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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 가늠하는 '지표식물'의 매력
공해 가늠하는 '지표식물'의 매력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1.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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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22. 석이버섯

▲ 석이버섯
石耳를 따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천길만길 깎아지른 낭떠러지절벽을 타는 등산가가 돼야 한다. 아찔아찔, 위험천만하게 몸뚱이에 밧줄을 걸어 매고 석이버섯을 따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公害에는 질색이라 공기가 맑은 외딴 곳에만 사는 孤高한 식물(버섯)로, 그것도 겨울이면 꽝꽝 얼고, 여름이면 땡볕에 바짝 말라버리는 바윗돌에 붙어산다.

석이(Umbilicaria esculenta)는 석이과 석이속 지의류의 일종으로‘석이버섯’이라고도 한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 自生하며, 우리나라 중북부 지방의 심심산곡의 암반에 붙어살고, 남부지방에서도 고산에서 만날 수 있다 한다. 산골짜기의 벼랑바위에 3~10cm 크기로 둥글넓적하게 조붓이 붙는데 그 모양새가 귀(耳)를 닮았다 해 石耳라 하고,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바위버섯(岩茸), 돌버섯(石茸), 서양에선 rocky ear라 부른다.

먹는 이야기부터 하자. 석이버섯은 깡마를 때는 바삭바삭 까칠하고 단단하지만 물에 담그면 灰綠色으로 변하면서 야들야들 보드라워진다. 또 마른 것을 더운물에 불렸다가 양손으로 매매 비벼 씻으면 검정물이 나오므로 여러 번 헹군다. 석이요리는 보들보들 매끈매끈한 것이, 쫄깃쫄깃하고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좋고, 음식자료 중 드물게 검정색이라 오색고명을 만들 때 쓰고, 잡채에는 약방에 감초처럼 단골이며, 구절판에도 단짝이다.

잡채는 자주 먹는 편이지만 구절판 찬합에 고루고루 든 음식은 특별한 날에나 먹는다. 구절판은 가장자리 여덟 칸에는 쇠고기·전복·해삼·나물·채소·석이들을 걀쭉걀쭉 채 썰어 익혀 담고, 가운데 칸에 얇게 부친 밀전병을 담아놓으니, 그것으로 여럿을 고루 싸먹는 밀쌈으로 일품이다. 매번 그렇듯이 먹는 이야기를 할 적마다 군침을 삼키기 십상이다.

석이는 地衣類(lichen)로 줄잡아 2만 종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데, 葉狀地衣, 固着地衣, 樹狀地衣로 나뉘고, 요리에 쓰이는 것은 총중에서 잎 모양을 하는 葉狀地衣이다. 이것들은 거의가 원형에 가깝고, 가죽 같이 딱딱하고 질깃하며, 마르면 위쪽으로 또르르 말린다. 전체적으로 거무죽죽하고, 윗면은 흐릿한 황갈색으로 광택이 없으며, 뒷면은 흑갈색으로 미세한 과립돌기가 나고, 밑바닥에 짧은 헛뿌리(虛根)가 밀생한다.

연중채취가 가능하지만 그 양이 많지 않고, 자라는 속도는 너무 느려서 가격도 만만치 않으며, 무엇보다 송이처럼 인공재배가 되지 않아 자연산에 의존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차고 넘치면 천하고, 드물면 귀하고 값진 법!

『동의보감』에는 석이를“성질이 차고(寒) 맛이 달며(甘) 독이 없고, 胃를 보하고, 피나는 것을 멎게(止血)하며, 얼굴빛을 좋아지게 한다”고 쓰여 있다. 한방에서는 각혈·하혈 등의 지혈제로 이용하며, 또 중국에서는 强精制로 노인이 상용하면 젊어지고, 눈이 밝아진다고 믿는다. 이는 모두 석이에 든 지로포르산(gyrophoric acid)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음식자료에 쓰이고, 약도 되는 석이가 대체 버섯인지 식물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석이(버섯)는 소위 지의류라는 매우 특이한 식물로‘, 地衣’란 나무나 바위에 멍석처럼 납작하게 붙어있어 붙은 이름이다.

지의류는 바싹 말라 물도 양분도 없는 척박한 바위나 껄끄러운 나무줄기에 어떻게 살까. 지의류는 특이한 共生植物로 엽록체로 광합성을 하는 綠藻類(algae)나 藍藻類(cyanobacteria)와 광합성을 못하는 자낭균류나 담자균류의 菌類(fungi)가 합쳐 함께 산다. 현미경으로 보면 세 층으로 돼 있으니, 균류가 가운데에 조류를 틈틈이 얽어 가둬놓고, 아래위를 신주 모시듯 싸고 있다. 균류의 팡이실(菌絲)은 수분과 거름을 머금어 조류에 제공하고, 조류는 양분을 만들어 균류에 주니, 두 생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주고받기’하며 살아간다. 즉 서로 없으면 모두다 못 사는 共生(symbiosis)을 한다.

좀 보태면, 여름날 발바닥을 데게 할 정도로 뜨거운 바위에 살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단번에 단세포생물인 조류들을 실 뭉치처럼 감듯 하고 있는 균사가 물을 흠뻑 품고, 풍화작용과 생물들의 특수 화학물질이 바위를 부식시켜 양분(거름)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지의류는 맨땅이나 암석지대에서 시작되는 乾性遷移(xerarch succession)의 개척자다.

다시 말하면 지의류가 사는 자리에는 축축하게 물기가 배고, 흙도 점점 걸어지면서 드디어 이끼(蘚苔植物,moss)가 가까이 끼기 시작한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잡초가 일기 시작하고 나중엔 나무도 들어와 자라게 된다. 결국 지의류, 이끼, 초본, 관목, 양수림, 혼합림, 음수림 순으로 간단없이 변해가니 이것이 遷移다. 不毛地를 제일 처음 쳐들어온 생물은 지의류요, 그래서 지의류를‘생태계의 개척자생물’라 한다.

우리는 못 먹는 것이 없어 이런 천이에 관여하는 석이도 따먹는다. 또 이들은 공해에 찌든 도시의 나무나 바윗돌에는 결코 살지 못한다. 그래서 공해의 정도를 가늠하는‘指標生物(indicator)’로 삼으니, 터줏고기를 보고 강의 훼손을 엿보는 것과 같다.

결론이다. 지의류의 일종인 석이를 藻類를 중심으로 보면 광합성을 하는 원생식물이고, 그들의 겉을 싸는 菌類(곰팡이)를 생각하면 천생 버섯이다. 그래서 지의류 석이는‘단세포식물’과‘버섯’이 더불어 사는 유별난 생물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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