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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리더십이란 특성이 만든 ‘금남의 벽’… 변화의 바람 불까?
여성 리더십이란 특성이 만든 ‘금남의 벽’… 변화의 바람 불까?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5.02.16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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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女大에 남성 총장이 드문 이유

이화여대는 지난해 제15대 총장 선출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초의 남성총장이 선출되지 않을까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이화여대는 총장 자격을 ‘여성에 한정함’이라는 규정을 뒀으나 2013년 12월 이사회를 열고 ‘여성에 한정하지 않음’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화여대 금남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이화여대 출신 최경희 교수가 제15대 총장으로 선출되면서 여성총장의 전통은 그대로 유지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4년제 종합여대는 광주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7개교다. 이중 덕성여대와 동덕여대를 제외한 5개의 여대에서 여성총장이 재임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여대의 역사와 전통이 깊은 서울여대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에서 여성총장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화여대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총장 규정자체를 여성에 한정해 왔다. 이러한 영향으로 제1대 총장부터 현재 최경희 제15대 총장까지 모두 여성총장이 바톤을 이었다. 숙명여대는 제2대 총장부터 제9대 총장까지는 남성총장이었으나, 1981년 김옥렬 제10~11대 총장부터 현재 황선혜 제18대 총장까지 여성총장이 잇따라 선출됐다. 여건종 숙명여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1980년대 총장 직선제 열풍이 불면서 동문출신인 여성총장이 나오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직선제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높았던 남성 외부 인사를 데려왔지만 직선제 도입으로 인해 학교 발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동문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여대에 남성 총장이 드문 이유는 뭘까. 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의 이면에는 어떤 무의식이 작동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여대가 대표적인 여성리더 양성 교육기관이라는 상징성 때문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철학과)의 지적처럼 “여성총장은 여성 리더와 여성 전문인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은 여성에게 배움의 기회가 적었던 시절, 여성 지도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설립됐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확대하는 교육공간이 바로 여대의 탄생 배경이다. 이러한 여대의 특수성때문에 총장이란 직위에 여성을 임명하는 것이 여성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중요 요소가 된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이화여대나 숙명여대 등이 여성총장을 선호하는 데는 여성사학이란 전통을 지키려는 관례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숙명여대 등에서는 특별히 여성총장을 선호하는 건 아니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여성만을 고집하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여성 총장이 주를 이뤘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동문 출신’총장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이화여대는 외국인 여성총장을 제외한 제7대 총장부터 현재 최경희 제15대 총장까지 모두 9명의 총장이 이화여대 사람이다숙명여대도 제10대부터 현재 황선혜 제18대 총장까지 1981년 이후 선출된 5명의 여성총장이 모두 숙명여대를 나왔다. 서울여대도 초대총장을 제외하고 정구영 제2대 총장, 윤경은 제3대 총장, 이광자 제4~6대 총장, 현재 전혜정 제7대 총장까지 서울여대 출신이다.


여건종 교수는 “동문출신이 학교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제가 깔려있다. 아무래도 동문이 애교심도 더 깊고 학교발전에 열정적이다. 발전기금을 확보하는 데도 훨씬 수월하다”라고 설명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본교출신 여성총장이 동문과 단합을 이끌어 내는데 유리하게 작용한다”라고 말했다. 전체 동문을 대상으로 발전기금을 끌어와 대학발전에 투입하는 재원동원 능력 면에서 동문출신 여성 총장이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동문 여성 총장’이 대세라는 현실론인 셈이다.

이 연장선상에 ‘성정체성’시각이 있다. 여학생으로 구성된 여대의 특성상 여성총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김혜숙 교수는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공감성이 높다는 점이 여성 총장의 가장 큰 강점이다. 또한 여학생들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상징성이나 현실론, 정체성론에도 약점은 있다.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양성평등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여대의 ‘여성 총장’고수를 더 이상 고집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건종 교수는 “유능하고 실력있는 사람이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개의치 않아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김혜숙 교수도 “여성의 역할에 대해 비전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여성총장으로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신임교수 임용시즌마다 역량 있는 남성 교수들이 슬쩍 여대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남성 총장이 꼭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능력과 자질, 비전을 강조한다면 어느 한 ‘성’을 일방 고수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다른 행보를 보이는 여대도 눈에 띈다. 동덕여대는 제1대 총장부터 현재 김낙훈 제8대 총장까지 6명 모두 남성이다. 덕성여대는 제1대 총장부터 제9대 총장을 역임한 8명 중 6명이 남자다. 지난 12일 선출된 이원복 제10대 덕성여대 차기총장 역시 남성이다. 윤지관 교수는 “덕성여대의 경우 총장에 적합한 사람을 영입하는 등 개방적인 편이다. 남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려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윤지관 교수는 총장 리더십과 관련 독특한 설명을 덧붙인다. “남성 리더십과 여성 리더십을 구분한다면 남성 리더십은 경쟁이나 승부에서의 쟁취를, 여성 리더십은 화합과 평화를 지향한다.이러한 여성만의 능력이 리더십과 결합된다면 대학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관록의 여대들이 여전히 ‘여성 총장’에 힘을 싣는 이유가 화합과 평화를 지향하는 리더십 때문인지는 불확실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이 자리에까지 불어오리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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