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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작품 분석 … 이 책이 ‘出征’으로 읽히는 이유
독특한 작품 분석 … 이 책이 ‘出征’으로 읽히는 이유
  • 최민숙 이화여대·독어독문학과
  • 승인 2015.01.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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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 『괴테, 토마스 만 그리고 이청준』 안삼환 지음|세창출판사|2014|384쪽

 

이 책은 원래 한국연구재단에서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기획한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의 하나로 4회에 걸쳐 진행된 강연의 원고를 수정 보완해 출간한 것이다.
제1부는 괴테의 질풍노도기의 작품인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시작해, 장년과 노년기의 산물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를 거쳐 일생의 역작인 『파우스트』를 다루고 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 장에서 저자는 특히 베르터의 로테에 대한 사랑과 실연, 그리고 자살에 초점을 두는 일반적 해석을 넘어 사회소설로서의 베르터를 조명하고 있다. 봉건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귀족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시민계급 출신 지식인 베르터의 고뇌를 부각한 것이다. 이는 독문학 전공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일반 독자층에게는 아직 가려져있는 부분으로, 이 작품의 일방향적 수용을 수정 보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저자는 국내 독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편력시대』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빌헬름이 ‘교양’의 마지막 단계에서 택하는 ‘체념(Entsagung)’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자 힘을 쏟고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부정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전문화함으로써 분업화 돼가는 사회 내에서 자신을 유용한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 즉 전인적 교양을 포기하고 한 가지 기술을 익혀 공동체에 봉사하기로 ‘체념하는’ 자세인 것이다”(60쪽)와 같은 구절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위로가 될 말로 꼭 전달되기를 바라고 싶다.

 

『빌헬름 마이스터』를 논한 부분의 말미에 저자가 덧붙인 ‘한국에 대한 괴테의 관심’(68~70쪽)은 짧지만 저자의 괴테에 대한 애정과 한국에 대한 충정이 함께 돋보이는 부분이다. 괴테는 1818년 “(……) 한국 서해안 여행”이라는 “짧고 종잡을 수 없는 메모”를 남겼는데, 저자는 이 메모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2006년 7월 바이마르에 체류하며 연구한 성과를 국제학회지에 발표 한 바도 있다. 200년 전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입증됐을 뿐만 아니라, 그가 손에 들었던 한 서양인의 여행서가 당시 조선 현황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역사의 한 유럽사적 단면으로 남아야 할 자료라고 생각한다.

대문호 괴테의 한국 언급 메모 소개
괴테 장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인류문화의 영원한 고전 『파우스트』다. 저자는 이 작품 I, II부의 구성과 줄거리 소개와 함께 적절한 대사들을 번역 인용함으로써 독자들이 『파우스트』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저자는 『파우스트』의 중요성과 시의성을 괴테 자신과 오늘의 한국에서 찾는다. 이 드라마가 괴테 자신에게는 “자신의 삶과 그 속에서 자신이 불가피하게 저지르게 된 여러 죄업에 대한 참회의 책”이라면,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며 “산업화를 신속히 달성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부실성을 총체적으로”(99쪽 이하) 보여준 한국적 비극인 세월호 대참사에 직면한 우리에게는 ‘경종의 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시의성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이보다 더 설득력 있게 변호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제2부는 “독일 소설을 세계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20세기 소설의 완성자” 토마스 만에게 바쳐지고 있다. 저자는 전공자답게 그의 걸작을 중심으로 토마스 만이 대변하는 가치와 주제를 집약적으로 다뤘다. 우선 노벨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부덴부로크 가의 사람들』, 그리고 대표적 노벨레 『토니오 크뢰거』를 중심으로 ‘시민성과 예술성’의 대립문제를 분석한다. 유용성 원칙에 입각해 소유에 집착하는 시민계층과, 존재의 문제와 창작에 함몰돼 시민사회에서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힌 예술가의 문제는 낭만주의 이래로 독일문학을 지배해 온 대표적 주제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 부르주아 시민계급 출신 예술가 토마스 만에게서 이 대립이 새로운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자신이 직면해야 했던 문제를 이 두 작품에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당대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지식을 곁들여 작가 토마스 만의 자전적 내용이 장편 『부덴부로크 가의 사람들』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분석한다. 그의 결론은 “주인공의 인격적 성숙과 성취는 결여돼 있지만” 이 작품이 “독자의 교양 함양에는 크게 도움이 되는” “독일 교양소설의 현대적 변종으로 규정될 수도 있겠다”(121쪽)는 것이다. 이어서 『마의 산』, 『한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바이마르에서의 로테』, 『요젭소설』을 거론하면서 20세기 전반 유럽을 휩쓴 격동기에 비정치적이던 토마스 만이 정치화 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에게 뜻밖인 것은 저자가 토마스 만에게 바쳐진 2부의 대미를 『파우스트 박사』가 아니라 『선택받은 사람』으로 장식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작가의 8편의 장편소설 중 가장 짧은 것으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로, 작가의 작품 중에서 이만큼 “완결된 형식미와 재미있는 내용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 없다는 점”(172쪽)을 들고 있다. 작가가 내적 갈등과 모순의 표출이던 ‘반어성(Ironie)’을 극복하고 ‘고상한 청랑성과 해학(hoehere Heiterkeit und Humor)’의 경지에 진입해 “스토리텔러로서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선택받은 사람』을 끝에 놓음으로써, 저자는 “‘죽음’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있는 ‘삶에 대한 우호성’”을 “진정한 ‘정신적 가치”(187쪽)로 평가한 토마스 만의 충실한 전달자임을 입증하고 있다.


마지막 장인 제3부의 제목은 ‘토마스 만과 이청준’으로 붙여져 있지만, 실제로는 ‘토마스 만의 한국 수용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논의 대상의 스펙트럼이 넓다. 1920년대,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토마스 만 수용과 염상섭, 김남천 등에 끼친 영향사에서 시작해, 해방 후 ‘한국문학에 끼친 토마스 만의 영향’을 김원일, 김원우, 정찬 및 공지영의 작품, 그리고 평론가 김병익에 이르기까지 개괄하고 있다. 이어 번역을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토마스 만 연구’를 언급하는 가운데, 2006년 결성된 ‘한국토마스만독회’의 활동과 연구 작업에 대해서도 보고하고 있다. 이 독회의 결성과 그 활동 중심에는 언제나 안삼환 교수가 있었다. 그는 토마스 만 문학의 한국 수용에 끼친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겸손을 보여줬지만, 이 수용사의 정립에 대한 그의 지대한 기여는 이 저서 자체가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끝으로 ‘독문학도 이청준’이 들었던 토마스 만 강독시간에 대한 언급은 동시에 저자의 은사이신 ‘고 강두식 교수’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이청준의 상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저자는 이청준이 “토마스 만적 주제를 리얼리티를 지닌 한국적 주제로 문화번역을 했을 것 같다”고 평가한다. 이청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 장은 동시에 저자 자신의 고백을 품고 있다. “(……) 거짓, 부정, 부패, 아집, 천민자본주의로 물든 오늘날의 분단 한국 사회를 살아가며 고뇌하는 시민, 진실을 좇는 예술가, 더 인간다운 사회를 꿈꾸는 인문학자의 길이라면, 이청준이 탐구한, 이러한 恨의 도정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개인의 완성을 향한 도정으로서의 ‘교양’
이 책의 묘미는 독일문학의 대표작가인 괴테와 토마스 만, 그리고 한국의 대표작가인 이청준의 작품들을 순수한 문학의 차원에서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이 작품들이 세계적인 정치적 격변기의 산물이자, 작가 개인의 치열한 고뇌의 결과물임을 주지시켜준다는 데 있다. 이 세 작가를 아우르는 공통주제는 인류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의 인격적 완성을 향한 도정으로서의 ‘교양’으로 압축될 듯하다.


20세기 후반의 인류 질곡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원로학자 안삼환은 이 저서를 집필하는 순간 스스로 괴테, 토마스 만, 이청준이 돼 그들의 천재성을 높이 사는 동시에, 그들과 그들 주인공들의 ‘너무도 인간적인’ 다양한 긍정적 부정적 면들을 마치 작가 자신인 듯 설득력 있게 풀어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의 변명하고 방어하는 숨결에서 독자는 그의 독특한 진면목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렇기에 이 책은 일종의 ‘出征(Vorwaerts)!’처럼도 느껴진다. 그리고 저자와 함께 같이 외치고 싶어진다. 이 땅에 문학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도래하기를!
끝으로 저자에게 감히 한 가지 바람을 전하고 싶다. 이제 저자도 긴 ‘수업시대’와 ‘편력시대’를 뒤로하고 토마스 만의 『선택받은 사람』에서처럼 그의 은폐된 ‘아이러니’가 성숙된 단계의 ‘청랑성 깃든 후모어’로 발현됐으면 한다.


최민숙 이화여대·독어독문학과
필자는 독일 파더보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세계독어독문학회(IVG)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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