 학생들 때문에 알게된 노래 가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소유·정기고의「썸」이다.“ 요즘 따라 내 꺼 인 듯, 내꺼 아닌, 내 꺼같은 너, 니 꺼인 듯, 니 꺼 아닌, 니 꺼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여기에 마마무의 「Mr. 애매모호」까지 곁들인다면, 썸 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해진다. “사람 간 보지 말고 빨리 와요 내게로!”

요즘 젊은이들도 이별하고 배신하는 사랑의 슬픔을 알 것이다. 그리고 첫 눈에 반해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결혼하고, 결혼이 평생의 반려로 이어지는‘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같다. 무언가, 즉 something이 있기에 교제가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 무언가가 무엇인지 확신이 없다. 그래서 사랑의 고백이 없는 썸 타기가 지속된다.

사실 요즘 젊은이들이 사랑이란 감정에만 자기 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만나보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려는지 인생 자체가 모호한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됐는지 그 이유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초중고를 보내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공통된 목표가 강제된다. 이른바 명문대학 나와서, 누구나 선망하는 인기 직종에 종사하는 것. 그래서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해 본 적도 없고, 무엇을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본 적도 없다. 이미 목표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이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화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 이로 인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안정된 인생 경로라는 것이 없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살아왔지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사랑에서든 삶에서 든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이미 정해진 목표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해 보지 않았다면, 이 정해진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해진 목표조차 달성이 불투명해진다면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남는 것은 자아상실이고 애매모호한 삶이 아닐까.

모던의 이상은 자율성이었고, 포스트모던의 이상은 차이의 발산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젊은이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수행하고 있을까. 더구나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신의 차이를 실현하고 있을까. 아마도 오늘날 젊은이들은 자율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강요받고, 차이를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은 그 어느 것도 보장하고 있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젊은이들은 썸만 타고 있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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