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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함께 한 음식연구의 결실 … 책의 무게를 드러내다
30년 함께 한 음식연구의 결실 … 책의 무게를 드러내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2.17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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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 『한국음식문화』 윤서석 외 6인 지음|교문사|436쪽|30,000원

지난 1월 27일 서울 양재동 L타워, 오전 11시 작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한국음식문화』 출판기념회였다. 여느 출판기념회와 비슷한 풍경이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저자’였다. 출간 인사를 전한 올해 94세의 윤서석 중앙대 명예교수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최민숙 이화여대 교수(독문학)는 “94세이신 분이 얼마나 곱고 정정하신지 놀랐다. 말씀도 명민하게 잘 전달해주셨다. 출판부장을 맡고 있던 2008년에 그분의 책 『한국의 풍속: 잔치』를 한글과 영문본으로 출간한 적이 있다. 그때 이미 80세 후반이셨는데도 조선시대의 음식문화에 관한 책을 현대어로 옮겨서 펴내고자 하셨다. 퇴임 후에도 정정하게 뜻있는 연구 활동을 계속하셔서 이번 책을 출간하셨다. 교수들의 귀감이 될 만한 분이라는 감동을 받았다”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94세의 윤서석 교수와 그의 동료들
그렇다. 책이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두 가지 답이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책 스스로의 무게, 다른 하나는 저자의 무게 때문이라고. 『한국음식문화』는 바로 후자, 즉 공동저자의 한 사람인 ‘윤서석’ 교수의 존재감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우리 음식에 내재하는 관행과 규범은 그 시대의 환경에 순응하면서도 나름대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일구고 있는 분명한 문화적 가치임을 다시금 인식했다”라고 말하는 윤 교수의 모습은 94세의 나이가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젊은 연구자의 맥박마저 엿보인다. 이 책의 집필진(윤서석 중앙대 명예교수, 윤숙경 안동대 명예교수, 조후종 전 명지대 교수, 이효지 한양대 명예교수, 안명수 성신여대 명예교수, 윤덕인 가톨릭관동대 교수, 임희수 장안대학 교수)은 1988년 3월 한국의 음식문화를 이웃인 중국과 일본의 음식문화와 비교 연구하려는 뜻으로 결성한 ‘한·중·일 음식문화연구회’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다.


이들은 공부할 책을 정하고 각자 읽어올 쪽수를 나눠 매달 첫 토요일에 모여 서로 공부해 온 내용을 발표하면서 공동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게 29년이나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공부한 내용을 소개하는 뜻에서 그간 공동 번역서 몇 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1993년 중국 후위대 가사협이 지은 『제민요술』 중 식품조리·가공편을 연구해 『제민요술―식품조리·가공편 연구』를 내놨고, 이어서 『중국음식문화사』, 『일본식생활사』, 『벼, 잡곡, 참깨 전파의 길』, 『문화면류학의 첫걸음』 등을 출간했다. 여기까지는 ‘공동 번역’ 작업이었다. 『한국음식문화』는 그래서 이들에겐 첫 공동 저술이 된다.


윤 교수를 비롯한 『한국음식문화』의 저자들은 2년 동안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한국음식사 연구에 한걸음 진전을 이루고자 했지만 의도한 만큼 한국 음식의 여러 범주에 배어 있는 일관성과 다양성을 찾아내지는 못한 것 같다”라고 그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의 무게가 경감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5천 년 한국의 떡 문화’를 조명한 윤서석 교수의 글 「한국인의 삶과 지혜가 깃든 떡」 부분을 보자. 한반도에 벼농사가 도입되면서 한국 떡 문화가 발전했다고 보는 윤 교수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목은집』, 『향약채취월령』, 『향약집성방』, 『동의보감』, 『증보산림경제』 등의 사료를 뒤져 한국 떡 문화의 발전 경로를 진단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윤 교수가 구성한 17~20세기 조리서에 등장하는 떡의 종류. 찐 떡, 빚어 찐 떡, 친 떡 쳐서 빚은 떡, 지진 떡, 삶아 건진 떡으로 크게 분류하고 이를 『음식디미방』(1598~1680), 『증보산림경제』(1766), 『규합총서』(1809), 『시의전서』(1800년대 말), 『우리음식』(1940) 등에 나온 떡으로 다시 세분했다.

▲ 윤서석 명예교수 등 저자들은 떡, 술, 김치, 고기음식 등 다양한 한국음식문화를 조명하고, 그것의 현대화 방안까지를 제시했다. 사진은 절편, 안동소주, 서울나박김치

전통을 현대의 지평에서 심화하기
단순히 사료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떡을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떡류 분야 개업 연도 및 규모 분포 현황’, ‘떡류 분야 매출 규모 및 경영인 연령 분포 현황’과 같은 통계자료를 통해 떡 문화의 현대화와 산업화에도 관심을 뒀기 때문에, 『한국음식문화』는 전통과 현재가 서로 복합되고 있는 새로운 지평을 겨냥할 수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윤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조선 전기의 과학 발전 환경에서 한국 떡 문화의 과학성, 합리성을 성립했고 후기의 예절 존중 환경은 떡 문화 전통의 격조를 정립하게 했다. 이제 현대사회에서 문화의 변동이 빈번하지만 그래도 한국음식의 현대화, 산업화에 전통음식에 내재하는 타당성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창조의 근저가 돼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국음식문화』는 윤서석 교수의 글을 비롯, 「맛과 멋에 취하는 술」(윤숙경), 「매끼 만나는 밥」(안명수), 「우리 삶의 정이 깃든 김치」(이효지), 「생기 돋우는 채소음식」(조후종), 「조리법이 다양한 고기음식」(임희수), 「담백한 맛의 생선음식」(윤덕인)등을 수록했다.


물론 윤서석 교수는 한국음식 본체의 맛을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시절이 달라져도 맛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시판 간장은 종류도 많고 품질도 크게 상승했지만 한국음식 본체의 맛을 복원하려면 콩만으로 가공한 간장이 시판돼야 한다. 우리 입맛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어찌됐든 밀 간장 맛에 길들어 콩 간장 맛을 잊어버렸다. 콩만으로 가공한 간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국음식 본체를 보존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음식문화』는 깊은 장맛 같은 책이면서 동시에 ‘세계 식품점의 진열장’에 오를 수 있는 한국음식의 진정한 세계화를 갈망하는 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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