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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으로 있다 보면 금방 40세 넘는데 누가 귀국하겠나?”
“비정규직으로 있다 보면 금방 40세 넘는데 누가 귀국하겠나?”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5.02.02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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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박사 줄어든 이유는?

수도권의 한 유명대학 대학원에서 사회과학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A씨(여, 30세)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석사 2년차인 A씨의 꿈은 대학교수.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교수를 할 계획이다. A씨는 “이미 외국 박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좋은 대학에 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에서 좋은 대학에 임용되지 못할 바에야 미국에 남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는 “다만 금전적 문제나 결혼, 유학 준비의 어려움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국내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다들 외국으로 가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신 규임용 교수 가운데 국내 박사의 비율이 증가한 원인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설명은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증가였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3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봐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신임교수 가운데 비정년트랙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0년 36%에서 2013년 51%로 늘었다. 2010년에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가운데 외국인이 53.5%였으나 2013년에는 거꾸로 강의전담교수와 산학협력 전담교수 비율(50.2%)이 절반을 넘었다.

관점을 바꿔 보면 어떨까. 지금까지의 설명은 ‘국내 박사’에 초점을 뒀다. ‘외국 박사’에 초점을 둔다면 해석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교수신문>이 2004~2014년 학기별로 실시한 ‘신임교수 임용현황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 해외 고급인력 활용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봤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고급인력의 국내 취업 상황을 분석한 것은 드문 경우다. 양 교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하고 있는 연구의 한 분야로 「조기유학세대의 재인입 경로분석 기초연구」를 진행했으며 조만간 KDI에서 보고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대학원 유학 지원 A장학재단의 박사학위 소지자 국내 복귀 현황

분석 결과 2004년 이후 외국 박사가 국내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는 비율은 40% 정도를 유지했지만 최근 들어 30% 내외로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외국 박사학위가 갖는 프리미엄이 이전에 비해 많이 약화되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외국 박사의 교수 임용이 줄어드는 현상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외국대학 유학을 지원하는 A장학재단을 통해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의 전수 자료를 KDI 김태종 박사가 다시 정리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1981년 이후 A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 300여명 가운데 166명을 분석한 결과 2014년 현재 24.7%가 외국에 남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 돌아오는 경향이 많았으나 2천년대 들어 박사학위를 받고 외국에서 취업하거나 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머무르는 경향이 강했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고급인력의 국내 취업이 쉽지 않아진 탓도 있다. 우선 외국 박사보다 순수 외국인 교수를 임용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2006년 9%였던 외국인 교수 비율은 2010년에는 18%로 두 배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약간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전체적으로 약 10%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 박사 가운데 외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비율이 절반을 약간 넘는데(평균 52.5%) 이 중 64.8%는 외국인 교수다. 대부분 조기유학생일 가능성이 높은, 외국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한국인의 교수 임용 비율은 2009년 정점을 찍었다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외국 박사 가운데 외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한국인 교수 비율도 2009년부터 하락해 이후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양 교수는 “국내 대학이 영어 강의를 확대하고 영어전용 글로벌 학부를 많이 만들면서 오히려 외국 박사를 많이 뽑기보다는 순수 외국인 교수를 임용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교원인사팀장도 “세계 대학평가에서 외국 대학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강의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데 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외국어 강의를 원만하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어서 외국인 교수를 대거 뽑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외국 박사 임용이 줄어드는 데에는 국내에 돌아오지 않는, 혹은 않으려는 외국 박사가 많아진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공계열(KDI 김종성·윤은기 박사)과 인문사회계열(한국과학기술평가원 김진용 박사) 연구인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활용해 미국 거주 박사급 전문인력의 국내 취업 여부를 분석했다. 인문사회계열 131명, 이공계열 168명 등 총 2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8.2%가 미국에서 취업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인력은 61.6%가 미국에서 취업하겠다고 한 반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인력은 62.2%가 국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이공계(52.4%)보다 인문사회계(65.6%)가 미국에 남겠다는 비율이 더 높았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교원인사팀장은 “인문계열은 교양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를 비정년트랙 전임교수로 많이 뽑는다. 급여도 낮고, 국내 대학 출신이 많다”며 “외국 박사의 경우 국내 교수 자리가 많지 않으니 비정년트랙이라도 잡고 전직을 고려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고용안정성이 한국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이공계보다 인문사회계가 8% 포인트 가량 더 높은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한국과 미국의 연구·교육·고용 환경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미국이 취업과 연구 지원, 연구능력 발휘 가능성, 자녀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다. 그런데도 국내에 복귀하는 이유를 양 교수는 “미국에서 취업이 가능하다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다양한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국내에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처음 교수가 되는 것보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옮기는 것과 같은 이동이 많아지고 있다. 국내·외국 박사를 떠나 국내 교수 수요 자체가 포화 상태다. 한국에 와서 비정규직 교수로 있다 보면 금방 나이 40이 넘어갈 텐데 누가 국내에 오려고 하겠느냐”며 “해외 고급인력이 국내에 돌아올 유인 요소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박사의 경우 국내의 연구환경이나 장비 지원 등이 미국보다 뒤떨어지다 보니 교수로 임용되고 나서 생각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고급인력 활용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개혁으로 교수로 임용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양 교수는 “대학 구조개혁을 본격화하면서 교육부는 학생정원 감축만 얘기하지만 이는 자연스럽게 교수 수의 동결이나 감소를 유도하게 되고, 교육경쟁력이나 연구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연구인력에 대한 다양한 활용방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내 연구인력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또 “예전 같으면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에 들어오는 구조였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에 머물려고 하는 추세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거나 취업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마이너스다. 해외 고급인력을 국내로 유인할지, 유인하지 않는다면 네트워크를 어떻게 연결할지와 같은 인력관리체계를 적극적으로 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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