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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소설연구의 새로운 ‘지도읽기’ 초석 마련
한국 근현대소설연구의 새로운 ‘지도읽기’ 초석 마련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1.27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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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_ 『한국근대소설사』 송하춘 지음|고려대출판부|722쪽|45,000원

확실히 학자들은 ‘정년퇴임’ 이후 무엇을 내놓느냐로 새롭게 조명되는 듯하다. 『하백의 딸들』, 『스핑크스는 모른다』 등의 장편을 발표했고, 『1920년대 한국소설 연구』, 『발견으로서의 소설기법』 등의 저서를 낸 송하춘 고려대 명예교수를 보면 더욱 그렇다. 송 교수는 제자들과 10년 이상의 공동작업을 진행한 끝에 마침내 『한국근대소설사전』을 상재했다.
송 교수는 사전 출간 소감을 담담하게 말한다.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은 내 평생의 업이다. 소설사전 편찬은 내 생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수확일 것이므로, 정년 퇴직할 때까지는 이 작업을 계속해야지, 퇴직을 하면 그때는 완성이 되겠지, 그렇게 마음먹고 편하게 진행했다.”


『한국근대소설사전』은 1890년부터 1917년까지의 근대 개화기 소설을 중심으로, 모든 신소설 작품과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번역·번안소설을 비롯해서 1천270가지 항목을 수록했다. 예컨대, 이 소설사전의 맨 앞 ‘ㄱ’항목의 첫 줄은 「가난한 사람들」(번)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번). [내용] 「청춘의 사랑」 참조. [참고] 김병철의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1975)』(366쪽)에 1947년 완역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다.” 항목 가운데 필요하면 당시 신문 사진이나 책 표지 이미지를 같이 실었다. 앞선 연구와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일보를 내딛은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전’은 2013년 그가 내놓은 『한국현대장편소설사전』의 전사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실은 편의적 구분일 뿐, 6·25전쟁 이전까지의 한국 근·현대소설을 집대성한 사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2013년의 장편소설 사전에 이어 2년 만에 발간된 이번 소설사전은 ‘근대소설사전’으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개화기소설이 고전소설과 만나는 시점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서는 현대소설의 기점으로 잡을 수 있는 『무정』(1917) 직전가지의 시기가 중심이다. 특히 이 책은, 아직 장·단편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던 근대소설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송 교수의 지난 소설사전과는 달리 장·단편의 구분 없이 근대개화기의 모든 소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접근 탓인지, 『한국근대소설사전』은, 송 교수가 “근대소설의 형성과정에서 신소설과 같은 뿌리에서 나고 자란 시대적 산물”이라고 규정하는 번역·번안소설까지 모두 수록하고 있다. 근대개화기의 대표장르로서, 이 책에서 소설 제목과 함께 (번)이라고 표시되는 작품들 전부를 포함했다는 게 이 소설사전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한국 소설사는 1917년 이후 1950년대까지도 현대소설과 함께 ‘신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후기 신소설이 계속해서 출판, 유통됐다는 특징을 보이는데, 송 교수는 이 부분까지 염두에 둬 모두 소개하는데 주력했다.


부록으로는 해당 작품 목록을 출처와 함께 연도별로 제시해 연구자들의 활용을 돕는다. 이와 관련 송 교수는 “그동안 한국 근현대소설연구는 연구대상으로서의 작가나 작품이 제한된 범주 안에서만 반복됐다”라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기왕의 인기작품과 유명작가에게만 집착해 반복적으로 거론해 온 결과다. 이번 작업은 이런 제한된 연구풍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모든 소설을 다 포함하고자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한국 근현대소설연구가 한층 더 체계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확대되는 데 사전이 기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송 교수는 소설사전 작업을 두고 이렇게도 말했다. “사전에 등재할 작품을 미리 정해 찾아나서는 일이 아니라, 어디 가면 어떤 새로운 작품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작품발굴의 의미를 지닌다.” 송 교수 팀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백지 상태에서 이 시간대에 걸쳐 있는 모든 신문과 잡지를 섭렵하고,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 국내 각 주요 도서관은 물론 일본의 덴리·리츠메이칸·와세다·규슈대 등을 방문 조사하고, 중국의 베이징대 인문학도서관, 홍콩의 시립대학 도서관, 하버드대 연경도서관,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도서관 등을 거점으로 다른 주요 대학 도서관과 연결하며 ‘작품 발굴’을 이어 나갔다.
송 교수와 그의 문하 제자들이 함께 일군 소설사전은 그의 소망대로 한국근현대소설 연구의 ‘공구서’ 역할을 하게 될 게 분명하다. 작가·작품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숲처럼 울창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훑어 그 관련양상을 거시적으로 파악해갈 수 있는 지도읽기 작업이 드문 국문학계 현실에서 송 교수의 이번 사전 작업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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